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젊을 때 놀았어야 했다

균형 찾는 마음

by 윤병옥

문화센터 댄스 시니어 프로그램

가끔 티브이에서 치매 노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때가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시는 자식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든지,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퇴화를 늦추려면 치매를 어떻게 발견하고 무슨 약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등등 관심을 달리할 수 있다.

나에게 관심을 끄는 측면은 노인이 치매로 정서적 통제력을 잃었을 때 보이는 젊었을 때와 다른 행동과 마음의 표현이다.

딸들이 번갈아 가며 돌보는 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 점잖고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자식을 키웠던 고운 분이었는데 치매가 심해지면서 심한 욕을 달고 살게 되었다. 자식들은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고 당황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너무 고운 말만 한다는 것은 어두운 부분을 많이 억압했다는 뜻이다. 남에게 대들고 싸우는 것을 힘들어하는 여성이 유교적인 사회 분위기와 가정 분위기가 그 성향을 강화하고 남편까지 조용하고 온화한 아내를 원하고 장려했다면,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시기까지는 남들의 기대에 맞춰 조용히 고운 말만 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치매로 뇌가 절제하는 기능을 잃자 눌렸던 부정적인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비슷하지만 위의 사례가 딸들에게 향했다면 어떤 할머니는 유난히 남편에게 심한 말과 폭행까지 한 경우이다. 이분은 판사까지 지낸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편이 과거에 늘 잘난 척하고 명령하고 자신을 무시했지만 묵묵히 참고 가정을 지키다가, 나이 들어 치매 증상이 생기면서 남편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일삼게 되어 남편을 놀라게 한 경우이다.

다른 사례는 그 시절에는 드물게 대학교육까지 받은 할머니인데 아들의 배우자인 며느리에게 딸보다도 잘해주고 며느리에 관한 작은 험담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치매 증상이 생기자 만나는 사람들에게 며느리 흉을 보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며느리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해서 나중에는 다른 자식들이 어머니를 며느리와 만나지 못하게 할 정도가 되었다. 과거 시어머니들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며느리를 시집살이시키고 괴롭혀서 되갚으며 마음의 어두운 면을 해소했지만 이 여성은 건강했을 때는 이성적으로 교양 있게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억압했지만 통제 기능이 약해지자 터져 나온 경우라고 생각된다.

우리 시어머니는 알뜰하셔서 살림하실 때 맛있는 반찬은 항상 가족에게 양보하고 남은 음식은 아까워서 드시면서 늙으셨는데, 후반기에 인지력이 나빠진 이후에는 본인이 싫은 음식은 드시지 않겠다고 거부하셨다. 자식들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드시지 않았고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가혹한 음식 평도 하시고는 했다. 밥상에서 맛있는 것만 골라 드시고 맛이 없으면 안 드셨다.

이제 우리 엄마 차례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 자식들 교육시키는 것도 버거워, 놀러 다니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노년이 되어 세상을 보니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재미있는 활동도 많고, 놀러 갈 만한 경치 좋은 곳도 많다. 연세가 들고는 예전에 노래와 춤을 못 배운 것이 아쉽게 생각되었고, 손주 양육도 거절한 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젊은 사람들도 먹고 사느라 힘들다는 생각은 잠시 들뿐, 젊을 때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는데 그들은 당신을 위해 재미있게 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셨다.


단기간이라면 좋은 말만 할 수 있다. 며칠이라면 맛없어도 먹을 수 있다. 몇 년 정도면 다른 사람들만을 위하여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인생의 전부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누구도 평생을 참을 수는 없다. 마음은 균형을 찾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가 젊어서 속상할 때 자식이나 남편에게 조금씩 소리치고 화를 내고 살았으면 좋았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도 매번 남은 음식 말고 몰래 부엌에서라도 혼자 맛있는 걸 조금씩 드셨더라면, 우리 엄마도 일만 하지 말고 가끔 놀러 다니고, 하고 싶었던 일을 몰래라도 했었으면 좋았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작은 행성에 있는 몇 개의 휴화산을 돌며 화산의 분화구를 매일 청소하는 이유는 평소에 분화구를 잘 청소해서 연기를 조금씩 빼지 않으면 막혀서 나중에 크게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해야 할 일만 하고 솔직한 마음을 억압하면 마음은 균형을 잃는다.

심리학에서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 균형 잡힌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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