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감성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
1998년, 전산실에서 이미지 하나를 다운로드하려면 몇 분간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개봉하는 영화들의 포스터와 엽서를 수집하는 것은 콜렉터들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나는 블루, 레드, 화이트 등의 있어 보이는 프랑스 영화의 포스터를 모았고, 흐르는 강물처럼, 여인의 향기, 편지, 제리 멕과이어 등의 엽서와 포스터, 심지어 현수막까지 수집하여 집안 곳곳에 쌓아갔다. 틈만 나면 편지를 써댔고, (공부는 도대체 언제 했는지,) 각종 교환 일기와 모음 활동, 그리고 편지와 쪽지들만이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귀가를 해서 집으로 간 주말이나 방학이면, 라이코스를 이용해 쪽지나 카드를 보내거나 나우누리를 통해 채팅을 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당시 PC통신이 지금의 SNS와도 유사하다면, 나의 SNS의 역사는 제법 역사가 긴 편이라 볼 수 있겠다. 1999년 싸이월드가 나와 2003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니 당시에만 해도 느릿느릿 접속하여 이미지 하나 겨우 출력하고 천천히 통신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1999년 여름 즈음 한메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산실에 삼삼오오 모여, 아이디를 만들고 주소를 주고받았다. '넌 잠을 많이 자니까 sleep이란 단어를 이용해서 지어보면 어때, ' '네가 좋아하는 형용사 중에 짧은 단어 있으면 그거랑 성씨랑 합쳐 봐', 아이들과 함께 깔깔대며 서로의 아이디를 만들었고, 난 꽤 많은 아이들에게 작명 센스와 영감을 주었다. 정작 당시 나는 아주 유치한 아이디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한동안 얼마나 후배들한테 놀림을 받았는지. 가끔, 어떤 순간의 기억만큼은 굉장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후로 얼마나 많은 메일을 장난 삼아 보내고 받았는지, 유쾌한 기분과 함께 당시 장면이 유독 잘 생각이 나는 걸 보면, 한메일 만들기는 꽤 임팩트 있는 사건이 아니었나, 한다.
1999년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했고, 더불어 연동되어 있던 메일에는 너 나 아니? 류의 메일이 차곡차곡 쌓였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다모임 등의 사이트에서 동창 찾기 열풍이 불었고, 너도 나도 첫사랑을 찾아, 좋아했던 그/그녀를 찾아 접속을 했다. 나 역시 '굿바이, 얄리~'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불렀던 추억 속 그 소년을 검색해 보았지만 그저 추억 속에 고이 남겨두었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내가 주고받았던 메일의 동창생들과 펜팔 친구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교 시절도 친구라는 연결 고리가 없었다면 많은 부분 잊었을 것이다.
날 것의 감정들, 존재와 관계에 대한 고민들 속에서 나는 때로는 비관했고 때로는 낙관했으며, 때로는 괴로웠고 때로는 행복했다. 그 시절 그 감성은 우리들을 점차 어른으로 성장시켜 나갔다.
98.2.20
1998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타이타닉>
영화 속 크로키가 제임스 카메론의 그림이었다니.
그것을 20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