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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ug 16. 2022

영화<헤어질 결심>마침내 사랑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다

뒤늦게 깨달은 진심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도덕의 영역 밖에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결혼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걸 멈출 수는 없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를 놔두고 다른 사람과 살림을 차렸다면, 행동이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그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법 입국한 서래는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인 기도수라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는 집에 많은 LP 컬렉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고 자신이 가진 모든 물건에 이니셜을 새길 정도로 소유욕도 강하다. 문제는 아내도 소유물로 생각하고 그녀의 몸에도 낙인을 찍듯이 이니셜을 새겼다는 것이다. 그는 아름답고 자존심 강한 아내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강제 추방을 들먹이며 늘 그녀를 협박한다.

견디지 못한 그녀는 그의 취미가 암벽등반을 하면서 유튜브로 방송하는 것임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공부하고 살인을 계획하고 알리바이도 준비해서 남편이 암벽 정상에 올랐을 때 자신도 다른 루트로 올라가서 그를 떠밀어 추락시켜 죽인다.

이과정에서 조사를 받으며 형사 해준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강한 호감을 느낀다.

형사 해준은 오랜 기간 잠복 수사하며 그녀를 관찰하지만 준비된 알리바이로 서래가 무죄가 되자 내심 기뻐하고,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오랜 고질병인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잠을 잘 잘 수 있는 신기한 경험도 한다.

그녀와 계속 연락하다가 호의로, 결근한 그녀 대신 간병 도우미로 가게 된다. 우연히 할머니의 휴대폰을 보고 그녀가 남편이 죽던 날 올라간 고도가 절벽의 높이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하며 서래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해준은 절망하며 그녀에게 그 폰은 깊은 바다에 버려서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해준의 형사로서의 반듯한 자존심은 붕괴되어버려서 그는 서래가 있는 부산을 떠나 아내가 있는 이포로 전근을 가버린다.

     

안개가 자욱한 이포에서 해준의 불면증은 더욱 심해지고, 어느 날 시장에서 해준 부부는 증권 애널리스트와 재혼한 서래 부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허위정보로 끌어들인 돈으로 투자를 하는 사기꾼이었는데 투자자들로부터 도망 다니다가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서래가 해준이 보고 싶어 이포로 가자고 한 것이었다. 서래의 남편은 둘의 눈빛에서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의 폰에 녹음된 해준의 말을 세상에 공개해서 해준을 파멸시키겠다고 서래를 협박한다. 결국 서래는 빚쟁이인 철석이가 남편 때문에 암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가 죽게 되면 당장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말을 기억하고 그의 어머니를 병문안하며 그녀를 안락사시킨다. 그 결과 철석이는 남편을 죽였고 또다시 해준은 형사로서 피의자 서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버리지 않은 폰을 돌려주며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바닷가로 가고, 따라간 해준은 차에서 그녀의 폰을 발견하고 녹음된 내용을 듣는데, 그제야 그는 폰을 버리라는 말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래는 해변에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고 얼마 후 밀물이 들어오자 그녀의 흔적은 없어지는데 해준은 물밖에서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찾아다닌다.

         



영화는 몇 가지 이항 대립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래라는 중국에서 온 여성은 순수하고 불쌍한 여성인가, 팜므파탈인가 하는 것이다.

서래는 치밀한 계획으로 남편을 죽이고, 경찰서에 왔을 때 담당 형사의 호감을 단번에 알아챈다. 따라서 처음에는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가 가진 불리한 사진 증거를 지우고 자신이 무죄를 받는데 도움이 되도록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점잖고 잘생긴 형사는 그녀를 관찰하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며 인간적으로 돕는다. 그의 관심을 받으며 그녀도 그를 바라보다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서래의 처음 의도는 그를 이용할 나쁜 마음이었으나 점차 해준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랑에 그녀의 목숨을 건다.

1부에서의 해준의 후배 형사는 서래가 남편을 죽인 나쁜 여자라고 하고, 2부에서의 후배 형사는 같은 사람인 그녀가 불쌍한 여자라고 한다.

그녀가 두 번째 남편이 죽었을 때 입은 청록색 드레스는 보는 사람에 따라 파란색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같은 옷을 놓고 다른 색을 보는 것이다.

서래가 자신의 엄마와 철썩이 엄마를 죽일 때 사용한 펜타닐도 청록색 캡슐인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고통받는 사람을 편안하게 보내주는 약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독약이기도 하다.

결국 세상에 뚜렷하게 판단을 내릴 수 는 문제는 없다. 모호하고 안개가 낀 이포라는 도시의 배경이 문제의 성격을 말해준다.

     

사랑을 소통이라고 볼때, 둘의 소통방식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먼저 서래와 해준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끌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둘의 표현 방식은 너무도 다르다. 남성은 직접적이고 묘사적인 반면 여성은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이 차이가 해준은 폰을 바다에 버리라는 말을 실제 행동을 지시하는 말로 한 반면, 서래는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이게 한다.

남성과 여성은  말의 의미를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서래를 찾으러 가는 해준은 그녀와 통화를 하며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금방 이해하지 못해서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다가 나중에야 그 의미를 이해한다. 더 빨리 그녀의 말과 행동을 이해했다면 서래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도 슬픔이 파도처럼 오는 사람과 잉크처럼 번지는 사람이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감정이나 의미를 깨닫는 것도 사람마다 성별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것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서로 외국인이다. 서래는 드라마를 통해서 배운 한국어를 서툴게 하고 급할 때는 모국어를 쓰고 번역 앱을 통해 들려준다. 다른 나라의 외국어를 알아듣는 데는 언제나 통역이 필요한데 그때 시간이 걸려서 소통의 즉시성이 사라지고, 오역이 생기고, 뉘앙스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해준도 사랑하는 그녀에게 직접 소통을 하고 싶어서 초급 수준이지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당신은 예쁘다’는 말을 중국어로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소통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이다. 그들의 대화는 자연인의 대화가 아닌 형사와 피의자의 대화이다. 취조라는 형식에 숨겨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동료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대화를 한다. 또 다른 하나, 둘은 기혼자이다. 그들의 대화와 행동은 윤리적인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해준은 서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형사이고 유부남이어서 그 감정을 애써 누른다. 그러나 그녀가 무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녀를 수사할 책임이 있다는 명분으로 잠복하며 밤새 그녀를 마음껏 관찰한다. 그녀가 무엇을 먹으며 언제 담배를 피우며 어떻게 우는지를 본다. 그에게는 그녀를 실컷 볼 수 있는 핑계가 있다. 오래 볼수록 더 이해할 수 있고 더 사랑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 연상된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청년은 건너편 아파트의 여인을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그녀가 남자 친구와 싸우고 들어와 식탁에서 우는 것을 보고 같이 가슴 아파한다. 관찰당하는 것을 안 여자는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나중에 그의 진심을 알게 되고 그의 자리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망원경으로 보면서 과거 자신이 상처받았을 때 청년이 사실은 옆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진심을 받아들인다. 그가 실제로 자신을 위로하는 장면을 연상하며, 점차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해준의 시선을 느낀 서래는 그의 위로를 느끼며 자신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 서래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도 그 증거를 버리라고 말한 해준은, 형사로서의 존재감이 무너지면서 그녀를 떠나게 된다.

    

서래는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두 번 한다.

첫 번째는 두 번째 남편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할 때였고, 두 번째는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였다.

두 번 다 자신보다는 해준을 위해 한 일이다. 마치 영화에서 복선으로 홍산호라는 인물이 죽기보다 감옥 가기를 싫어하지만, 감옥 가기를 각오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누구를 때린 것과 같다. 그때 서래는 산호가 그여자를 죽을 만큼 좋아했을 거라고 말한다. 서래도 해준을 문자 그대로, '죽을 만큼' 사랑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사라지지만 해준의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미결 사건으로 남으려 한다.     

이영화는 그 흔한 러브신도 없고 딱 한번 키스하는 장면만 나오지만, 정말 에로틱한 장면이 있다. 바로 서래가 해준을 재워주는 장면이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에게 가서, 눈을 감기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자신의 숨소리를 듣게 하고, 서로 숨소리를 맞춘다. 함께 바다로 가서 해파리가 되어 무념무상으로 물을 밀어내듯 오늘 일을 밀어내라는 주문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밀어였다.

그는 서래를 관찰하거나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낸 날마다 깊은 잠을 잔다.

해준의 아내는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고,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은 서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빈번하게 남발하지만, 그들 부부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드는 반면, 서래와 해준은 서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같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이다.

이렇듯 사랑은 결혼을 초월한 일이다.

          



영화의 겉 구조가 해준과 서래의 사랑 이야기라면,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준을 분석할 수 있다.

해준의 특징은 반듯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사회적 잣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페르소나가 강한 사람이다.

그가 만일 형사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그는 서래를 밤새 훔쳐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일에 집중하고 무엇을 똑바로 바라본다. 정신 차리고 바라보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사실은 안구 건조증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반면 이런 사람은 내면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 분명한 의식을 강조하는 사람은 모호하고 뿌연 안개속 상황인 무의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언제나 명료한 해결을 지향한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미결 사건들을 커튼 뒤, 즉 무의식에 저장하는데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의식에 틈입하며 해준을 괴롭힌다.

그것의 증상이 바로 불면증이다. 불면증은 의식과 무의식이 불화하다는 의미이다. 내면의 무의식의 어떤 부분이 끝없이 해준을 괴롭혀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여성적인 부분인 아니마 이미지가 현실의 배우자와 비슷하다면 그의 경직된 페르소나와의 균형을 이루고 통합을 이룰 수도 있었겠지만, 해준의 과학자 아내는 팩트가 중요한 사람이고 사랑을 섹스나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니마의 이미지와 잘 맞는 여성인 서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해준과 호흡이 하나가 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여성이다. 그녀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의식과 무의식의 중재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녀를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사회적 페르소나가 너무 강하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형사의 직분을 저버렸을 때 그의 페르소나는 붕괴하였는데 그의 자아와 너무 오랜 시간 밀착된 페르소나가 붕괴하자 그는 견딜 수 없게 되어 그녀를 떠난다.

     

그러나 아니마가 없어진 그는 다시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마침내 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그와 결합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아는 서래는 해준의 무의식의 상징인 바다의 갯벌 속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그의 마음속 미결로 존재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도 진심으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아니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구조의 붕괴가 재건의 전제 조건인 것이다. 해준은 아내와 헤어지고 단정함의 상징인 넥타이를 자발적으로 벗어던지고 흐트러진 채 서래의 이름을 부르며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는다.

현실 세계에서는 당연히 그녀를 찾지 못하겠지만, 서래는 해준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아니마로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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