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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n 01. 2022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마음의 모양은 원이다

마음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좋은 영화는 그 자체의 줄거리도 개연성이 있으면서 상징이나 은유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영화의 부제를 ‘마음의 모양’이라고 붙이고 싶었는데 그만큼 심리학적으로 풍부한 상징이 넘쳤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의 줄거리를 감상하고, 심리학적으로 영화 속 인물들을 연결하여 마음의 구조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라이자는 60년대 초 냉전시절, 미국의 항공 우주센터 연구소의 청소부 일을 하는 청각 장애인이다. 어릴 적 목에 상처가 있는 상태로 물가에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성장했다. 장애인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생활을 하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동료인 흑인 여성 젤다가 그녀와 소통하고 그녀를 도와주기도 한다. 이웃에 사는 게이 화가 자일스와도 자주 왕래하며 수화로 대화하고 그의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에 아마존 지역에서 ‘강의 신’이라고 불리던 양서류 인간이 잡혀온다. 일라이자가 연구실 청소를 하다가 수조 안의 양서류 인간에게 삶은 달걀을 주고 음악도 틀어주며 관심을 보이자 그도 반응을 보인다.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 생물을 해부 분석하려고 한다. 그러면 그 생명체는 죽게 된다.

러시아 스파이 과학자인 호프는 이 생물이 특별한 능력이 있고 소통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보호하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일라이자를 도와 그를 살려주려고 애쓰다가 죽게 된다.

일라이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 생물을 연구소에서 탈출시켜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욕조의 물에 담그고 호프 박사가 준 영양제와 소금을 넣어준다.

둘은 점점 친해지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원래 물속 생물이었던 그에게 부족한 환경 때문에 그는 점점 약해지고 일라이자는 그를 물에 놓아주려고 바다로 데려간다.

이를 알고 따라온 스트릭랜드의 총을 맞고 둘은 쓰러지지만, 양서류 인간은 숨이 멎은 일라이자를 안고 함께 바다로 뛰어든다.  

처음에는 물속에서 양서류 인간이 일라이자의 입에 공기를 불어넣지만, 점차 일라이자의 목에 있던 상처가 아가미로 변하며 호흡할 수 있게 되고 둘은 물속에서 포옹한다.


          



영화의 겉 이야기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청각 장애인 일라이자가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양서류 인간을 살리려고 바닷가로 데리고 가고, 스트릭랜드의 총에 맞아 죽을 위험에 빠지게 되지만, 다시 일어난 그 생물이 그녀를 바다로 데리고 들어가 살아나게 되는 스토리이다.

흥미롭게도 일라이자의 주변 인물들이 다 소수자나 경계 밖의 존재들이다.

일라이자는 장애인이자 하층 노동자이다.

친구 젤다는 사회에서는 흑인이면서, 노동자이고, 가정에서는 여성이어서 남편의 모든 시중을 든다.

양서류 인간은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종이 다르다.

자일스는 예술가이면서 성소수자이다.

호프 박사는 외국인이다.(냉전시대의 러시아인이다.)

유일하게 스트릭랜드만 사회의 주류인 미국의 백인 남자이며 직장에서 고위 책임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 중에서 스트릭랜드만 저급한 인간임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겉으로 보이는 모양이나 조건이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도 60년대로 냉전이 사회적으로 서로를 가르고 미워하던 시절이었다.  


영화의 겉 구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비중이 있는 인물은 일라이자이다. 그녀는 아기일 때 목에 상처를 입은 채 물가에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란 언어 장애인이지만, 생명의 에너지가 많고 같은 층에 사는 게이 화가와 밀접하게 소통한다. 목소리를 잃은 공주라는 점에서 인어공주가 떠오르는데 둘 다 언어의 표현이 부족한 만큼 남들은 모르는 영역의 이해가 가능하다.


두 번째로, 일라이자에게 영감을 얻고 먹을 것도 공급받으며, 그녀 없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하는 게이 화가는 현실에서 사랑도 일도 잘 풀리지 않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처음에는 양서류 인간을 징그럽게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친해지고 그와 접촉하면서 빠진 머리가 나는 등, 젊어지고 활력이 생긴다.

 

세 번째로, 가장 흥미로운 피조물인 아마존 강에서 잡힌 양서류 인간이 있다. 물속에서 살고, 자유로우며, 선입견 없이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그는 생명력의 원천으로 보인다. 영화가 인간과 이종 생명체 사이의 육체적 사랑을 다룬다는 소개를 듣고 영화를 거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관계는 신화 속 이야기처럼 상징적 결합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이 생물은 공기 중에서도 단기간 살 수 있지만 물속에서 훨씬 자유롭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어두운 인간인 연구소 안전 소장이 있다. 그는 결국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다가 양서류 인간에게 입은 상처가 썪어들어가게 되고 나중에는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에서는 별로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게이 화가 자일스가 심리학적으로는 주인공인 ‘자아’이다. 일도 사랑도 풀리지 않아 벽에 부딪친 그에게 영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인 일라이자는 그의 뮤즈이자 ‘아니마’이다.

그들은 현관문을 닫지 않고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 그러나 100%의 소통은 아니다. 그녀가 말을 못 한다는 설정이 그녀가 완전한 의식 세계에 있지는 않다는 은유이다.

미지의 생명체 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무의식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 미지의 영역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잘 길들이면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억압하면 사나워진다. 양서류 인간은 게이 화가의 집에서 처음 본 고양이를 잡아먹지만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다른 고양이와 친하게 지낸다.

일라이자는 현실의 인간(화가)과도, 무의식적 존재(미지의 생명체)와도 교감할 수 있다. 그녀는 두 세계의 연결자이다. 이때 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이다. 물은 미지의 생명체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고 경계를 없애서 결합을 쉽게 해주는 물질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상에서는 목소리를 잃었지만, 물속에서 양서류 인간과 사랑하고 춤출 때는 노래할 수 있는 존재이다. 마지막에 총을 맞고 물에 빠졌을 때도 처음에는 양서류 인간이 입으로 숨을 불어넣어 주지만 나중에는 혼자서 그녀의 아가미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둘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춤추듯 헤엄치며 화가에게 영감을 준다.

영화에서 그들의 집 속 창문 구조는 그들의 마음의 모양을 시각화하는 훌륭한 장치이다. 그들이 각각 사는 집의 창문 모양은 1/4원이다. 두 집의 창문을 합치면 반원이 된다. 즉, 둘은 지상에서 반원형 창문을 반씩 나누어 쓰고 있는 심리학적으로 같은 인격체 안의 부분들이다. 은유적으로 지상 세계는 의식 세계를 의미한다. 무의식 세계는 물속인데 영화에서 모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나머지 반원을 상상할 수 있다. 의식의 반원과 무의식의 반원을 합치면 원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마음의 모양은 원을 이룬다.

자아(게이 화가), 아니마(일라이자), 무의식(양서류 인간), 이 세 부분이 합쳐지면 비로소 마음의 완전한 모양, 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과정에서 ‘그림자’(안전소장)의 끈질긴 방해공작을 이겨내야 한다.


일라이자는 안전소장(그림자)의 총을 맞고 양서류 인간과 함께 물속(무의식)으로 돌아가고 현실(의식)에는 화가만 남는다. 영화의 첫 장면이 일라이자의 집이 물에 잠겨서 가구들이 떠다니며 자일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것은 자일스가 현실을 관장하는 자아이고 일라이자는 이제는 의식 세계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일스가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가 일라이자와 미지의 생명체를 마음속에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은 그의 심리가 완전체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마음의 모양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인 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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