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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Oct 23. 2023

영화<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사랑을 찾아 헤매다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는 사랑

쉬운 사랑을 많이 하다가 지친 남성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자기 세계에 갇혀 문을 열지 않는 여성이 있다.

그들은 같은 꿈을 꾼다. 나무가 많은 숲 속의 설원에서 사슴이 되어 함께 뛰어다니다가  연못가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과연 그들은 현실의 세계에서도 만나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소 도축장이다.

곧 끌려가서 죽을 운명의 소들이 갇혀있는 좁은 우리에서, 한 소가 울타리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고 중천에 해가 떠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같은 시간, 도축장을 청소하는 할머니도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도축장의 책임자인 앤드레도 2층 사무실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새로 들어온 검사원 마리어도 지하 검사실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출산 휴가로 쉬는 검사원 대신 임시로 근무를 하러 온 마리어는 하얀 피부의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고 점심 식사도 혼자 한다. 근무 첫날이어서 책임자인 앤드레가 말을 붙이며 같이 식사를 해주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냉랭하다. 심지어 드레의 왼팔 장애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적한다. 소를 도축하느라 바닥에는 피가 흥건한데도 휴식시간에도 그녀는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느 날, 소를 쉽게 짝짓기 시켜주는 교미 약품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해서 경찰이 도축장을 방문해서 수사를 하게 된다. 범인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며 카운슬러를 불러 직원들을 모두 상담하게 되는데, 상담사는 주로 그들의 사생활과 꿈등의 무의식적인 성향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 과정에서 앤드레와 마리어가 자신이 최근에 꾼 꿈을 이야기하는데, 독립적으로 똑같은 내용을 말한다. 상담사는 당연히 둘이 짜고 자신에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지만, 둘은 진짜로 같은 꿈을 꾼 것이다. 둘은 비슷한 배경의 숲 속에서 사슴이 되어 꿈속에서 만난다. 같이 달리거나 함께 눈밭을 파서 먹이를 찾거나 마주 보고 물을 마시다가 코를 부딪치거나 한다. 그들도 서로를 의심하며 믿지 않다가 아침에 일터에서 만나서 말을 하지 않은 채 글로 꿈의 내용을 써서 교환해 보기도 하는데 그 내용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안드레가 자신의 연락처를 주지만 그녀는 휴대폰이 없다고 하고 그는 그것을 거절의 핑계로 받아들인다. 실망한 그는 그날 꿈을 꾸지 않았고 마리어는 꿈에서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다가 깬다. 그녀가 휴대폰을 사고 연락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다음 꿈을 기대하게 되고, 안드레는 그녀에게 같이 자면서 꿈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둘 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안드레가 오랜 세월 아주 많은 여성들과 사귀며 가벼운 관계를 가지다가 염증을 느끼면서 몇 년간 아무와도 사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마리어는 세세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민감한 여성이지만 감각적인 일은 시도조차 않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그를 좋아하게 된 마리어는 두개의 작은 인형을 놓고 그와의 대화를 상상하는데 실제로 주고받은 이야기 대신 마음속 이야기를 한다. 또 신체 접촉을 연습하기 위해 애완동물 인형을 사서 만져보기도 하고, 누워서 잔디밭의 촉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으깬 감자를 주물러보기도 하고, 공원에서 서로 사랑하는 커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하고 심지어 포르노를 시청해보기도 한다.

한편 여자를 만나면 육체관계부터 가졌던 앤드레는 이 상황이 어색하고 마음이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불편한 이 관계를 그만 둘 결심을 하고, 편안한 친구로 지내자며 마리어에게 결별을 통보한다.

괴로운 마리어는 집에 돌아와 욕조에서 손목을 긋는다. 그때 전화가 오고 앤드레는 그녀를 사랑한다며 그녀 없이는 죽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마리어는 급히 손목을 지혈하고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자마자 앤드레의 집으로 뛰어간다. 둘은 드디어 몸과 영혼을 함께 나누는 관계를 갖는다. 마리어가 침대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 앤드레의 왼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서 올려준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둘이 식사를 하며 마리어는 앤드레가 한손으로 자르지 못하는 토마토를 잘라주고, 흘린 빵가루를 치워준다. 그들은 전날 밤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잤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성숙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이다.

헝가리 영화제목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이지만 영어 제목은 ‘On Body and Soul’이다.

남자 주인공 앤드레는 많은 상대와 몸으로 하는 사랑만 하는 사람이고, 여자 주인공 마리어는 마음으로만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소 동화적인 제목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왜 둘이 하필이면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일까?소를 도살하는 과정이나 바닥에 피가 흥건한 장면은, 살아있는 소와 슈퍼마켓에 전시된 포장된 고기를 연결 짓지 못하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동물은 영혼을 가지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감독은 영화 초반에 죽으러 가기 전의 소가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그것을 반박한다. 또한 앤드레가 근육질의 신입사원이 교미 약품을 훔쳤을 거라고 추측하는 대목에서도 교육 수준이 낮고 덩치가 좋은 사람의 영혼을 얕잡아보는 실수를 지적한다.

작가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당연히 몸으로도 존재하고, 볼 수는 없지만 모두 영혼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 둘이 조화로워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펙트럼에서, 앤드레는 몸을 강조하는 쪽의 극단이고 마리어는 영혼을 강조하는 쪽의 극단이니 둘 다 균형이 맞지 않고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다. 앤드레는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보통 사람들이 흔히 거치는 연애 과정도 없었던 사람이었고, 마리어는 누구와도 실제적인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앤드레는 처음으로 여성의 마음을 읽게 되었고, 마리어는 처음으로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들의 결핍과 불균형을 무의식이 꿈으로 알려준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비슷한 결핍과 필요를 가졌다는 뜻이다. 둘의 사랑이 완성되자 그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들은 서로에게 아니마이자 아니무스이다. 마음속의 결핍 상황과 원형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꿈이 보여주고, 현실에서 그 이미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자 심리적인 에너지가 활성화한다. 적극적으로 원형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현실에서 천생연분을 만나는 마법이 일어난다.

개인이 진정으로 자기에게 도달하고 행복하려면 마음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마리어가 앤드레의 불완전한 왼손을 보완하며 토마토를 자르고 빵가루를 치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의 마음이 그의 영혼의 결핍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은유를 본다.

이제 숲 속 눈밭은 고요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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