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어수선해도, 그게 우리의 하루다
양말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빨래를 하면 꼭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수건도, 티셔츠도, 바지도 멀쩡한데 이상하게
양말만 사라진다.
내 양말은 멀쩡히 있는데 남편과 아이들 양말은 자꾸 짝이 안 맞는다.
같이 빨래통에 넣고, 같이 세탁기에 돌리고, 같이 건조기에 넣었지만
어느새 한쪽이 사라져 있다.
처음엔 신기했다.
“아니, 분명히 두 짝이 있었는데 왜 하나만 있지?”
이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세탁기가 양말을 먹은 걸까.
아니면 우리 집에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있는 걸까.
양말들이 밤마다 그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이건 거의 SF 수준의 가정 미스터리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가끔 옷이 없다고 한다.
“엄마, 그 티셔츠 빨았지? 근데 없어.”
“내 바지 어디 갔지?”
'아니, 빨래를 개서 정리까지 했는데 없을 리가.'
그럴 때면 나도 잠시 흔들린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까. 요즘 잘 잊으니까.'
한번 더 찾아봐도 없을 땐 정말 다른 차원으로
가버린 것 같다.
양말이 또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 전체가 수사에 나선다.
“어디 갔지? 이상하네.”
빨래 바구니를 뒤지고, 소파 옆을 살피고, 침대 밑을 훑는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것처럼 열심이다.
그렇게 온 집안을 뒤져도 결국 한쪽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짝이 없는 양말들을 한 군데 모아둔다.
혹시 나중에 짝을 찾아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한쪽만 남은 양말들이 쌓여 가면서
그곳은 점점 ‘양말의 요지경 세상'이 되어간다.
아이들이 그걸 보고는 웃는다.
가끔 그 양말 보관함을 들여다본다.
“얘들아, 도대체 어디 갔다 오는 거니?”
혼잣말을 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래도 세탁기가 밤마다 몰래 하나씩 삼키는 게 분명하다.
가끔은 세탁기 옆 구석에 숨어 있는 녀석을 발견하면 괜히 반갑다.
“여기 있었구나, 도망자 한 명 검거!”
그럴 땐 마치 길 가다가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이상하게도, 짝이 안 맞는 양말이 있을 때면
그게 내 마음의 여유를 알려주는 척도 같기도 하다.
왜 또 없어졌냐며 짜증이 나는 날도 있지만,
그냥 웃고 넘어가는 날도 있다.
“그래, 언젠가 나오겠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사라지는 것들,
다시 돌아오는 것들,
그리고 그냥 잊고 사는 것들.
양말의 행방불명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지만
그 덕분에 가족이 함께 웃는다.
서로를 부르며 찾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하고,
그 모든 과정이 일상이 된다.
언젠가 세탁기 속 블랙홀이 밝혀지더라도 괜찮다.
그동안 잃어버린 양말들 덕분에
조금 더 웃었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으니까.
오늘도 세탁기를 돌리며 중얼거린다.
“이번엔 제발 다 같이 나오자, 사라지지 말란 말이야.”
마음속으로 다짐도 한다.
'혹시 또 사라져도 괜찮다.'
그 사소한 미스터리 덕분에,
우리 집엔 늘 이야기가 생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