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고 마음씨 좋은 요양사님이 재가 요양에 들어오시면서 부모님이 마지막에 집에서 보낸 시간은 편안하고 평화로웠다고 생각한다.
수년간 엄마의 무차별 잔소리 폭격에 시달리시던 아버지는 내가 갈 때마다 우울감을 호소하셨었는데, 새 요양사님이 오셔서 식사도 챙겨주시니 힘도 덜 들고, 대화해주시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체조도 도와주시면서 많이 밝아지셨다.
그러나 보호자로서 여자 요양사님께 엄마 이외에 아버지 목욕까지 부탁할 수는 없어서 처음에는 내가 목욕을 도와드리다가 그것도 충분하지 않아서 목욕 차량이 아파트로 오는 요양 목욕 서비스의 도움을 받았다.(참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있었다. )
그러나 노화는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어서 아버지는 심한 요실금으로 소변줄을 장착하시게 되는데 이어서, 다른 모든 근육의(괄약근까지도) 탄력이 떨어지니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변실금 증상도 생겼다. 보통 정신이 없으신 치매 노인의 경우 수치심 지수도 낮겠지만, 아버지는 정신 능력은 너무 좋으신데 이런 상황이 되니 얼마나 당황하실지 예상이 되어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 수습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일이 생길 때마다 혼자 씻으시고 옷도 빨고 하셨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결국은 감당하기가 힘들어져서 내가 일회용 입는 형태의 기저귀 속옷를 사다 드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시다가 매일 샤워를 하셔야만 하는 과제가 생겼다. 요양사님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 밖의 상황이 된 것이다.
내가 갈 때마다 아버지가 미안해하셔도 샤워를 도와드렸다. 남편과 함께 갈 때도 있었는데 남편이 스스럼없이 자기가 씻겨드리겠다고 했다. 당연히 아버지가 사양했으나 남편이 바지 걷고 나서서 하니 고마워하시면서 함께 하셨다.
남편은 소문난 효자이다. 아내인 내가 솔직히 힘들었다. 시어머니가 가끔 집에 오셨을 때 어머니를 위해 드라마 같이 보기는 물론, 매번 여행도 같이 다니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맛집도 찾아다니고, 극장까지 함께 다녔다. 그러나 집에서 특별한 음식 만들어 드리는 일은 물론이고 나중에 다리가 불편해지신 후부터는 목욕까지 다 내 담당 이었다. 효자이지만 어머니가 무안해하시니 목욕은 여자인 며느리가 도와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그렇겠지만 어머니도 나중에는 아버지처럼 근육이 수축되지 않아 변실금 상황이 되니 목욕시켜드리는 것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혈육이 아닌 어른을 씻겨드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정 부모님만 계시게 되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친정아버지의 목욕을 남편이 스스럼없이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엄마 아버지 나의 형제들로 이루어진 나의 원가족이 있었고, 남편의 원가족이 있었고, 내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만든 나의 가족이 있다. 이러한 경계는 개인주의자인 내가 나이가 들고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되었어도 허물어지지 않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오물을 닦으며 씻겨드리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이 형제보다 더 가까운 원가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흔히 결혼은 두 사람이 아닌 두 가족이 결합하는 거라는 등 주례사에서 많이 언급하는 상투적인 멘트를 많이 들었지만, 이것은 의무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수십 년을 같이 하며 산전수전 다 겪어야 실현되는 일인데 이때가 그것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우리 부부가 늙고 남편이 아프면 내가 간호해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거꾸로 내가 아프면 남편이 할 수 있을까 의심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겪으며 내가 먼저 아파도 남편은 나를 간호해 줄 거라는 깊은 신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