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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Dec 08. 2024

일상이 이토록 소중할 줄 몰랐다

12. 3 비상계엄 발표를 보고

     

2024. 12. 7 여의도

나는 그때 평소와 다름없이 가족들과 저녁을 먹은 후, 낮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의 리뷰를 쓰려고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에 긴급 문자가 떴다.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린 시절 북한 공산당을 ‘북괴’라고 부르던 때, 북한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 조치 때 오빠의 친구들이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10 26 사태가 나서 학교가 휴교했고, 다음 해 다시 개교했을 때 교내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고 나도 정의감에 불끈하여 시위에 참가했었다. 모여서 행진하다가 페퍼포그를 직방으로 맞았다. 최루탄과는 차원이 다르게 페퍼포그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호흡곤란으로 나는 죽을 뻔했다. 그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다시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나의 깜냥을 알았다. 나는 만일 학생운동을 제대로 하다가 끌려가서 고문을 받게 되면,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기밀을 다 불어버릴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번에 국회가 계엄 해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국회 입구에서 군인들을 막은 시민들과 보좌관들이 얼마나 용감한 행동을 했는지 나는 안다.)

얼마 뒤 광주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나의 세대는 정권이 온갖 위협으로 국민을 불안에 빠트려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산 세대이다. 90년대 이후에는 전쟁이나 내란의 불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에는 과거의 위협들이 저장되어 있어서 가끔씩 이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곤 한다.     

그러다가 작금의 비상계엄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순식간에 마음의 평화가 깨졌다.

과거 대학생 때 같이 이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위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페퍼포그 사건 이후에 나는 안전한 곳에 물러앉아서 멀리서 손가락질만 했을 뿐, 어떤 정의로운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환율이 오르고, 경제가 타격을 받고 우리나라가 여행 위험국에 지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하고싶은 말은 국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지 못하고 시위 현장에 데리고 가게 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 그들에게도 불안은 전염되고 각인되어서 어른이 되었을때 나처럼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상상을 하고 작품을 만들 시간에 불의에 대한 항거를 하거나 불안 때문에 작품을 만들지 못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갑자기 가족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모두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며 꾹꾹 눌러두었던 불안이 순식간에 나를 잠식했다. 과거에 자라를 본 사람들은 솥뚜껑을 당연히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미래세대에게 더러운 지구를 물려주는 것에 더해, 불안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더라도 자유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평소에는 모른다. 그것을 점령하는 불안의 요소가 생겼을 때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가족과의 평범한 식사가 얼마나 그리울 것인가.

가족과 이웃과 안전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작은 기쁨을 누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자신의 권력과 저급한 욕망을 위해 짓밟는 사람들을 국민들과 역사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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