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그랬을까

엄마의 마음 세계

by 윤병옥

우리 엄마는 머리가 매우 좋고 야심도 큰 분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종종 웃으면서 엄마가 제대로 교육만 받으셨다면 우리 집에서 제일 성공하셨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엄마가 살아오신 시대는 정말 어려운 고비가 많았던 때라 교육을 제대로 못 받으셨고 엄마는 그 에너지를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을 교육시키는데 집중하셨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엄마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도 다른 또래 노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독립적이며 맑은 정신을 유지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르니 엄마의 정신도 혼란스러워졌다. 집에 있던 돈이 없어졌다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거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자식들이 부모를 버리려고 자신을 요양원에 넣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셨다.

과거의 똑똑하고 분별 있는 엄마를 아는 나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워서 엄마와 다투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 엄마가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지향 이대 신경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지 능력이 퇴화한 노인의 큰 특징은

첫째,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훔친다는 착각을 하고 둘째, 배우자가 부정을 저지른다는 오해를 하고 셋째, 가족이 자신을 팽개쳤다는 망상을 한다고 하였다.

즉, 엄마의 증상은 어쩌면 치매 노인들이 갖는 극히 일반적인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치매 증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엄마의 경우이니, 엄마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여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이때쯤 본 영화 ‘더 파더’가 엄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치매환자를 당사자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하니, 주인공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도 엄마의 시점에서 본 세계는 어떤지, 엄마는 어떤 감정일지 헤아려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증상이 엄마에게만 있다면 그건 엄마의 구체적인 인생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먼저, 엄마는 과거 아버지가 받아오신 많지 않은 월급으로 우리 형제를 교육시키느라 엄마 스스로에게는 돈을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셨다. 당연히 노후 자금 같은 것을 적립할 여유도 없었다. 노후에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했을때 그들이 보내드리는 많지 않은 돈을 잘 관리해야 불안한 상황이 생기지 않으므로 돈에 늘 신경을 쓰고 관리하며 사셨다. 나중에 돈이 없어졌다고 한 것은 연세가 많아지면서 그것이 강박이 되어 나타난 것일 것이다.


다음,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지나가던 사람이 한번 쳐다볼 정도로 잘생기신 편이었다. 배우자로서 당연히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저녁때 자식들을 위해 늘 과자봉지를 들고 귀가할 정도로 가정적인 편이었지만 그 시절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자상한 편은 아니었다. 또한 똑똑하셨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아버지에 비해 엄마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도 있었을 것 같다. 노년에 두 분 중 상대적으로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가 주위의 돌보아 주시는 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하시고 예의 바르게 웃으면서 대하면 엄마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의심해서 아버지를 심하게 비난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버지 세대때는 자식들이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 사는 세대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사랑은 내리사랑이어서 다음 세대로 내려가기 마련이고, 모든 자식들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받는것에만 익숙한 법이다. 사정들이 있어 두 분은 독립해서 사셨고, 자식들이 정기적으로 가서 보살펴 드렸지만 미흡했을 것이고 불안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식들을 위해 평생 희생했는데 자식들이 보여주는 헌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요양원이라는 낯선 장소에 들어가시게 되자 엄마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음모론이 생성되고 이제 정말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섭섭함이 밀려왔을 것 같다.

영화 ‘더 파더’의 주인공 안소니도 딸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내쫓고 아파트를 차지하려 한다며 음모론을 펼치고, 막내딸이 죽었다는 것을 잊고 두 딸을 경쟁시키고, 자신의 혈육이 아닌 사위가 시계를 훔쳐갔다고 의심하고, 딸이 자신이 아닌 사위를 선택해서 자신을 요양원에 보낼까 봐 불안해한다.

전문가의 말은 일반적인 증상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맥락에 따라 사람마다 나타나는 행동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자식들밖에 없다. 일반적인 노인의 증상이 아니라 우리 엄마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늦었지만, 엄마의 말에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했을 뿐,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해드리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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