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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pr 16. 2022

영화<사도>-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그렇게 거슬렸을까?

그림자의 투사가 불러온 비극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와 파국의 방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어떤 비극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너무도 드라마틱한 이 스토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 봤겠지만, 이준익 감독의 방식은 역사보다는 두 사람의 심리묘사에 치중하고 그들의 대화로 차이와 통합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감동적이다.

 

영조는 무수리 궁녀의 자식으로 출신이 다른 왕자와는 달리 미천하여 신하들의 존중을 받지 못하고 적자인 형 경종의 급사로 노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출신 콤플렉스’가 극심하였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존재였다. 하나뿐인 아들 사도에게는 이런 괴로움 없이 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강박을 계속해서 투사하였다.

현대에 빗대자면 온갖 조기교육을 다 시켰고 그 부작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신적으로 가한 가장 나쁜 짓은 아이의 심리에 ‘이중 구속’을 한 것이다. 이중 구속이란 한 사람에게 상반되는 요구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영조는 늘 사도가 어떤 일을 특정 방식으로 했을 때 비난하고, 그 반대로 해도 비난했다. 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든 것이다. 심리적으로 이중 구속 상태에 오래 노출이 된 사람의 정신은 망가진다고 알려져있다.

또한 영조는 ‘양극성 장애’로 기분이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했고 표현이 솔직하지 못하여 거짓으로 말을 한 다음 상대방의 반응을 시험하곤 했다. 임기 중 양위를 하겠다고 한 것이 다섯 번이라 하는데 사실은 왕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을 뿐 이었다. 그때마다 아들은 석고대죄를 하며 양위를 만류해야 했다.

왕으로서의 외적인 치적이 훌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조는 내적으로는 이렇듯 인격적인 결함이 많은 인간이었다.


이런 아버지, 그것도 보통의 아버지가 아닌 권력의 정점인 왕 밑에서 자란 자식이 정신적으로 제대로 자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그는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되어서 생모와 분리되는 바람에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었고 어려서 결혼한 세자비도 똑똑하지만 유난히 현실적인 여성이라 남편의 허물을 감싸주는 여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남편, 자식, 친정 중 남편은 선택지에 없었던 듯하다.

사도는 활동을 좋아하고 예술을 즐기는 성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견디지 못하고 학대했고 사도의 일탈은 점점 심해져갔다. 비구니나 기생을 들여 음란한 행각을 하고 나중에는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버지를 죽이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왕이니 그것은 역모가 된다. 영화에서는 이 사건이 사도를 뒤주에 넣어서 죽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날아가는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한가!” 그는 활을 쏘며 날아가는 화살을 부러워했다.

사도는 죽음으로 겨우 그가 원하던 자유를 얻었다.

               



정조가 제대로 성장한 것은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병자 집안이기 때문이다. 조울증과 편집증에다 가슴에 사랑이라고는 없는 할아버지와 미쳐 날뛰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그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는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성장하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는 할아버지의 머리와, 아버지의 가슴에다, 어머니의 현실 감각까지 이상적으로 물려받아 나중에 성군이 된다.

수원의 화성을 축조하고 화려하게 행궁으로 행차하여 어릴 때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행사도 멋지게 치른다.

심리학에서 ‘승화’의 사례로 이보다 적합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와 뒤주 사건의 기록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 이것이 후세에 알려지게 된 것은 혜경궁 홍 씨의 기록 <한중록>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기행과 비극적인 죽음을 견뎌낸 이 여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한의 깊이는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남편을 사랑했는지, 좋은 아내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냉정함과 현실 감각이 자식과 그녀의 가문을 살렸을 것이다. 남편을 선택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남편은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 한 많은 그녀의 인생도 친정 가문의 유지와 자식의 즉위와 선정으로 보상받았을 것이다.     


사도가 죽던 날 밤 영조와 사도가 소리 없이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영조와 뒤주를 투샷으로 비추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였다. 일생 동안 서로를 미워하고 회피하고 제대로 된 소통을 한 번도 못하다가 죽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을 이보다 잘 잡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입 밖으로 낸 말이 아니라는 것에 심리학적 의미가 있다. 마음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사도가 영조의 눈에 그토록 거슬린 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모습에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했기 때문이다. 사도의 특성은 영조의 그림자의 그것이다. 신하들에게 얕잡히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무의식에 억압한 자유분방한 기질, 풍류를 즐기는 마음, 신체적 활동의 욕구 등을 사도에게서 보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그 그림자들이 내 마음속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마음이 성숙했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가 있는 궁에 머무르지 않을 정도로 영조는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는 것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결국 아들을 죽이는 데에 이르러서야 뒤주 속 사도로 상징되는 어두운 무의식의 그림자와 마주한다. 그리고 아들의 절규로 상징되는 그림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영조는 사도를 죽이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얻은 깨달음으로 어린 세손에게는 통합된 인격으로 교육했을 것이다. 사도에게는 너무 늦었지만 정조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정, 반, 합이라고 해도 좋고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이라고 해도 좋은 결과는 세손 정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사도세자의 역사적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대의 부모들중에도 자녀에게 그림자를 투사하고 이중 구속으로 아이의 정신을 망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못마땅하다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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