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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l 03. 2024

호남으로 가는 길 1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3박 4일 동안 군산에 있는 할아버지 집과,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전주를 다녀온다. 방학 전에 세운 거창한 계획을 생각하면 용두사미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런저런 약속을 다니고 저녁마다 야구를 보느라 바빴고, 도중에 몽골도 갔다 오느라 한 일정에 긴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기도 하고, 야구도 보면서 사람도 만나려니까 온전히 빈 시간이 별로 없다.

늦게나마 빈 시간을 만들어 군산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원래 명절 때마다 수원에서 군산역까지 무궁화나 새마을호를 타고 갔는데, 예전보다 공기에 더 민감해진 건지 지난번 청주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무궁화호를 탔을 때 안이 너무 덥고 숨이 막히는 듯하는 느낌을 받아(이것도 살쪄서 그런 건가) 이번에는 다르게 가보기로 했다. SRT로 수서에서 익산까지 간 후, 버스로 갈아타 대야(군산에 있는 작은 동네)로 가기로 했다. 오후 1시 9분 출발시간에 맞게 12시 정각 즈음에 집을 나왔는데, 마침 지하철 도착시간이 딱 맞아 도착했을 때 30분 넘게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덕에 간단하게 역사 내 식당에서 김밥과 라면 세트를 먹고 갈 수 있었다.


주문을 할 때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계산대에 서있는데도 직원 분이 반응이 없는 채 음식 준비만 하고 계셨는데, 별말 없이 기다리다 옆에서 들어온 사람이 향한 곳을 보고서야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젠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주문하는 게 익숙하지만, 막상 주문이라는 과정에서 사람이 완전히 배제된 듯한 느낌이 확 와닿으니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여유롭게 열차를 탔다. 확실히 고속철도라 중간 정차역이 거의 없어 막힘없이 빠르게 가지만, 문제는 서울에서 전라북도 익산까지 차로 2-3시간 족히 걸리는 거리를 가는데 1시간 10분 밖에 안 걸려 도중에 잠에 들 수 없다는 거였다. 자칫하면 못 일어나면 눈을 떴을 때 광주송정이나 목표역에서 내릴 수도 있어 어떻게든 졸린 눈을 부릅뜬 채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기존에 이용하던 무궁화, 새마을과 달리 소요시간이 절반도 안되고, 무엇보다 내부 공기가 매우 쾌적해 괜히 비싼 돈 주고 SRT나 KTX를 타는 게 아니구나 싶었지만, 작년에 도쿄발 교토행 신칸센처럼 기차 안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없어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드넓게 펼쳐진 논밭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있으니 금세 익산역에 도착했다. 할아버지가 이틀 전에 일러준 대로 역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잠깐 가니 금방 버스승강장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정류장처럼 생긴 대합실 겸 매표소로 가 직원 할아버지에게 대야로 가는 표 한 장을 달라고 했다. 가격은 고작 2000원, 거리 생각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지방이라서 가능한 건가. 10년 전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긴 그때는 매번 엄마가 내서 그런 감이 아예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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