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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언니 Aug 26. 2024

뇌의 전원을 잠시 끄는 시간

명상이 필요한 순간 

스마트폰의 이상 때문에 AS센터를 찾았다. 밧데리 소모가 생각보다 심하고, 기계의 발열 증상 때문에 문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단 결과 몇 가지 잘못된 사용법이 있었다. 클라우드에 사진과 데이터가 자동으로 저장되도록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스마트폰은 쉬지 않고 일하는 상태가 되면서 밧데리와 메모리 소모가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 설정 및 데이터 전송 제한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발열 증상 같은 경우 어떤 앱을 사용했을 때 가장 에너지 소모가 높은지 모니터링이 가능했다. AS기사가 사용하는 점검 시스템에서 보면 고객들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어떤 어플을 얼만큼 쓰고 있는지 낱낱이 볼 수 있었다. 화면을 바라본 순간 낯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내 신상 및 데이터가 알몸으로 공개된 것이라고나 할까.      


그리고는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전원을 꺼 둔 상태를 만드세요” 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사람도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기계도 쉴 틈없이 계속 일을 한다면 과부하가 걸리고, 부품의 마모 현상이나 시스템 오류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을 사용할 때 전원을 거의 끄지 않은 채로 계속 ON의 상태로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스마트폰의 영상에 눈길을 돌리거나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먹을 것들을 찾으면서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찾아다닌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서 스트레스는 극심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호흡과 알아차림이다. 내 몸의 감각을 부드럽게 알아차리고, 호흡을 하면서 긴장감을 내려놓으면 ‘투쟁-도피반응’의 상태에서 이성적인 모드로 바뀌게 된다. 잠시 눈을 감고 부드럽게 호흡하는 것, 의식적으로 몸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생각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신경과학 분야가 발달하면서 뇌와 몸의 관계를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만성 스트레스가 뇌에 주는 영향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면 인지기능이나 기억력이 저하되고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뇌의 연결성이 손상되는데 전전두엽 피질이 위축되고, 편도체의 크기와 활동을 증가시킨다. 과거 인류는 긴박한 신체적 위험을 겪으며 뇌에서 일어나는 자동적인 ‘투쟁-도피’반응으로 생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다. 그러나 현대의 스트레스는 심리적인 위협으로 인한 심인성 증상이 대부분이다. 적이나 위험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데도 매 순간 우리의 몸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다.      


뇌가 쉴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명상이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몸으로 가져오는 호흡을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내야 하고, 더 잘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해 한 시도 온전히 쉴 수 없게 된다. 열심히 고군분투하면서 살지만 어느 순간 ‘이게 맞는 방향인가?’라는 회의가 올 수 있다. 행위가 최우선이라고 사는 방식에서 지금 이 순간, 존재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명상이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욕심은 채워지지 않고, 남과의 비교로 인해 위축을 느낀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거나, 아무리 운동을 하고 얼굴을 가꾼다 해도 TV속 연예인의 모습이 될 수는 없다. 좋은 집에 살고, 명품을 소유하고, 최고의 교육 환경에서 자식을 키워도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죽어라 뛰어도 다람쥐 챗바퀴 돌리듯 산다면 계속 제자리걸음 상태다.      


자신을 몰아세우느라 쉬지 못하고, 긴장을 하면서 스트레스 상황에 계속 놓인 채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몸의 이완이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면서 존재모드에 접속해본다.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조화를 이루면서 내면과 외면이 균형을 되찾게 된다. 느리게 걸으며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외부 감각을 차단하며 가슴의 호흡을 느끼도록 한다. 밖으로만 향했던 주의를 안으로 가져오면서 고요한 마음을 기른다.      


요즘 마음챙김의 시간을 늘려가면서 자주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열 살 즈음의 기억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오면 자주 했던 행동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커튼이 쳐진 약간 어두운 방 안에서 흰 천장을 보면서 실눈을 뜨면 여러가지 형상들이 나타났다. 이미지들을 갖고 여러가지 스토리를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알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혼자만의 실눈뜨기 놀이를 언제까지 계속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릴 때에도 나 스스로 마음챙김의 시간을 가지며 창조적인 놀이를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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