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배원 Feb 24. 2024

사랑과 ㅅㅅ

모태솔로의 사랑에 관한 고찰

   "얘들아, 사랑이란 뭐지."


   한가로운 주말 오전, 전초전이 시작되었다. 시답잖은 토론 주제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생뚱맞은 안건을 받자마자 사랑의 사전적 정의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랑,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러한 정의에 의거하면 우리는 많은 형태의 사랑을 두루 하고 있다. 가족을 애정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쏟는 일 또한 사랑. 집에 있는 반려견과 울고 웃는 것도 사랑. 친구들과 데이트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 또한 사랑. 현재를 애정하고 보듬는 것도 사랑.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는 그러한 답을 원해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진부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보통 연애와 직결되는 문제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해당 질문을 한 친구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연애의 'ㅇ'도 경험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이기 때문이다.


   연애를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어떨 때는 '안'하는 것이라 자기합리화하며 화제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애초에 연애하는 법을 모두가 알고 있었더라면 모태솔로라는 개념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기에 더 당당하고 싶다. "저는 모태솔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모태솔로라는 사실에 당당해질 수 있는것은 젊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국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당당해질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토록 사랑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젊음이 무기라는 말은 진짜이다. 젊음은 모든 것을 실수나 어리숙함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음의 효력이 다하는 순간,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되고 만다. 흔한 사랑 한 번 '못'해본 부적격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연애를 하고 싶어진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1순위가 되는 것이 좋아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싶어서도 아닌, 일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낮다. 누군가가 나를 좋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먼저 좋아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그런 꿈같은 일 따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짝사랑도 잘하지 않는다. 짝사랑이 거절당했을 때 오는 비참함을 경험하지 않고 싶어서 일방적인 애정을 좋아한다. 그래서 애정 소설을 좋아한다. 보통의 매체에서 다루는 맹목적인 사랑에 광분한다. 영원을 좋아하지만, 그딴 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원론으로 돌아온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엄마는 사랑을 희생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것이 된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다. 나의 시간, 돈, 어떤 부분을 할애해서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자기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 그리고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때,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고 이야기했다. 친구 A는 첫인상에 사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애정 행각을 나눌 수 있거나 호감을 느끼면 다가간다고 한다. 그는 사랑을 성애의 일종으로 바라본다. 친구 B는 계속 그 사람이 생각나면 사랑이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충분히 사랑인 것 같지만, 그것이 진실된 사랑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친구 C는 그런 걱정할 시간에 일단 해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사랑이 무서워졌다.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해 조언해 줄 수 없다. 사랑이란 결국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감정이기에. 내가 보기엔 사랑을 느끼고 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종국엔 전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사랑을 대한다. 애정하는 마음이라던가 좋아한다는 것은 그들의 공통점에 불과하다. 사랑은 결국 추상적인 감각이기에 애정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인 감정이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커다란 감정을 내가 무엇이라고 정의한다는 것은 과분한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랑을 한다. 하려고 노력한다. 사랑은 노력에 의한 성취이고, 용기이다. 그리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짧지만 매우 중독적이라서 한 번 경험해 본 사람은 영원히 사랑을 좇는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부러워했고, 또 못해봤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마음을 담아 사랑이란 상실이라고, 나를 상실할 정도로 깊은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한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깊은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을 원한다고, 그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고 선언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원래도 쓸 주제였지만, 그럼에도 먼저 주제를 쓰라고 선뜻 이야기해 준 친구에게 감사를 담아 글을 작성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과 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