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처음 만났던 때가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좁은 철장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던 작은 뒷모습과 내 치마폭에 안기던 꼬질꼬질하고 작은 몸, 그간 너의 상처를 증명이라도 하듯 동그란 눈 밑에 시커멓게 얼룩진 눈물자국까지도.
너와 함께 한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일상 속 깊게 스며든 너라는 존재가 난 매 순간 신비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살아 숨 쉬는 것도, 저 작은 머리로 생각을 하는 것도, 또 나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처음 너와 마주하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을 때, 사실 속으로 내심 겁이 나기도 했다. ‘한 번 버림받은 기억이 있던 네가 내게 마음을 잘 열어줄까?’ 하는 작은 걱정이 내 마음속 한 구석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넌 인간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상처받았냐는 듯 다시 한번 인간에게 다가와주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네가 가진 사랑을 다 표현해 주었다. 그 모습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네 상처를 치유해 줄 줄 알았는데, 내가 네게 손을 내민 줄 알았는데. 하지만 너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순간, 나는 네가 내 인생을 구원하러 온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넌 내게 더 큰 의미로서 자리 잡았다.
입양 초반, 너는 마음의 상처도 깊었지만 몸에 남은 상처들은 너와 나 모두를 힘들게 했다. 새까만 귀지와 외이도염, 장장 8개월을 앓았던 피부병, 유난히 힘들었던 허피스까지. 한 번 버려져 험난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넌 유달리 잔병치레가 잦았고 면역력이 약했다. 크고 작은 잔병치레들 속에서 네가 힘들어할 때마다 난 잠을 잘 수 없었고 눈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병원에 데려가는 것과 밤마다 널 끌어안고 감싸주는 것밖에 없어서 그게 참 미안했다. 대신 아파주고 대신 힘들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현실에 그렇게 가슴이 아팠더랬다. 내 새끼가 아프면 부모들의 가슴은 찢어진다는데, 그게 이 느낌과 흡사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양 초반에 눈물로 지새우던 나를 달래주기라도 하듯 너는 조금씩 힘을 내어 그 모든 것을 이겨내주었고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지내주고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온 집안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널 보면 그 옛날 잔병치레가 잦던 어린 고양이가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잠시, 무탈히 잘 자라준 네게 늘 고마운 마음만 들뿐이다.
말썽쟁이여도 좋고 양치하는 걸 싫어해도 좋다. 털 빗는 걸 싫어해도 좋고, 발톱 깎는 게 싫어 날 물고 할퀴어도 좋다. 장난감에 금방 질려해도 좋고 편식을 해도 좋다. 애교가 없어도 좋고 나보다 남집사를 더 좋아해도 좋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호박색의 두 눈을 바라보며 가끔 이렇게 기도하곤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수명의 일부를 이 아이에게 나누어주세요.’ 하고. 평소 신도 믿지 않고 종교도 믿지 않았던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주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하곤 했다. 어떤 신이든 좋으니 내 기도를 들어주기를, 나의 바람을 이루어주기를. 오늘도 닿지 않을 이 기도가 어떤 신에게는 닿기를 바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또 기도를 해본다. ‘이 아이의 마지막 날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아이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나와 힘께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내 소망을 담은 이 기도가 부디 저곳에 닿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