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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부스 Jul 01. 2023

11.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며


겨울에 50일가량 제주살이를 다녀오고 3월부터 대학원을 다니다 보니 이런 저러한 이유로 광주에 자주 오지 못했다. 다시 광주 산수동 호남맨션아파트를 방문 시기는 대략 5개월 만이었다. 


너무 오랜만의 방문이었을까? 생각보다 많은 게 변해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익숙했던 장소에는 거대한 철문 벽이 세워져 있었고 내가 살아왔고 나의 인생과 시간이 담겨있던 호남맨션 아파트는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평소에 내가 다니던 골목은 막혀 있었고 산수동 일대와 호남맨션 아파트 주변으로는 거대한 철벽이 생겨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묻어있는 시간과 기억에 마침표를 장식하는 거대한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빈틈을 통해 호남맨션 아파트를 바라봤다. 거대한 천막과 큰 철문은 나와 호남맨션 아파트 그리고 그동안 나의 시간이 묻어있던 장소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현실을 알려주기에 충분했고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내 기억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위치상 마지막 남아있는 건물이 C동인 거 같은데... 아닌가?? 내가 살았던 B동이려나..? 제발.. B동이었으면 좋을 텐데.. '



앞선 2개 동은 이미 철거되었고 마지막 남아있는 건물이 내심 B동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도 내가 살았던 집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호남맨션 아파트에 살았을 때 다니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카센터 옆으로 거대한 천막이 쳐져 있었고 나는 작은 틈으로 이곳을 바라보니 이미 철거가 끝나고 정리되어있는 넓은 부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 천막 사이로 렌즈를 집어넣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캔맥주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생각해 왔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남겨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마음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변했던 모습에 내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한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아..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하게 시간을 내어서 더 자주 올걸..'



잠깐의 귀찮음 때문에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하고 말지' 생각했다가 정작 중요한 부분을 내가 전부 놓쳐버린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다음날 아침. 날씨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듯이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나는 기어코 사진을 남기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동네 언덕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그나마 촬영하기 적절한 위치를 찾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철거하다 멈춘 호남맨션 아파트의 속살을 보면서 참혹한 분위기를 보게 되었다. 뜯겨 나가 있는 철근, 반쯤 무너져있는 누군가는 살았던 방과 거실. 우산이 뒤집어질정도로 비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지만 나는 쉽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시장바구니와 짐을 들고 골목을 다니던 어머니와 이모의 모습. 늦은 밤 골목에 주차하던 아버지의 모습.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왔다 갔다 하던 나의 모습. 옆집 할머니가 구르마를 끌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모습까지 그동안의 시간이 내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였고 동시에 나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재개발 논의가 지속되어 왔었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모를 포함하여 이곳 주민들은 이주 시기를 모르는 불안감이 일상 속에 작게나마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나와 이모를 포함한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안부 인사처럼 "여기 재개발 언제 한데?"라고 물어보며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았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이곳에 오랜 정이 묻어있고 떠나기 싫은 마음을 애써 둘러말한 건 사실이다.



새롭게 출발하려는 시작점과 사라져버린 나의 정든 곳의 마지막 도착점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비록 이곳에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이곳에 처음부터 살았던 주민들은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당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개발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만 누군가의 시간과 인생이 묻어있는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전부 어디로 이사 갔을까?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호남맨션과 산수동은 어떤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앞으로도 이 사진 작업을 이어갈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예'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기록과 기억의 하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예전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을 때는 그때의 기억을 끌어올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나는 유명한 사진가도 아니고 사진을 그 누구보다 잘 찍는다고 말 할수 없다. 하지만, 내 사진을 통해서 이곳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분들 혹은 이곳에 시간과 인생이 묻어있는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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