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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r 19. 2022

현대판 고려장

치매를 만드는 사람들


어느 날 딸과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70대 할아버지. 입고 있던 패딩에는 지저분한 음식물과 음료가 묻어서는 번들거리고 있었고 머리는 기름으로 떡져 있었다. 대화를 해보면 위생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을 정도로 인지가 나쁜 상태는 아니었는데, 돌봐주는 사람의 문제인 것 같았다. 신경과 진료의 시작은 걸어 들어오면서부터다. 걸음걸이를 보고, 전반적 외적인 상태를 확인하고, 마비가 있는지 등 먼저 시진을 한 후 자세한 문진이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치매를 진단받거나 검사해본 적이 없었고, 친척이나 직계 중 치매의 가족력은 없었다. 같이 온 딸은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에도 CT를 찍어봐야 한다고 해서요, 단답형으로 화가 난 듯 퉁명스레 내뱉는다. 그래 무엇 때문에 찍어봐라 했냐, 했더니 치매 진단이 있어야 입원이 가능한데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들었단다. 이거 앞뒤 순서가 너무 바뀐 게 아닌가. 인지가 안 좋고, 진단이 난 뒤, 집에서 돌볼 형편이 안되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가해질 경우에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의 손을 빌어 보살피는 것이지, 내가 보살필수는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혼자 집에 방치할 수는 없으니 병원에 데려다 놓으려 하는데 그냥은 안되니 되게끔 만들러 온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CT를 찍고 가야 한다고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의사는 소견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다.


치매 진단은 CT 뚝딱 찍는다고 진단이 되는 것도 아닐진대, 임상적인 병력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실제 인지도 심하게 떨어져 보이지 않는 사람을, 전혀 케어해주지도 않고, 그저 불편하고 맡기 싫은 짐짝 맡길 곳을 찾아 조건 맞추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구색을 맞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건만 맞으면 아버지가 치매든지 아니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딘가에 이 짐을 맡길 수만 있으면 된다. 오늘 내로 검사를 끝내고 결과가 나와주어야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짐을 떼어낼 수가 있는데 하루 만에 검사가 되지 않는다고 하네? 화가 절로 난다. 오빠 네가 데리고 다니면서 검사시켜라, 나는 못한다.


도대체가 아버지가 얼마나 딸에게 큰 죄를 지었기에, 저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가 아비의 죄가 얼마나 컸기에 천륜을 버린 듯한 저런 행동을, 의당 그래도 되는 일인 양 구는 걸까. 심지어 아비에 대한 원망이나 짐스러움으로 인한 불만과 투정이 왜 의사인 나에게로 투사되는 것이지?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간 내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한번 시간 내어보겠다는 오빠도, 요양병원에 보내버린다 하는데도 군소리 않는 아비도, 왜 그런 무례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모두 눈감아 주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많이 시달렸으면 저렇게까지 온순하고 순종적이 되는가.


같이 일하는 조무사 선생님이 치를 떨고 분개했다. 이것이야 말로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던가. 앞으로 이런 유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니 요양병원에서는 그냥 입원이 안 되고 종합병원에서 제대로 된 영상 검사와 인지 검사 일체를 해야 하는 거라고! 뭔가 사정은 있겠지 싶으면서도 안타까웠다.


무도 고려장 같은 말년을 원치 않는다정밀한 검사는 하지도 못했지만, 결과는 치매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사실,  사람이 실제로 치매 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치매의 간단한 구색만 맞추고 요양병원에 넣어버리는 것이 목적 사람들이었고, 정밀한 검사는  필요한  아니라면 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니즈를, 무리가 없는 선에서 맞추어  서비스업을  셈이다. 간이 인지 검사에서 30 중에 14점가량이었고 중증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도  되는 진단을  것은 아니어서 내심 다행이었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단출한 검사만으로 진단 내리고, 현대판 고려장의 공범이   기분은 100  10점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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