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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Feb 11. 2022

두번째 여름02 - 1타3피

1타3피

13    


  아빠 산소에 입힌 떼가 많이 죽어서 새로 입힌 지 한 달여. 최소 두 달 동안은 잔디에 물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 물을 줘야 한다는데 매주 가보지는 못하고 비가 잘 와주길 기도했다. 그래도 가끔씩은 가봐야지. 방학도 했으니 산소에 가봐야지, 그리고 기왕 가는 거 근처에서 하루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검색을 시작한다. (체력이 영 떨어져서 포천까지 운전하고 물 주고 되돌아오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했고 ㅜㅜ) 산소와 멀지 않은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광릉 수목원과 근처 글램핑장을 예약하고 길을 나선다. 수목원은 솔직히 실패. 날이 너무 좋아서… 뜨거워서 다니기 힘들었던 것. 그래도 들어갔으니 둘러보겠다고 그늘을 찾아다니며 쉬다 걷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수목원은 좀 선선할 때 다시 가봐야겠다. 다음 목적지는 근처 글램핑장. 코로나를 핑계로, 어쩌면 학기 중에 지친 심신 때문에 움직이기 귀찮아서 방학하고도 근처 공원도 못 가고 있었는데 잠시 여행 온 기분을 내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다.     


  호텔이나 아파트, 병원 등 환기구를 통해 병이 퍼졌다는 뉴스에 어디 숙박하기도 찝찝하고 해서 글램핑장으로 결정! 그냥 그 안에서만 머물면 되니까~ 도착한 글램핑장은 적당히 산속이고, 조용하다. 주변에 예약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다녀온 뒤에야 안 사실인데 그날이 근 한 달간 코로나 환자가 제일 많이 나온 날이었다고 한다. 아마 예약했던 사람들도 취소했던 모양. 그 덕에 우린 캠핑장 사이트를 전세 낸 듯 즐길 수 있었다) 전부터 엄마에게 제대로 된 캠핑 분위기를 느껴보게 해드리고 싶었기에 고기도 굽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후식도 준비했다. 워낙 식사량이 적은 엄마라 금방 이런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아이고 배부르다. 저 돈 주고 숯에 불 피운 게 아깝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가만히 불 보며 불멍도 좀 하고. 맞다, 우리 마시멜로도 구워야 해.”

“배불러, 못 먹어~”

“하나만! 이건 먹어봐야 한다니까요. 이 과자 좀 양손에 하나씩 들고 계세요.”

“어머, 저거 탄다!”

“후! 후! 괜찮아요. 자, 지금! 과자 안에 쏙~”   

  

  나도 무지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 좀 타긴 했지만 초코비스킷 사이에 넣은 마시멜로 구이는 꼭 맛 보여드리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날리는 극강의 단맛! (옛날에 미국 갔을 때 먹어보고, 한국에서는 만들 일이 딱히 없었던, 이날 역시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먹었던 이 후식의 이름은 스모어. S’More. 한 번 먹으면 좀 더 달라고 Some More! 를 외치게 되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때요? 맛있지?”

“아휴, 달다. 근데 하나쯤은 먹어볼 만하네.”     


  그 후 시간은 평온했다. 차박용으로 사놓은 알전구를 주변 나무에 걸어 장식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서 조용히 음악을 틀고, 남은 불씨를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우리가 들락거리는 사이 글램핑 텐트 속으로 모기가 잔뜩 들어가서 잠들기 전까지 그들과의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호텔의 편안함은 아니지만, 캠핑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 엄마랑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쉴 곳이 있었는데, 아빠랑은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 또 한 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근데… 어쩌겠어. 지난 일은 아무리 후회해봐도 변하는 게 없는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거를 바꿀 재주는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다음 날 아침에 산소에 들려 아빠 자리를 정리하고, 물도 듬뿍 주고 잘 돌아왔다. 좋았던 기분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야지. 광릉 수목원도 둘러보고, 캠핑 기분도 내고, 아빠 산소도 들렸으니 1타 3피, 어제오늘은 충분히 알뜰하게 잘 살았다.    


*그림이야기: 무려 4일에 걸쳐 한 세트의 그림을 완성했다. 머릿속에 처음부터 4장면을 생각했는데 한 번에 그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니 한 조각, 한 조각 짜깁기^^ 오른쪽 전구들은 처음에는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두었다가 배경색 칠한 뒤 제거하고 살짝 수정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방법은 아니고,  요즘은 유튜브며 인스타며 워낙 다양한 영상들이 많아서 틈날 때 보다 보면 적용하고 싶은 수채 방법들이 나타난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다면 남의 그림 많이 보는 것도 그림을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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