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많은 불행을 짊어졌을 줄이야.
잘 나가는 의사를 아들로 둔 70대 할아버지. 4년 전 우연히 산에서 낙상사고로 경추를 다쳤고, 이로 인해 누워 지내게 된다. 팔다리의 마비와 강직으로 인해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담관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진행하였는데 이미 일부 전이가 되었고, 또 어느 날 COVID-19에 감염되었다. 도대체 이 모든 드문 확률의 사건들이 왜 모두, 한꺼번에 발생하는가. 이유는 없다.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다. 개인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손주도 제대로 한번 안아주지 못했는데. 할 일이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 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엔 너무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의식이 쳐지고 경련을 하기 시작한다. 이유 없이 열이 났고, 열이 날 때마다 강직과 경련으로 이어진다. 이는 좋지 못한 현상이다. 멀쩡하던 뇌파도 나빠지기 시작했고, 투약은 더욱 늘어갔다. 경련이 의식 회복 없이 지속된다면, 예후는 그야말로 좋지 못하다. 일단 항경련제를 대량 투입하였고, 대량의 약물로 인한 장기 부전으로 이어지거나, 장기간 누워 지내면서 각종 병원 내 감염에 시달리게 된다. 경련의 원인이 뇌내 감염 또는 뇌 전이 가능성도 있어 뇌척수액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사지 마비로 인해 협조는 되지 않을 것이고, 접촉 격리 중인 데다가, 하다가 경련을 할 수도 있었고,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마취과에 부탁을 했다. 그냥 나 혼자 해도 될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변수들이, 자신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검사한 검체는 다행히 염증은 없었고, 뇌 전이도 아니었다. 아들인 보호자는 많이 지친 것 같았다. 너무 오랜 시간 힘들었고, 또 다른 힘든 상황에 새로이 놓였으며,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뇌내 감염이나 전이는 아니지만 경련 중첩 상태가 지속된다면, 치사율이 높을 수 있음을 설명했다. 담담히, 받아들였다. 모니터가 가능한 곳으로의 전원을 권했지만, 본인이 근무하는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만을 부탁했다.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지만, 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약을 최대한 쓰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보호자인 아들은 평소 매우 호탕하고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숨어 있는 심연의 슬픔까지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항상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던 것은, 어쩌면 내면의 비극을 숨겨두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내가 사정이 있어 출근하지 못한 어느 날, 병원 내 부고 문자가 울렸다. 이어지던 비극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보던 손이 얼었다. 미안한 감정과 좀 더 열심히 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내게 주어진 책임감과 부담이 한꺼번에 씻겨간 느낌도 들었다. 고작 몇 달 지켜본 나와는 차원이 다른 여러 감정들을, 보호자인 아들은 수년간 경험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 호탕함 뒤에 숨은 그림자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