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지하철 2호선 성문 나들이’ 글쓰기와 함께 했던 2022년 봄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리고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든 살이 되고서도 스무 살 때와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수줍음을 탄다는 것도 아쉽다. 모국어 외에는 다른 언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게 아쉽고, 응당 그랬어야 했건만 다른 문화들을 좀더 폭넓게 여행하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 올리버 색스 <수은 Mercury>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신경학과 교수이자 작가 올리버 색스. 영국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를 거쳐, 신경학과 관련된 세계 유수의 연구소와 대학교에 몸담았으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경험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여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에겐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관심영역은 음악, 식물, 우주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가 있으며 그 지식의 깊이 또한 놀라운 수준이다. 나는 이과의 백그라운드와 전문성을 가진 그가, 문과적인 성향을 듬뿍 담고 있는 글들을 많이 쓴 점을 특히 좋아한다. 그야말로 균형과 관대함의 집합체이다. (요즘 대세인 융합을 일찍이 실천한 색스?!)
그런 그가 생애 마지막에 저러한 생각을 했다고 하니, 여든 넘는 학자의 아쉬움과 겸손함에 나 같은 범인은 그저 놀랄 뿐이다. (부끄러운 수준이긴 하지만, 모국어 외에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언어가 두 가지 있다는 것이 올리버 색스 교수님보다 내가 더 나은 점이라 스스로 위안해본다 ㅎㅎ)
6년 넘게 거주한 북경이지만 관심과 호기심이 없다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알쏭달쏭한 것이 타국의 생활과 문화인 것 같다. 부족함을 인식하고 채워 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시야를 좁아지지 않게 만들려는 최소한의 내 노력이다. 또한 인터넷 검색이나 북경 관련 책자에 이미 다 있는 내용이지만,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는 작은 희열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의 느긋하지 못하고 급한 성격이 이런 북경 생활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궁금하네? 내일 가볼까?’
북경은 내가 보았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좋은 시절에 처음으로 그 도시를 스쳐 지나가며 보았을 뿐이다 - 니코스 카잔차스키 <일본,중국기행>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격동의 시기인 1935년 북경을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북경에 대한 인상이 깊었던지 죽기 바로 직전인 1957년에 다시 북경을 방문하였다. (조경환 "북경 상점" 중)
어른으로서 중국 그리고 북경에 첫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경험과, 아이들의 경험은 전혀 다르다. 9살에 처음 중국에 온 큰애는 이제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고, 막 돌 지나서 온 작은애는 외모는 어린이지만 정신은 슬슬 반항기를 나타내며 눈빛이 깊어지고 있다. 타국에서의 삶을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애쓰고 기록하려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에게는 이 곳은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낸 그저 일상일 뿐이다.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이 시기를 보낸 나라와 도시에서의 기억은, 이 곳을 떠난 후에 아이들에게는 점차 희미해질테지… 그래도 카잔차스키처럼 ‘좋은 시절의 그 도시’로 기억되길 바라며, 엄마의 기억과 기록을 훗날 읽어봐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 참으로 익숙한 나의 모습 = 어디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다. 북경 성문 및 관광지 다녀온 사진들을 정리하며 이번 글쓰기를 준비하다보니, 지인들에게 찍힌 내 뒷모습 사진도 의외로 많음을 발견하였다. 주변인들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에 웃음도 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게 내 진솔한 모습일 테니, 그들에게 비춰진 그 모습 그대로 ‘북경 지하철 2호선 성문 나들이’ 글쓰기가 이루어졌기를 바란다.
Thank you for being my reader!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