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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r 29. 2022

아저씨 힘내세요

무슨 권리로 휴직을 권고하나



병원 주차 요원이던 60대 아저씨.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팔다리가 힘이 없다며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내가 있는 병원은 주차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차간 간격이 좁고, 타워에 차를 넣고 빼는 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7년간 주차 요원을 하면서 나와는 오다가다 웃으며 인사하던 사이. 내 차를 넣어주고 빼주고, 내가 주차를 잘 못해도 그저 허허 웃으며 도와주던 분이었다.


실제로는 우측 편마비가 아니라, 심한 감각 저하였고, 병변은 좌측 시상 일부를 포함한 후뇌동맥 뇌경색이었다. 심방세동(부정맥의 일종)이 있어 혈전이 좌측 후뇌동맥으로 날아가 턱 막혀버린 것. 보통 감각 저하와 편마비가 같이 오는 상황이 대부분인데, 유독 감각 저하만 심하게 왔다. 거의 만져도 아예 못 느낄 정도였고 터치뿐 아니라 온도, 위치, 진동 감각 모두 심한 저하를 보였다. 그래서 내 손이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된 조준이 되지 않고, 힘 없이 휘적거리는 듯 보였던 것. 하필이면 오른쪽이었고, 세밀한 운전이나 주차일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오른쪽 상방으로는 시야장애도 동반해서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하시던 주차 일을 지속하기는 당분간 어렵겠습니다, 말하는데 얼마나 입이 떨어지지 않던지. 


나름대로는 좋게 에둘러 설명을 하고 다른 환자들 회진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하필이면 아들과 마주쳤다. 통화 중이던 아들은 주치의인 나를 몰라본 것 같았고, 본의 아니게 나는 그 통화 내역을 엿듣게 되어버린 상황. "아버지가 마음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잠시 자리 비워주려고 1층으로 내려가요." 그간 7년 넘은 세월 동안 일해왔던 곳에서, 이제 그만 일하시라 휴직을 권고해버린 셈인데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엘리베이터를 먼저 내리면서 나는 차마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신경과에는 의도치 않게 운전을 못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좌측에 앉아서 운전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좌측 시야장애가 있으면 좌측에서 달려드는 반대 방향 차를 못 볼 수도 있어 굉장히 운전이 위험해진다. 따라서 안전상의 이유로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뇌전증(예전 용어, 간질)으로 약물 복용하고 있는 경우, 잘 조절되지 않고 경련이 일어나거나 간헐적인 의식 소실을 동반하는 경우에도, 이전에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만큼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최근에는 75세 이상 노인들이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에도 기본적으로 인지 검사를 포함하고 있어 보건소에서 시행한 간이 인지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된 경우에는 신경과 정밀 검사를 권고받게 되며,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의사 소견서 없이는 갱신이 불가하다. 


이게 참 어려운데, 권고 사항과 금지 사항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위험의 소지가 있으니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의무사항은 아니다. 내가 그것을 의무 할 권리가 있나? 권리가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따를 텐데 그렇게 되면 자그마한 위험에도 강제로 금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책임 회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지평가에서 점수가 다소 떨어져도 충분히 출퇴근 길에 무리 없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점수는 괜찮지만 실수나 사고의 여지가 있는 사람도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몇 점 이상 합격, 몇 점 미만 불합격, 이렇게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저씨는 조금씩 회복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고 미세 동작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주차 일에는 무리가 따른다. 몇 년 뒤쯤이면 할 수 있을지 쉬이 예측해드릴 수도 없다. 통상적으로 나도 최선을 다해 재활을 시켜 보고 3-6개월 뒤 후유가 남을지 안 남을지 지켜보는 수밖엔 없다.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주차 팀장님이 나를 볼 때마다 아저씨의 안부를 묻지만 (실제로는 곧 일할 수 있겠냐 없겠냐를) 현재로서는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당분간 일은 어렵겠습니다. 외에 내가 더 해줄 말은 없다. 약물 치료와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서 함께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오늘도 나의 출퇴근 주차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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