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변화 속에서
사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도취 속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기쁨 속에서 서로 친구가 된다.
-보나르
'사랑과 우정의 감정을 과연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아는 기쁨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교환 일기 속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에릭 시걸의 <닥터스>를 읽었고, 바니와 로라를 보면서, 남녀 간의 우정이 평생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없다고 이야기했고, 그는 가능하다고 했다.
"너 변했어."
그 해, 난 두 명의 친구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무엇이 변한 걸까 엄청 고민했다. 그들은 정확히 나의 어떤 점이 변한 건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생긴 변화인가 싶었고, 내심 죄책감을 느끼며 예전의 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깊은 번뇌에 빠졌다. 나 자신을 의심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나 고민했다.
그들은,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만의 어떤 틀에 맞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실상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다시 그 틀에 맞춰지기를 기대했으며,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금씩 멀어졌다.
잠재된 자기 비하나 자존감의 저하를 들키기는 싫었던 것 같다. 입학 전의 낙천적이고 쾌활한 모습은 사라지고, 무너지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더 웃었고, 여러 친구와 두루 어울리기 위해 조금 더 가벼워졌다. 바닥까지 마음을 들킨 친구들은 그 변화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에도 우정을 의심하고, 무심코 내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번뇌했던 열일곱 소녀의 세계. 나의 생각, 나의 시선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시선에 일희일비하며 세차게 흔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다.
관계는 늘 변했다.
정말 편안하고 좋은 친구였다가도 어느 날 느닷없이 고백을 해오면, 내가 생각하던 ‘고등학생의 바람직한 이상적인 관계 = 모두가 사이좋은 친구’가 무너지게 된다. 도대체 왜 갑자기 변한 걸까 자책하기도 하고 거절 아닌 거절에 마음 상하지나 않을까 고민도 하고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들이 만들어졌다. 시선이 신경 쓰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점점 로봇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3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을 한 친구 하나는 실제로 내가 로봇 같다며 놀려댔다.
어쨌든 나는 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고 특정 몇 명에게는 본의 아니게 희망 고문을 안겼다.
한두 해가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만든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고 그래서 난 다가갈 수 없었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은 유사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내 세계는 좁았고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한 사람의 낙인이 세상의 낙인으로 느껴졌으며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으며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열일곱 살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바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이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시스라 한다.
데미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