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중순이 넘어가는 차디찬 바람과 함께 눈이 휘몰아치던 겨울날씨. 나는 40일 정도의 제주살이를 떠나기 전에 짐을 챙겨 광주에 내려왔다. 다음날 진도에서 제주로 향하는 배편을 예약하고 떠나기 전 한 달 넘게 이곳에 못 온다는 아쉬움에 ㅡ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함 ㅡ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산수동에 위치한 호남맨션으로 향했다. 내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눈이 쌓여 얼음 빙판으로 변해있는 상태였고, 호남맨션과 주변 주택에 거주하고 있던 기존의 주민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를 마친뒤었다.
아파트 입구로 올라오는 길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 못 보던 현수막이 찢긴 상태로 걸어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외부인의 출입금지를 의미하는 내용이었다. 찢긴 상태로 걸려있는 현수막은 정든 이곳을 떠난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을까? 아니, 지금의 모습을 앞으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적막함이 흐르는 줄 말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호남맨션과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아직 신정까지는 시간이 2주가 남아있고..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에서 무슨 이유로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는지 궁금해졌지만 정답을 확인하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언덕에서부터 썰매를 타고 행복한 표정과 웃음을 지으면서 내려오는 아이 그리고 그 썰매를 다시 끌고 올라가는 아이들.
'아.. 얘네 여기서 썰매 타는구나..'
이제는 자동차를 포함하여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언덕길은 아이들의 썰매장으로 새로 오픈했고 그 옆에는 다른 아이들이 만든 작은 눈사람이 있었다.
굳이 옆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이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집에서 썰매를 끌고 나와 주택가부터 시작하여 아파트 후문에 도착하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썰매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이 아이들만의 겨울 놀이터로 새롭게 단장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겨울방학에만 누릴 수 있는 아이들만을 위한 썰매장. 이 장소는 나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억이 남겨진 장소였지만 이 아이들에게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는 장소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추운 영하의 날씨지만 작은 카메라를 꺼내 들어 아파트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미 이사를 가고 난 뒤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아무도 없어서 여기를 들어간 것일까? 낮은 층의 집들은 창문이 뜯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여기를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눈에 발자국이 안 남아있는데..'
그리고 다시 길을 돌아 가스 안전함 쪽으로 향했다. 이미 가스 연결관의 고리는 모두 끊어져 있는 상태였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와 함께 괜히 아파트와 동네 주변을 계속 돌아다녔다. 자물쇠로 굳게 잠겨진 문. 뜯겨 나간 창틀.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져있는 가스함. 그리고 세월의 흔적 즉, 재개발의 필요성을 나타내주는 벽이 금 간 모습까지.
이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자국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외부인의 발자국으로 찾아온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공터이자 아파트. 들어가는 1층 입구는 각 동마다 자물쇠로 굳게 감겨 있었고 이제 이 아파트와 현실시간을 연결해 주는 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아이들에게 또 다른 추억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이 사진이 어디 있는지 까먹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카메라 메모리 포맷을 하면서 같이 지워버린 줄만 알았던 사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 작업을 더 진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나의 노트북 폴더를 정리하던 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겨울'이라는 제목을 가진 폴더.
이렇게 사진의 힘은 잊고 있었던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기억과 기록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