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위로보다 깊은, 오래된 마음
오랜 친구, 나의 또 다른 가족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새 학년이 되면 반이 바뀌는 게 두려웠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가 있으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거나 마음을 여는 건 오래 걸렸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가 있었다.
“한지, 안녕?”
처음 들은 그 인사는 지금도 기억난다.
이름을 불러주며 웃던 얼굴,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인사를 건네던 그 다정한 목소리.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 인사가 나를 편하게 해 줬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말이 잘 통했고, 서로를 배려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했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위로했다.
그 친구는 휘파람을 잘 불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지 못해 신기하다고 말했더니,
어느 날 석양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그 잔잔한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때의 따뜻한 공기와 붉은 하늘빛,
그리고 휘파람 소리까지 —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 그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성인이 되었지만, 우정은 그대로다.
서로 다른 곳에 살고, 각자의 삶을 살지만
언제나 연락이 닿고 마음이 이어져 있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
그게 바로 친구다.
친구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어머님마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 중이었다.
모유 수유 중이라 몸도 불편했고 옷이 젖어 축축했지만,
그 친구 곁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때 느꼈다.
진짜 친구란, 내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그 친구 역시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으로도 지치고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는 늘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아이 내복이 작지 않니?” 하며 새 옷을 보내고,
“발 금세 크니까 양말도 챙겨” 하며 택배를 보냈다.
가끔 내 생일이나 이따금씩 통장으로 5만 원, 10만 원을 보내며 말했다.
“많이는 못 보내지만, 맛있는 거 사 먹고 힘내.”
그 문장 하나에 눈물이 났다.
그 온기가 내 마음을 감싸줬다.
친구 앞에서는 움츠러들지도, 꾸미지도 않았다.
울고 싶으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다.
좋은 일은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속상한 일은 함께 마음 아파해주는 사람.
서로 다투거나 오해가 생긴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솔직한 대화로 금세 풀렸다.
그 친구는 늘 내 편이 되어줬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서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은 늘 같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움이 먼저, 헤어질 땐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다짐한다.
“다음엔 꼭 여행 한번 가자.”
“나이 들어서도 우리 같이 밥 먹고, 수다 떨자.”
나는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 친구에게 힘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엔 내가 그 친구 곁을 꼭 지키고 싶다.
그 친구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우정은 나이를 먹어도 바래지 않는다.
그저 모양만 달라질 뿐이다.
어릴 땐 장난과 웃음으로,
지금은 따뜻한 안부와 마음으로 이어진다.
서로를 위로하고, 웃게 만들고,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존재.
그게 바로 내 친구들이다.
나는 그 친구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 삶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
돌이켜보면 지금껏 친한 친구들 모두 먼저 다가와 주었다. 고맙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더 늙고, 흰머리가 늘어나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웃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내 친구라서 고마워. 너희로 인해 내 삶이 더 따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