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공략집이 있는 '끝내주는 놀이터'
벨기에에 온 이후, 내 삶은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내 감정이 권태로움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고, '나는 왜 바쁜데도 불구하고 심심할까', '뭐가 이렇게 답답할까'에 갇혀있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나의 답답함이나 심심함을 토로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직장에 다니거나, 육아에 전념하느냐고 내가 겪는 심심함이나 답답함을 공감해 줄 순 없었다.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아도 돌아오는 건, '부럽다'라는 것뿐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의 '부럽다'라는 말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순간뿐이었고, 나이가 먹을수록 주변과 나눌 수 없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려웠다.
나는 내가 겪는 감정에 대한 답을 찾으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나와 동일한 케이스를 찾을 순 없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예전부터 힘들 때나 답답할 때는 동네서점에 가서 책을 뒤적거리곤 했던 것이 떠올랐다.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이미 뒤적거려 봤는데, 해답이 없었다.
생각지 못한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새' 책이 필요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정말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오프라인 서점에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신랑은 내게 요새는 쉽게 한국 책을 볼 수 있다며 E-book을 추천했다. 하지만 사실 난 책을 독서광이라기보다는 새 책을 사길 좋아하는 것이 취미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힘들 때마다 가던 지하철 역 앞 서점의 새 책 냄새가 좋았고, 새로 나온 책들과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며, 요즘엔 이런 게 유행이구나 하면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한국 책을 판매하는 곳이 없으니, 서점을 방문할 수는 없고, E-book을 시도해 보았으나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큰맘 먹고 비싼 돈이지만 해외배송을 해볼까 하는 맘으로 읽고 싶은 책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마흔 살에 읽는 쇼펜하우어'
책 소개에 나온 멘트들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무료함은 과잉으로부터 온다' 등 내가 가진 감정들이 단순히 심심하거나, 답답한 게 아니라 과잉으로부터 오는 무료함이 아닐까 하는 작은 실마리를 얻었다. 참, 어찌 보면 과분한 투정일지도 모르겠으나 사람은 각자 자기가 겪는 고통이 당연한 것이란 것을. 내가 겪는 감정이 권태로움과 무료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어찌 보면 인생을 좀 시니컬하게 보게 되었고, 삶이란 조금 힘들거나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판단했다.
결과가 비록 해피엔딩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감정을 진단할 수 있고,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고, 이걸 유명한 철학자가 이야기했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불과 2주 전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라는 제목의 글을 적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여행으로 뉴욕에 가서 한국 책방에 가서 우연히 두 권의 책을 사게 되었다. '역행자'와 '몰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책이 있었다면 그 책을 1번으로 집었을 텐데, 없었다. (서점에 갔을 당시, 오랜만에 한식당에서 곱창을 먹었더니 기름진 음식에 배탈이 나 책을 고르는 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냥 SNS에서 광고로 많이 접했던 책을 골랐다. 평소처럼 뒤적거리며 이것저것 살펴볼 여유가 없어, 사게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역행자'라는 책은 나에게 생각지 못한 긍정의 힘을 가져다줬다. 내가 너무나도 요새 꽂혀있는 멘트였던 쇼펜하우어의 말을 정확히 인용하여, 작가가 이야기했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정말 좋아하지만, 인생은 고통이라는 그의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끝내주는 놀이터'다"
책의 서문에서 시작하는 이 멘트를 나를 강력하게 끌어들였고, 나는 이 책을 열어서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다시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들은 연재하여 다음글에도 적어보려 한다. 오늘은 일단 내가 발견한 긍정의 시그널을 브런치에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