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Apr 18. 2022

영화<그린 나이트> -죽어야 다시 살 수있다

자기를 발견한 기사 이야기


우리가 상상하는 기사 이야기는 비범하고 용맹한 젊은이가 악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고 왕비나 공주를 지켜서 기사가 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다.

그러나 영화 그린 나이트의 주인공 가웨인은 가문은 좋지만 성격은 지질하기 이를 데 없는 편모슬하의 청년이다. 자질은 평균이거나 오히려 그 이하일 수도 있다.

우리는 타고난 영웅의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가가 궁금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흥미롭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년 가웨인은 크리스마스 아침인데도 유곽의 술독에 파묻혀 있다가 여자 친구 에셀이 와서 깨우자 겨우 일어나 신발도 잃어버린 채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온다. 크리스마스에는 늘 왕이 벌이는 축하연회가 있어서 그의 어머니와 그는 매년 함께 참석해 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이번에는 몸이 안 좋다며 아들만 보내고 자신은 성의 종탑에 올라가 다른 무녀들과 함께 주술 의식을 한다. 그녀는 편지를 쓰고 주문을 외우고 그것을 태운다.


연회에 참석한 가웨인은 왕의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전설의 기사들이 앉은 원탁에는 앉지도 못하고 아랫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왕이 그를 부르며 동생인 어머니 자리에 앉히고 조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그가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하자 왕비는 아직 없을 뿐이라며 앞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왕은 원탁의 기사들에게 무용담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들려 달라고 한다.

이때 갑자기 녹색 기사가 들어오며 가웨인의 어머니가 작성했던 편지를 꺼내 전해주고 왕비가 그것을 낭독한다. 그 내용은 녹색 기사와 대적해서 이기면 무기, 명예, 재산을 주겠지만 반드시 1년 뒤 녹색 성당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일격을 받아야 하고 그 일격은 뺨을 긁히든 목을 잘리든 '받은 그대로'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원탁의 기사들마저도 주저하며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가웨인이 나서며 대결하겠다고 한다. 자신의 칼조차 없어서 왕의 검(아마도 엑스칼리버)을 넘겨받은 그가 녹색 기사와 싸우려 했는데 기사가 대응을 하지 않자 가웨인은 기사의 목을 내리친다. 녹색 기사는 떨어진 목을 주워서 들고 도끼를 가웨인에게 넘겨준 채로 1년 뒤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 뒤로 가웨인은 나라의 전설이 되었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유흥에 빠져있다.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 날 왕이 찾아와 서약을 지키라고 재촉한다. 어머니도 이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말라며 녹색 벨트를 아들의 허리에 매어준다. 여자 친구 에셀은 꼭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씁쓸하게 말하며 방울을 목에 걸어준다.

가웨인은 갑옷과 벨트와 녹색 기사의 도끼를 가지고 말을 타고 등 떠밀려 여정을 떠난다.


시체들이 즐비한 벌판에서 어떤 소년이 녹색 성당의 방향을 가리켜 주었는데 가웨인이 고맙다는 말만 하고 떠나려 하자 소년은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할 수 없이 그는 동전 한 잎을 던져준다. 다시 길 떠난 그를 소년의 무리가 따라와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묶어 놓은 채로 가버린다. 그들이 가웨인에게 당신이 기사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니라고 부정한다.

간신히 밧줄을 풀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지쳐서 가던 그는 숲 속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그 집의 2층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자던 그를 어떤 소녀가 다가와 남의 침대에서 뭐 하고 있냐며 깨운다. 그녀는 과거에 어떤 남자가 자신의 목을 잘라 죽였다며 목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고 가웨인은 호수 물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해골을 찾아준다. 그녀는 답례로 잃어버린 도끼를 돌려주고 녹색의 기사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힌트를 준다.

다시 길을 떠난 그는 황야에서 헤매다가 자신을 따라오던 여우와 동행하기로 한다. 절벽에서 추락하고 겨우 눈을 뜬 그는 에셀이 준 방울이 떨어진 자리에 있는 버섯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먹고는 자신의 몸이 썩어 들어가고 멀리에 녹색 기사가 서 있는 장면을 환각으로 본다. 한편으로 거인 여자들의 무리가 행진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사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여우와 함께 하울링 하기도 하면서 함께 길을 간다.


광야를 헤매다가 여우의 인도로 겨우 어떤 성에 당도한다. 그곳에는 성주 부부와 눈을 가린 나이 많은 여성이 있다. 나이 많은 여성은 투명 인간처럼 아무와도 직접 소통하지 않고 그냥 가웨인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을 뿐이다. 성주의 부인은 에셀을 연상하게 하는 외모에 서재의 책을 거의 다 읽은 지혜로운 여성이다. 그녀는 가웨인의 방울 목걸이를 보고 사랑의 징표냐고 묻는데 그가 아니라고 부정하자 그것을 빼앗는다. 그녀는 빨간색은 욕망의 색이지만 순간이고, 결국은 녹색이 녹청과 이끼처럼 인간의 몸과 미덕을 다 덮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웨인이 그녀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자 당신은 기사가 아니라고 말하며 앞으로 그의 생명을 보호해줄 것이라며 녹색 벨트를 선물한다.

성주는 가웨인에게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명예’라는 확신 없는 대답을 듣는다. 또 획득물 교환 게임을 하자며 사냥한 동물과 여우를 선물하고 그에게도 대가를 요구하지만 가웨인은 획득한 녹색 벨트를 주지 않는다.


다시 녹색 성당을 향해 길을 떠난 가웨인이 나룻배가 있는 물가에 다다랐을 때 다시 나타난 여우는 녹색 벨트의 의미는 살아남는 것이라며 녹색 성당에 가면 죽음뿐이니 굴욕을 참고 집에 돌아가자며 회유하지만 그는 계속 나아간다. 드디어 나무와 넝쿨이 우거진 성당에 도착하여 맨 끝에 앉아있는 녹색 기사를 발견하고 둘은 서로 오랫동안 응시한다. 기사가 그를 내리치려는 순간 그는 진짜 끝인가 두려워서 두 번 주저하고, 세 번째에는 말을 타고 집으로 도망친다.


집으로 돌아온 가웨인은 여전히 녹색 벨트를 차고 있고, 병이 든 왕으로부터 기사 책봉을 받고, 왕이 죽자 왕이 된다. 에셀과 재회하여 아들을 얻지만 그녀를 버리고 공주와 결혼한다. 그러나 연이은 전쟁에서 왕자도 잃고, 에셀과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왕비도 떠나고 마지막에는 엄마도 떠난다. 텅 빈 왕실의 왕좌에서 녹색 벨트를 풀자 그의 목이 풀썩 떨어진다.


환상에서 눈을 뜬 가웨인은 아직도 녹색 기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이번에는 스스로 녹색 벨트를 풀고 머리를 내민다.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잘했다, 용감한 기사여. 이제 네 머리를 자르겠다.”라고 말하며 도끼를 들어 올린다.

          



그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조건은 왕족 가문 홀어머니의 아들이고 왕(아마도 아서왕)의 조카라는 것이다. 즉 금수저 가문의 출신이다. 이것은 그의 페르소나로 고착되어 변변한 스펙조차 없는 그에게 뭔가 세상에 업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페르소나의 과도한 압력에 시달리는 가웨인은 그것에 반발하는 그림자의 에너지가 강해져서 전체를 압도하며 무분별한 쾌락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술집에서 신발도 잃어버리고 자신의 검조차 없이 전혀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채, 어머니가 설정해 놓은 목표(스펙을 쌓아 기사가 되고 결국 왕이 되는 것)에 첨벙 뛰어들고 만다.

그가 얼마나 생각 없이 행동했는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인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녹색 기사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목을 자른 만용에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한 것이다. 그는 이후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후 등 떠밀려 떠난 모험에서 도둑 소년에게 갑옷, 녹색 벨트, 도끼, 말등 그가 받은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가 비로소 남들이 그에게 부여한 페르소나를 벗고(계급장을 떼고) 벌거벗은 자아로 자신의 탐색을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당신은 기사냐는 소년의 질문에 무늬만 기사일 뿐인 가웨인은 자신은 실제 기사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 뒤에 만난 오두막 침대의 혼령은 머리(생각) 없이 누워있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그를 비판한다. 그가 물속(무의식 안)에서 머리를 찾아주자 혼령은 녹색 기사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중요한 통찰을 준다. 혼령의 머리이자 사실은 자신의 머리를 되찾게 된 가웨인이 앞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성에서 만난 성주는 획득물 게임의 조건이자 인생의 진리인 ‘받은 만큼 돌려준다’라는 원칙을 말하며 사냥한 동물을 선물로 주지만 가웨인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사냥한 동물의 의미는 본능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고 이제까지 무분별한 쾌락을 추구했던 가웨인에게는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그는 가웨인에게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하고 가웨인은 "명예"라는 확신 없는 대답을 하는데 이러한 자신 없는 태도는 명예를 얻는 것이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 어머니나 사회가 부여한 임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주 부인은 지혜를 겸비한 여성인데, 그녀는 녹색이라는 색에 대해 말하며 모든 미덕을 덮어버리는 시간의 허무한 본질을 간파한다. 가웨인과 대화를 해본 그녀는 아직은 그가 더 성숙해야 한다고(아직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녹색 벨트를 선물로 주어 보호한다.

    

영화에서는 그의 성장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아니마의 상징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마음 안의 여성성으로 여러 단계로 발전하여 남성의 성숙을 돕는다. 첫째 단계는 모든 것을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는 ‘이브’이고, 둘째는 성적인 집착의 단계로 ‘헬레나’, 셋째로 초월의 단계인 ‘마리아’, 마지막으로 지혜를 지닌 ‘소피아’의 단계가 있다. 가웨인에게 영향을 주는 여성중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아들의 출세를 위해 욕심을 보이는 이브 형으로 보이고, 여우나 눈이 안 보이는 나이 든 여자는 어머니의 변형으로 자신이 옆에 없을 때에도 항상 아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에셀은 현실에서 가웨인이 성적으로 집착하는 헬레나 단계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남자 친구가 출세에 집착해서 맹목적으로 나아갈 때 잠시 멈출 수 있게 해 주고, 위기에 빠졌을 때 그녀가 준 방울로 앞날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성스러운 마리아 형에 가깝다. 성주 부인은 가웨인이 진정한 기사인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녹색의 의미를 설명하며 이 세상 명예와 시간의 허무함을 이해하는, 지혜를 가진 소피아 단계의 아니마이다. 그의 마음속 아니마가 발전하면서 가웨인도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거인족 여성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화면을 뒤집어, 떨어질 것 같은 생물들을 대지가 붙잡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생명을 보호하고 키워내는 것이 결국 여성(대지) 임을 밝힌다.

     

녹색 성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엄마를 상징하는 여우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회유하는데 여기서 엄마는 그의 아들이 무기력하게 사는 것이 싫어 그를 억지로 세상에 내보냈으나 그녀의 목적은 세속적인 출세에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즉 혈육의 성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욕망의 수준이다. 그러나 가웨인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녹색 기사를 대면하고, 그가 마지막에 주저하며 상상했던, 자신이 죽지 않고 돌아가서 살 수 있는 삶(명예를 얻은 삶)이 바로 어머니가 자신에게 설정했던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녹색 벨트가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녹색 벨트를 풀고 자기 자신인 녹색 기사에게 목을 내민다. 드디어 녹색 기사는 가웨인을 훌륭한 기사라고 부르며 목을 내려친다.

     

죽지 않고서는 다시 살 수 없다.

미숙한 가웨인은 죽고, 이제 자기를 찾은 성숙한 기사 가웨인의 시작이다.

이 스토리는 결국 생각 없이 사회나 부모가 설정한 목표대로 살던 한 청년이 성장하여 자기를 발견하며 진정한 남자가 되는 이야기이다.

기사가 되거나 왕이 된다는 것은 마음의 영역에서 진정한 자기를 실현한다는 은유이다.

영화에서는 가웨인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탐험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지를 풍부한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인생의 여정에서 자기를 실현한, 개성화를 이룬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전 14화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마음의 모양은 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