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끝까지 정신이 맑으셨고, 엄마는 정서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논리적인 부분은 젊은 사람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총명하셨다.
90이 될 때까지 장을 보아다 드리고 음식을 가져다 드리면, 두 분이 밥만 직접 하시고 차려 드시고 치우는 것도 하실 정도로 독립적이셨다. 청소하시는 도우미 아줌마가 가끔 오시고 나와 오빠가 들여다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점점 약해지시면서 아버지의 집안일 부담이 늘자 힘들어져서 재가 방문 요양을 신청하게 되었다. 요양사님이 오셔서 도와주시면서 또 다른 단계가 시작되었다.
얼마 후 아버지까지 몸이 쇠약해지면서 아버지 재가 요양까지 통과가 되어서 두 분 합쳐서 하루 6시간의 재가 요양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나는 국가가 해주는 노인에 대한 요양 서비스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면 부모님을 돌보아드리는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힘들어서 나의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고 통제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세금을 쓰는 우선순위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구나 맞는 노년생활을 지원을 해주는 장기 요양제도가 부양자에게는 많은 힘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방문 요양 비용과 요양원 생활비의 지원은 부양자가 긴 부양 시간을 현실적으로 버틸 수 있게 도움이 되었다.
요양사님과 긴밀히 의논하고 협조하며 그 후 2년은 부모님이 편안한 생활을 하시게 해 드린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연로해지시는 부모님께 재가 방문요양 제도도 영원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었다.
엄마는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져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셨고 아버지도 방광과 괄약근이 수축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겨 결국 소변줄을 끼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화장실 변기에서 엄마가 넘어지셔서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었고 골절이나 뇌출혈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한밤중에 고령의 기운 없는 아버지가 엄마를 케어하시다가 기진맥진하시게 되었다. 결국 요양사님이 퇴근한 이후에 밤에 엄마의 비상사태를 걱정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해도 한 시간 이상 걸리니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었다.
이런 시점이 되니 요양사님도 혼자 두 분을 케어하는 게 버거워져서 계속하기는 힘들겠다는 뜻을 비쳤고 나도 고민하며 연락을 받을때마다 더 자주 가야 했다. 여러 요양사님을 거쳐 가장 든든하게 두 분을 잘 도와주시던 요양사님의 거취가 불분명해지니 요양원 입소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연로하신 두 부모님을 돌보아 드리는 일을 요양사님과 협력하여 겨우 겨우 해결해 왔는데 그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 조금씩 이런 상황을 설명해 드렸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는 넘어지신 후 그래도 시설에 입소하면 밤에도 보살펴줄 수 있고 편하게 세끼 따뜻한 식사를 제공받지 않겠냐고 관심을 보이셨다가 다시 그래도 집이 좋다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님이 내켜하지 않으셔도 내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내가 살기 위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요양원 순례가 시작되었다. 어디든 집 같지는 않겠지만 많은 요양원을 알아보고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했다. 평이 좋은 공립 요양원은 몇 년씩 대기를 걸어놓아야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게다가 요양원마다 여자가 들어갈 자리는 많고 남자는 수용 정원이 적어서, 두 분이 같이 들어가실 수가 있는 데가 적었다. 부모님을 같은 요양원에 계시게 하려면 선택지는 더 줄어들었다. 교통이 좋은 곳은 자리가 없었고, 교외에 위치한 곳은 내가 자주 들여다보기가 힘들 것 같아서 선택하기 힘들었다.
같이 들어가신다고 해도 대부분의 요양원에서는 남자 노인분들과 여자 노인분들이 분리해서 사신다. 또 많이 불편하신 분들과 괜찮으신 분들도 분리한다. 그러나 정신도 맑으시고 70년 이상 해로하신 우리 부모님이 낯선 건물에서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지내시게 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안보이시면 불안해하실 것이다. 여러 요양원을 알아봐도 부모님이 계실만한 곳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부모님 사시던 곳 근처에, 새로 지은 프리미엄 요양원을 오빠가 찾았다. 오빠와 함께 방문해 보니, 냄새나고 어두웠던 다른 곳과는 달리 호텔같이 깔끔하고 노인을 도와주는 최신 시설을 갖추고, 층마다 넓은 거실이 있어 휠체어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식사도 침대가 아닌 넓은 식탁에서 할 수 있는 요양원이어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1인실과 2인실만 있는소수 정예라고 하니 2인실에 부모님 두 분만 방을 같이 쓸수 있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부모님이 계실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비용이 무리가 되어도 여기에 부모님을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비싼 프리미엄 요양원이라는 포장은 직접 보살펴 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면하려는 구실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이제 두 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