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지나고
가난은 오만함을 가려주기도 하고, 재앙의 고통은 겉치레의 가면을 구할지도 모른다.
-칼릴 지브란
추워지는 계절이면 마음이 춥다. 잘 사는 아이는 옷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겨울 옷은 유독 그 차이가 도드라졌다. 우리 집이 아주 가난했던 것은 아니지만 잘 사는 아이들의 새 패딩은 눈에 띄었고 의도하지 않아도 위화감이 조성된다. 그들은 매해 새로운 옷을 입고 왔다. 나는 그저 겹겹이 많이 껴 입곤 하였고, 춥지 않냐는 선배의 말에 그저 괜찮다고 답했다.
1997년 대한민국은 IMF를 겪었다. 민간공기업에 다니고 있던 아버지는 비록 아주 좋은 차를 몰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나름 안정적으로 그 시기를 이겨냈다. 분명 주변에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많았을 테지만 중학생이던 나는 그 사실을 별로 체감하지는 못한 채 1998년을 맞이했다.
막내인 나 위로 언니와 오빠 두 명이 더 있었다. 내겐 언제나 물려받아 입는 옷밖에 없었고 항상 새 옷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기숙학교라, 아이들의 옷 입는 스타일은 매일 관찰이 가능하다. 요일별로 옷을 바꿔 입는 아이도 있었고, 1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다가 주가 바뀌면 옷을 바꾸는 아이도 있었다. 유사한 스타일의 옷을 여러 개 두고 돌려 입는 아이도 있었고, 매번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아이도 있었다. 개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는 못했지만, 소소하게 개성을 엿볼 수는 있었다.
폴라티와 멜빵바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외의 옷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도리를 하고, 장갑까지 끼면 겨울은 더욱 따뜻해졌다. 친구가 백화점 브랜드에서 외투를 사서 입고 온 날이면, 나는 고뇌했다. '진정한 친구'라면, 시샘하는 마음 따위 없어야 하거늘, 내게 없는 그 옷을 입고 있는 그녀에게 샘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이 끔찍했다. 열일곱 살 나는,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베풀 줄 알고 화도 안 내고 착한', 남들이 정해준 그 이미지에 나를 맞추려 하였다. 성격이 좋고 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다. 정작 실제의 내가 그렇지 못한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나는 나 자신을 책망했다. 실제와 이상의 괴리감에 몸서리쳤다.
귀가하는 날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 패딩 하나 사줘.
IMF였고, 아이가 셋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언니, 오빠의 생활비 등으로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의 엄마다. 그런 엄마의 사정을 모른 척하고, 나는 졸랐다.
-친구들은 다 있단 말이야. 물려받는 옷 지겨워. 나도 백화점에서 새 옷으로 사 달라고.
브랜드도 잘 몰랐다. 내게 가장 좋아 보였던 것은 내 옆에 있던 친구의 새 옷 브랜드였을 뿐이다. 엄마를 졸라 백화점으로 갔다. 톰보이에 가서 회색 짧은 패딩을 샀다. 13만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겠지. 내게도 백화점 브랜드의 새 패딩이 생겼다.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