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디즈니 영화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영화가 사랑에 관한 것이고 결말이 행복한 결혼으로 끝나는 판타지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겨울왕국이라는 영화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자매간의 사랑이어서 참신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렌달 왕국에는 두 명의 공주가 있다. 큰 딸인 엘사와 작은 딸인 아나가 그들이다. 어린 두 자매는 매우 친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이 눈을 가지고 놀던 중 아나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도우려던 엘사의 손길이 아나에 닿게 되어 꽁꽁 얼게 되고, 부모인 왕과 왕비가 엘사를 야단치자 낙심한 엘사는 스스로 방에 격리되어 나오지 않게 된다. 아나는 매일 같이 놀던 언니가 보고 싶어 함께 놀자고 문을 두드리지만 엘사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들이 자라고 왕과 왕비가 배를 타고 원정을 나갔다가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자 큰딸인 엘사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대관식을 올리는 날, 아나가 만난지 하루도 되지 않은 어떤 왕자와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하자 화가 난 엘사가 장갑을 벗고 외부와 접촉하면서 왕국이 얼어붙게 된다.
자신의 힘이 왕국을 어렵게 만들자 절망한 엘사는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격리하게 되는데, 언니와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아나는 산속으로 엘사를 찾으러 간다. 이때 순록을 타고 다니는 순박한 크리스토프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산속으로 들어간 엘사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동안 숨기고 억압했던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산하며 자기만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녀를 해치러 온 왕자와 싸우기도 하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엘사를 찾은 아나는 언니를 설득하려 하지만 실패하는데, 이과정에서 아나의 심장에 얼음이 박혀 몸이 얼기 시작하고 그것을 치유하려면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받게 된다.
크리스토프는 아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아닌 왕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마음을 접고 그녀를 성에 데려다주고 떠난다. 아나가 진정한 사랑의 처방대로 기다리던 왕자와 입맞춤을 해서 위험을 벗어나려던 순간, 왕자는 아나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고 왕국만을 차지하려던 속셈을 드러낸다.
갇혀있던 왕궁에서 탈출해서 눈밭을 헤매던 아나를 크리스토프가 찾고 있을 때, 엘사도 아나를 찾으러 산에서 내려왔으나 마침 그때 엘사에게 왕자가 다가와, 그녀 때문에 아나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자, 절망한 엘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쓰러진다. 왕자가 쓰러진 엘사를 죽이려는 순간, 이를 발견한 아나가 대신 칼을 막으며 언니를 구하지만 온몸이 얼어붙는다. 이때 일어난 엘사가 울면서 아나를 포옹하자 아나가 살아나고 왕국도 녹으며 치유된다.
치유가 되기위한 처방인 '진정한 사랑'은 이성과의 사랑이 아니라 자매간의 사랑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주인공이다. 왕국은 마음의 세계이고 그속에서 주인공은 항상 왕자이거나 공주이다. 대부분의 동화의 엔딩에서 공주는 고생 끝에 왕자와 결혼을 하고 이후 내내 행복하게 산다. 동화를 단순하게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시켜 각색한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어려운 과업을 통해 성숙하는 과정보다는 예쁜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화려하게 결혼하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사실 인생에서 인간이 잘 맞는 이성을 만나 짝을 이루는 것은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과업은 어린 소녀가 잘 자라 성숙한 여성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볼때 겨울왕국은 결혼 적령기 이전의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방향이 기존 디즈니 동화와 달라서 참신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으나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단지 남성이 아니라 자매와의 사랑으로 바뀐 것으로만 이해를 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야기의 겉구조상 자매의 사랑도 성립하겠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자매는 한 인물이고 아나라는 한 소녀가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통합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분석 심리학적으로 자매 두 사람은 한 개인이 가진 두 측면의 은유로 볼 수가 있다. 아나가 실제 삶을 살아가는 ‘자아’라면 엘사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왕과 왕비, 즉 아나의 부모는 아나를 밝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도록 양육하면서, 그녀가 생각을 많이 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마다 야단치고 억압한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소녀는 그러한 특성을 남이 알아볼 수 없도록 결사적으로 억압한다. 억압은 엘사가 오랜 기간 방안에서 문을 닫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나중에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산속, 즉 더 깊은 무의식속으로 숨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식이 가진 양면중 한 측면을 심하게 억압한 것을 보면 왕과 왕비는 그다지 현명한 부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교육이 오래될수록 겉으로는 명랑한 소녀의 마음에 억압된 차가운 에너지는 커져 가고 마음의 균형의 추는 내면의 그림자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부모도 어느 시기가 지나면 유명무실해지는데 영화에서는 갑자기 부모가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실종되는 걸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언젠가는 누구나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해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나이는 찼으나 내면과 통합되지 않은 미성숙한 아나는 어쩌다 마주친 허우대만 멀쩡한 건달(왕자)에 반해 결혼하려 하지만,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내면의 그림자인 엘사는 상대방을 의심하고 한눈에 그것이 실수임을 알아차린다. 그 갈등속에서 분출된 엘사의 에너지는 막강해서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고 더욱 자신을 고립시키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아나가 이제는 그림자인 엘사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어릴때는 계속 문을 두드렸고, 나중에는 온갖 고생을 하며 산속까지 찾아간다.) 이 고난의 과정에서 아나를 사랑하는 순박하고 진실한 남자친구도 만나게 된다.
마침내 두 자매는 고난을 헤치고 만나서 소통하고 이해하고 통합한다. 즉 아나는 무의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엘사는 여왕이 된 후에 자신의 얼리는 힘을 왕국 전체가 아닌 성앞의 광장에만 적용해서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무의식의 에너지를 정도와 범위까지 조절해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아나와 엘사가 서로 의지해서 왕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아나의 마음은 심리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잘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성숙 단계에서 어떤 사람이 무의식에 휘둘리면서 동시에 이성과 진실한 사랑을 할 수는 없다. 그림자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엘사의 힘이 크다. 영화속 아렌달 왕국을 다스리는 여왕이 아나가 아닌 엘사라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마음의 주인이 자아가 아닌 그림자쪽에 기울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무의식에 대해 알아볼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중요한 심리학적 과업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