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여고생과 책가방을 든 아버지

내 마음에 각인된 아버지

by 윤병옥
하굣길 아들과 책가방을 든 엄마

아버지는 유교 문화에서 자라신 분이어서 요즘 아빠들처럼 자식들과 언어적 소통을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워낙 엄하셔서 자식들을 야단을 많이 치셨다고 하는데, 막내였던 아버지는 그런 방식이 무섭기도 하고 싫었다고 하셨다. 나중에 자신의 자식들은 절대로 혼내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 키우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자랄 때 엄마에게는 야단을 많이 맞았지만 아버지께 야단맞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말은 없으셨지만 우리 4남매에게 다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저녁 퇴근할 때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두툼한 봉투였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간식거리를 사다 주셨다. 엄마는 빠듯한 살림 하시느라 식사를 정성껏 마련해주시기는 하셨지만 그 외의 간식은 전혀 사주지 않으셨는데 그것을 아는 아버지는 저녁마다 소소하게는 센베라고 불렸던 일본 과자, 그 당시는 귀했던 귤, 나무상자에 들어있던 중국집 야끼만두, 크게는 귀했던 전기구이 통닭까지 늘 무언가를 손에 들고 귀가하셨다. 철없는 마음에 아버지보다 손에 든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을까가 늘 궁금했었고 나만 통닭의 다리만 먹겠다고 떼를 쓰다가 오빠에게 혼나기도 하였다.

또 아버지가 직장에서 회식을 하시면 자식들이 마음에 걸려서, 얼마 후에 데리고 나가셔서 불고기를 사주셨다. 구멍 송송 뚫린 원뿔형 쇠판에 구운 달달한 불고기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이제는 나와 아버지 둘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모는 모든 자식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지만 부모가 각각의 자식들에게 둘만 가지는 특별하고 개별적인 경험을 주는 것도 자식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적으로도 경험의 평균보다는 최고 경험과 마지막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 나도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기억이 있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때 퇴직을 하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과외나 학원을 보낼 여유가 없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셨다. 나는 튼튼한 편이 아니라 학교 수업 후 또 다른 교육을 받을 체력도 없고 학교 수업만으로도 정말 충분했기 때문에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었다.

고 3 때는 집에 공부방도 없었기 때문에 하교 후 독서실을 다녔고, 독서실이 우리 집에서 큰길을 건너야 하고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었는데, 위험한 길이 아니었는데도 밤 10시가 되면 독서실 정문 앞에 어김없이 아버지가 서 계셨다. 화려한 감정표현은 없으셨지만 말없이 따뜻한 얼굴로 내 책가방을 받아 들으시고 나와 집까지 나란히 걸으셨다. 1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진행된 루틴이었다.


지금도 초등학교 하굣길에서 엄마들이 자녀의 가방을 대신 들고 아이와 나란히 귀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하곤 한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피곤한 티 내지 않고 아버지 팔짱이라도 끼고 도란도란 학교 이야기라도 해드릴 텐데 나는 그때 퉁명스러운 수험생이었고, 지금은 해드리고 싶어도 아버지가 안 계신다. 그러나 단발머리 여고생이었던 나와 책가방을 든 아버지의 나란한 뒷모습은 내 마음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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