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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Feb 14. 2023

머리가 좋다는 것은 함정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나 공부 하나도 못 했어. 망했다.

그래 놓고 시험은 제일 잘 친다. 정말 얄밉다.


주변에 항상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노력에 비해 결과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물론 정말로 자신이 해야 하는 양보다 덜 했거나, 걱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뛰어넘기 어려운 아이들은 꼭 있었다. 정말로 머리가 아주, 너무나, 좋아서, 수업 시간에만 집중을 해도 평균 이상을 하는 아이들이 꼭, 한둘은 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랬을지 모른다. 재수 없는 역할을 도맡았을지도 모른다. 학습지, 과외 한 번을 하지 않았는데 경시대회 수상을 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많이, 재수 없어 보였을 것이다. 뭘 해도 중간 이상은 했다. 모든 현상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하지만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그리 좋지도 않았다. 학습지나 개인 교습을 받지는 못했지만 성실했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때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지만,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나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징징대지 않으려고 애썼고, 머리 좋고 영민한 여우이기보다는 미련한 곰이길 선택했다. 더불어, 나의 선호는 미련한 곰들에게 치우쳐 있었다. 머리만 믿고 노력하지 않은 자보다는, 미련한 곰이 유리한 세상이길 기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세상은 미련한 곰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에게 친구들은 우와! 했고, 미련하게 계속 앉아서 공부하는 데도 성적이 부진하면 '그냥 열심히만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공부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것만이 우월한 가치인 줄 알고 다들 조금밖에 공부 못했다고 자기 위안을 하고 합리화를 해댔다. '내가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내가 공부를 덜 했을 뿐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면 난 아주 잘할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잘하는 결과를 보여줘야 그 논리가 성립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아 망했다 공부 하나도 못했어, 로 끝내고 말았다. 그저 묵묵히, 다음을 향해 노력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면 좋았을 텐데. 어린 시절 우리들을 그러지 못했다.




1998년 4월쯤이었나, 같은 반 여자 학생들이 화장실에 모여서(아니 왜 그런데 하필 화장실이었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너도 나도 울기 시작하면서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비관하고 속상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기도 잘하고 굳세고 매사에 성실하고 성적도 좋았던 아이도 울었다. 통통한 외모에 약간의 열등감은 갖고 있었지만 엄청 똑똑하던 한 친구도 울었다. 졸업 시 대한민국 최고인 S대 최고 학부에 진학한 그들이었지만, 그날 그들은 결국에는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들보다 성적도 낮고 잘난 것 하나 없었으면서, 그때 그 당시 그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주 뛰어나 보였던 그들도 나와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덩달아 나도 함께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갔다. 겸손함 하나를 얻고, 노력했다. 우리들은 다시 계획하고, 부족한 점을 채우고, 조금씩 발전했다. 특히 나는 기초가 많이 부족했기에 기초적인 구멍부터 메꿔나갔다. 거의 모두가 선행을 하고 들어왔고, 자신감만 가득이던 나에게 선행은커녕 따라가기도 벅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와중에도 주말 귀가해서 학원을 가는 친구들이 있었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과외를 따로 해온 친구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귀가하면 내리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던 것으로 일기장에 나오던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보살이었음에 틀림없다. 연극만 조금 반대했던 것으로 적혀있다.) 나중에 꽤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학원 소식을 접했을 땐,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일기장에 휘갈겼다. 사건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일기가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대강의 논리는 숨길 일도 아닌데 왜 숨겼나, 뭐 그런 거였다. (내심 나도 다니고 싶었는데! 이런 건가..?)




머리가 분명 엑설런트 하게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타고난 머리가 좋을 뿐이다. 재벌 자식이 태어나 보니 그냥 재벌이듯 칭찬의 요소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성실하게 노력하여 머리 좋음을 타인에게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칭찬할 일이 된다. 머리가 좋은 것을 스스로 아는 친구들은 한계를 쉬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노력하지 않았고, 허투루 살았다. 물론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나의 열등감이 바라본 시선의 왜곡일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너무 머리가 좋은 것은 인생 전반에 있어 크게 득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재벌 자식이 인본 재벌로 태어나서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처럼, 어느 정도의 결핍이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머리가 좋으면서도 성실함과 끈기를 겸비한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 없는 결핍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겠고, 간접 경험을 위한 학습이나 독서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결핍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마도 가족들의 믿음과 사랑이지 않았나.. (으악, 뭔 교과서 같은 소리고!)




https://youtu.be/0UaMsIJ4bR0

1999.4.25 Westlife, Swear it again.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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