거리에 비가

#감정

by 비루투스

갈 곳 없는 그림자 하나가,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나는 발걸음에 밀려나도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하네!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외로움과 슬픔
그 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희망과 꿈

누군가가 알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줄까?

네온사인은 화려하게 비치고 있는데,
어둠은 여전히 그곳에 쓸쓸하게 남아있네.

그림자를 뒤로한 채 이 도시를 나서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내리는 빗방울

어깨 위에 조금씩 젖어드는 촉촉한 위로


—슬픈 노래, 비가 내리다


도시의 밤은 언제나 화려하다. 네온사인은 어둠을 밀어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하지만 그 빛의 이면에는 말없이 웅크린 그림자가 있다.

시인은 그림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갈 곳 없는 외로움, 밀려나도 멍하니 서 있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품고 있는 희미한 꿈과 희망.

이 시는 도시라는 배경 속에서 감정의 가장 낮은 음을 포착한다. “지나는 발걸음에 밀려나도 /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하네!”라는 구절은, 존재의 무게를 말하지 않고도 존재의 슬픔을 전한다. 이 거리에서 그림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의 상처이자, 잊히지 않는 감정의 흔적이다.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외로움과 슬픔 / 그 속에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희망과 꿈”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룬다. 외로움과 슬픔이 이 거리의 배경음이라면, 희망과 꿈은 그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불빛이다. 이 시는 슬픔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려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알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하고, 그 이해가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시는 그 갈망을 조용히 꺼내어, 독자에게 건넨다.

마지막 구절의 “어깨 위에 조금씩 젖어드는 촉촉한 위로”는 이 시의 정서적 정점을 이룬다.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감정의 은유다. 비가는 실제로 내리는 비이면서 동시에, 마음속 슬픈 노래다. 그 노래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들리고, 그 빗방울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도 따뜻하게 스며든다.

거리에 비가」는 도시의 어둠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깊다. 시인은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 한때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달력의 붉은 숫자가 찍히면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녁이면 거리는 숨 쉴 틈 없이 활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날, 휴일의 피크타임임에도 거리는 조용했다. 청년들의 모습은 드물었고, 그 공백은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기억하던 풍경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흩어진 걸까.

간판 불빛은 하나둘 꺼져가고 있다.


뉴스는 수도권 집중을 말하고, 온라인은 지방을 조롱한다. 입시 문턱이 낮아졌다는 기사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였다. 청년이 머물 이유가 없는 도시는 미래를 잃는다. 지역을 떠받치던 산업은 쇠퇴했고, 몇몇 중견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책과 정치의 공백은 사람들의 선택지를 좁혔고, 그 결과는 거리의 적막으로 되돌아왔다.


정치는 어디에 있었는가. 도시를 이끌어야 할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정(情)의 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왜곡된 정(政)이 정(正)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비판은 분노로 끝나지 않고,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졌다.


나는 지금 수도권 인근에서 외지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올라왔을 땐 계획이 많았다. 직장과 가까운 방을 구하고, 취향이 맞는 모임을 찾아다니며 워라밸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주거비와 생활비는 감당하기 어려웠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으면 모든 계획은 무너졌다. 삶은 계획이 아니라 생존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나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그 땅의 지리와 관습에 익숙했고, 정보와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부모의 집을 기반으로 자산을 쌓고 기회를 확장해간다. 반면 지방 출신은 연고 없이 홀로 시작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 삶의 선택들까지 그 격차의 영향을 받는다. 희망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건 나이와 피로뿐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모임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즐거운 시간이 끝난 뒤였지만, 아무도 없는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네온사인의 빛이 젖은 포장에 반사되어 번들거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이미 멀리서 잦아들었다. 그 화려함 속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그곳엔 내가 머물 자리가 없었다.


저편 어딘가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늘 그래왔듯 고개를 돌렸고, 모른 척 지나쳤다. 그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발걸음은 느려졌고, 외로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문득 누군가의 인정이 그리워졌다.


그림자는 다가와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포근한 온기가 천천히 등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는 조용히 내리고, 와이셔츠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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