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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숙소에서 생긴 일

좋았던 기억은 오래간다.

by 림부스

'가파도'에서 허락된 2시간 20분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지만, 기대하고 기대하던 가파도사진관을 운영하시는 사진작가이자 해녀이신 유용예 작가님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나온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넘어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고 렌트카에서 나는 혼자 조용히 고민을 하였다.


'여기를 갈까..? 일단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을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의 리스트에 있는 장소를 하나 둘 체크하며 검색해봤지만 그 순간 역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정신을 다시 차려보니 4시 45분.. 내가 가려는 곳은 운진항에서 차를 타고 20분을 달려가야 하는 곳이기에.. 잠시 또 고민에 빠졌다..


'그냥 숙소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사진 정리도 하고 내일 스케줄도 다시 조정하고 일단 맥주가 먹고 싶으니'


그렇게 나는 다시 차를 몰고 숙소를 향해 달려갔다.


KakaoTalk_20220613_000348093.jpg 당시 머물렀던 숙소
컴컴했던 숙소 화장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던 탓인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나의 몸에서 피곤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 일단 이 찝찝함을 없애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얼른 샤워를 하러 화장실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화장실 스위치를 눌렀으나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거였다.


'응?? 뭐지?? 왜??'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관이 나온다. 일단 불이 안 들어오면 무한 반복하여 스위치를 누르기 시작한다.

무한 반복하면서 불이 들어오면 '오케이! 나이스!'를 외치며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계속해서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일단 계속 눌러봤다.. 혹시 모를 0.1% 가능성을 위해서?


'딸깍 딸각 딸깍...'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화장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찝찝함을 빨리 없애고 싶어 일단 침대칸 불만 켜 두고 화장실 문은 1/3만 열어둔 채로 샤워를 하였다. 진짜 어둠 속에서 샤워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인 걸까? 침대칸 커튼까지 쳐버린 상태에서 의지할 불빛은 침대칸 작은 불빛 하나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전기가 없을 때는 어떻게 샤워를 했을까?'


내일 퇴실 예정이라 내일 아침만 이렇게 해결하면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만히 있을까 고민을 하였지만, 내가 퇴실하고 다음 사람도 분명히 사용할 방이기 때문에 숙소 사장님에게 알리기 위해 로비로 향해 걸어갔고 사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000호인데요.. 화장실 불이 안 들어와요


사장님은 놀란 표정과 함께 수리 도구를 챙겨 내가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사장님도 스위치를 끄고 키고를 반복하시고 전구를 갈아 껴보시기도 하시고 다시 스위치를 켜보시고 하셨으나 화장실 불은 나와 사장님의 마음을 외면한 채 요지부동 꺼져있었다. 일단 나는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사장님에게 잠시 나갔다 온다고 말씀을 드렸고 사장님께서는 그전까지 다 수리를 해보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LSH_1628-RE.jpg 이게 바로 제주 숙소 view


계속되는 화장실 전구와의 싸움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 로비에 들렸으나 사장님은 자리를 비우신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숙소 방에 들어갔더니 여전히 화장실 전구와 씨름을 하고 있으셨다. 그리고 못 보던 사다리까지 등장하였고 사장님은 어둡고 컴컴한 화장실에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작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한 채 땀까지 흘리시면서 열심히 수리하고 있으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나를 발견하시고 말씀하셨다.


오셨어요? 이게 화장실 전구 안전기가 나갔어요. 근데 이 선이 저기서 끌고 와야 하는데 너무 짧아서 오늘 고치기는 힘들듯 싶어요.. 제가 하루치 숙박비 환불해드릴게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숙소 카페에서 원하시는 음료 한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대답하였다.


"저 내일 퇴실해요. 환불 안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숙소 뷰도 좋았고 혼자 떠난 여행이라 정말 잘 쉬고 마음에 드는 숙소였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끝까지 환불을 해주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하루치를 환불받았다. 그리고 맥주를 사러 편의점 다녀오는 길에 1층 밖에서 사장님을 마주쳤다. 그리고 사장님은 다시 말을 하셨다.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잘 쉬었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올게요"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방에 들어왔다. 얼마나 사장님께서 정신없이 수리하셨는지 전기 드라이버도 내 방에 두고 가셨다. 전기 드라이버를 다시 가져다 드리고 나는 사진 정리를 하고 오늘의 일을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맥주를 마셨고 이 숙소에서 좋은 기억을 얻었다.





LSH_2691-RE.jpg 숙소 2층 view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날 아침 나는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위하여 아침 9시경 렌트카에 짐을 다 옮겼다. 키를 반납하고 사장님에게 정말 잘 쉬다가 떠난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사장님은 부재중이셨다. 그렇게 나는 렌트카에 시동을 걸고 다음 행선지로 향해 움직였다. 어제의 해프닝이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아서일까? 나는 떠나기 전 괜히 숙소 주변을 한 바퀴 걸어보고 둘러봤다.


아직까지 우리는 따뜻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구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줄 모르지만 3달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도 당시 사장님의 웃음과 땀을 흘리시며 전구를 수리하시는 모습 그리고 1층 야외에서 잠깐의 대화까지 모든 게 뚜렷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내가 다른 숙소를 선택했으면 이렇게 인심 좋은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방을 바꿔주거나 빠르게 다른 해결방법이 나왔으면 오히려 나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로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여행에서 느끼는 또 다른 묘미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아닌가?

LSH_1614-RE.jpg 다음에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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