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두부가 싫어요
소심하고 쪼잔한 식당 생활
음식은 우리의 공통점이요, 보편적 경험이다.
-제임스 비어드
고교 시절 난 밥 먹는 속도가 아주 느렸다.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밌었다.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으며, 꼭꼭 씹어 먹으면서 천천히 밥을 먹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밥을 먹고 있노라면, 결국 같이 먹던 아이들의 눈길이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다닥 먹지 못했다. 내심 미안해하면서도 꼭꼭, 천천히, 끝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기숙학교다 보니 삼시 세끼와 야식 모두 학교에서 먹어야 했다. 그저 때 되면 위장에 음식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되는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파두부 덮밥은 질색했다. 자주 나오기도 했지만 맵삭 하면서도 물컹거리는 그 식감이 싫었다. 겉이 바삭하면서도 안에는 생선이 들어 물컹거리는 생선가스도 비호감 메뉴였다. 하얀색 타르타르소스는 비린 맛이 나서 싫었다. 대중적으로는 쫄면이나 삼겹살 구이 같은 것이 인기가 있었고, 야식에는 역시 피자가 인기였다. 닭요리가 나오는 날이면, 그날은 2학년 선배들이 닭해부 실습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예나 지금이나, 식단을 꼭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식판 세 칸이 모두 풀때기로 채워지는 '삼별초'가 뜨면 많은 아이들이 미리 그 소식을 공유하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고려 무신 정권의 친위대 삼별초가 아니다. 식판 세 개가 풀로 채워진다니, 누가 처음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명 센스가 대단하다. 우리가 자주 갔던 곳은 신우동이었다. 굳이 외출해서 내 돈을 내고 사 먹는 것이 번거롭긴 했지만, 친구들이 나가자고 하면 또 안 나갈 이유도 없으니 따라나섰다.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장우동 신우동 이런 게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조금 더 나가면 롯데리아가 있어 그곳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들어온 기억도 난다.
3학년 선배들은 대기 없이 프리패스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은근한 다크 포스와 카리스마를 풍기며 등장하였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고 그들은 유유히 그 길을 지나, 식판에 밥을 퍼고, 식사를 하고선, 다시 독서대로 사라졌다. 1학년이던 우리들은 그저 종 치면 냅다 식당으로 뛸 뿐이다. 시시콜콜한 대화의 많은 부분이 식단과 관련됐던 것 같다.
홀수 명이 같이 내려가면 마지막에 식판을 퍼는 것이 싫었다. 두 명씩 마주 보고 먹는데 마지막에 앉게 되면 마주 보는 이 없이 혼자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 지금은 혼자 밥 먹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허전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심 내가 그런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가끔은 일부러 제일 끝에 줄을 서기도 했다. 착한 척, 위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마주 보는 이 없이 밥 먹는 것이 싫어, 다음 식사 때는 일부러 모른 척, 빨리 줄을 섰다. 이게 쓰고 보니 굉장히 유치한데, 정말 그랬다. 줄을 빨리 섰는데도 자리가 애매하게 끊기거나 앉을 때 복도를 잘못 선점하면 또 혼자 앉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별 것 아닌데 내심 기분이 상했다. 배려심 있는 아이의 경우, 혼자 남은 아이가 있으면 일부러 중간 즈음에 식판을 놓고 먹어 주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학창 시절 여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겠는가. 학교 버스를 대절해서 소풍이라도 갈라 치면, 무리가 5명이라면 누군가는 혼자 앉게 된다. 혼자 앉기 싫은 아이들은 미리 옆에 앉을 친구를 선점하여 자리를 약속하곤 하였다. 누군가는 혼자 앉게 되는 것을 알고도 짝을 선점하는 아이가 있고, 누군가는 혼자 앉게 될 것을 대비하여 맨 뒷좌석(홀수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을 자리 잡는 아이가 있다. 나는 내 딸이 후자로 컸으면 좋겠다. 혹은 본인이 설사 혼자 앉게 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 내적 강인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무던한 듯, 예민하고,
민예한 듯, 무심했던 나는
20년 세월이 흘러 그때를 회상 중이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아주 달라진 듯, 유사하고,
비슷한 듯, 차이가 난다.
나이가 듦이 싫지만은 않은 것은,
잔혹하리만치 몰아세우고 냉혹했던 지난날의 나에 비해
조금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