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교제 중이던 시절
남편이 살던 집 근처에서 통화하며 귀가하는 길에 편의점을 들려야겠다는 말을 하며 계속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이십 분이 지나서였을 쯔음.. 평소 같았으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인데 통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아직 편의점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거기서 지금까지 뭐하냐고 했더니 출출해서 뭔가 먹으려고 들어왔는데 막상 살펴보고 있는데 먹을 게 없는 거 같다며 이제 나가야겠다고 했다. 그때 당시엔 콩깍지 덕분인지 뭐 이런 사람이 있지 하며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이게 신중한 성격인지 알았다.
난 평소 덜렁대는 성격으로 뭐든 즉각적으로 선택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실수도 많이 한다. 그래서 평소 신중함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중한 건 좋은 거다라며..
결혼 전 제과점에서 일하던 어느 날 검은정장을 입고 온 남녀 두 명이서 가게 외부부터 내부 사진을 꼼꼼히 찍어가며 빵을 몇 개 결제했다. 나는 블로거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빵을 포장해주고 있었는데 여성분이 나에게 가게가 얼마나 됐는지 직접 이곳에서 생산하는지 등등을 물었고 내가 기본적인 건 대답했지만 자세한 건 사장님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하자 명함을 주고 떠났다. 그때 잠깐 이 사람이 자리를 비웠던 때라 가게에 돌아오자마자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하며 명함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명함엔 신세계백화점이 쓰여있어 입점 제안인가 싶어 나 혼자 신나서 떠들었고 이 사람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처음엔 뭐지 내 말을 이해 못 했나 싶었지만 이내 명함을 보며 말하길 전화는 해볼 거지만 이런 제안이 와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사람의 신중한 성격에 놀라움을 느꼈다. 나라면 바로 감사하다고 입점하겠다고 했을 테지만 확실히 나와는 달랐다. 그렇게 신세계백화점 마케팅팀과 통화를 한 뒤 직접 찾아가 미팅을 해보니 제대로 입점하는 것이 아닌 시즌 행사처럼 잠시 입점하고 매출 결과를 보고 입점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그래도 가게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 같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신중히 거절했다.
난 점점 신중한 성격에 의문이 들었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 회사에서 한 직원이 매일 아침마다 빵을 한 달 동안 배달 가능한지를 물어보기 위해 왔다. 먼저 카운터에서 나에게 물어보았고 나는 바로 뒤편에서 빵을 만들던 남편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와서 직원에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 직원은 전혀 아쉬울 것 없이 떠났다. 나는 전화번호라도 물어봐야 될 것 같았지만 쿨하게 사라진 손님을 잡을 순 없었다. 장사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게 분명 맞는 거 같지만 좀 더 지켜보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지켜보다 계속해서 대량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본 어느 날 나는 내 안에 타노스가 존재함을 깨닫고 모든 걸 쏟아냈다.
남편은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와서인지 무엇이 잘못된 지 어리둥절했지만 우린 서로 충분히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야 함에 필요한 과정인듯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