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 성실의 대명사였는데..?
누누이 말하지만,
난 성실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1. 1998년 4월,
아침 점호에 늦어 벌점 0.5점을 받았다. 벌점을 받았고,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광장을 다섯 바퀴나 돌았다. 저질 체력을 체감했다. 내가 행동을 늦게 해서 생긴 일이었지만, 룸메이트는 나를 전혀 탓하지 않고 싫은 내색도 하지 않았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화가 났을 법도 한데, 화를 내지 않았다. 대인배인 그녀는 훗날 교내 장기자랑에서 <요즘 여자 요즘 남자>로 대히트를 친다. (얌전하고 필기 잘하고 근엄한 분위기의 그녀가 갑자기 '착한 여자 나쁜 여자 따로 있나, 남자 하기 나름이지 요즘여자~'를 부르며 춤을 췄으니..)
2. 한 번은 너무 늦게까지 자다가 기숙사에 갇힌 적이 있었다. 기숙사 문이 잠겨 있어 창문을 넘어 내려왔다. 아래층이 남학생 층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남자 방 구경까지 했다. 신발을 신고 있어 발자국이 묻을 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자 방에서 뭐라도 뒤지고 뭐라도 하나 훔쳤어야 글이 재미나게 완성될 텐데, 싱겁게도 그냥 나왔다. 기대했다면 죄송..)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하는 기숙사 탈출은 징계나 벌점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96년 개봉작인 미션 임파서블을 난 1998년에 봤다.)
3. 기숙사에서 먹던 봉지 라면은 너무 일상이었어서 추억할 거리도 못 되는 수준이다. 컵라면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우리는 매번 봉지 라면으로 해 먹었을까. (부피가 작아서 숨기기 좋았나?) 이제 와서 우리끼리 아이 키우며 하는 말은 '그때 먹은 봉지 라면으로 환경 호르몬의 노출이 엄청났을 거다.'
4. 야간 자습 시간에 반 여자 아이들 다 같이 땡땡이를 친 적이 있었다. 학교의 사감은 교과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그날의 사감은 바로 공포의 화이(화학 이ㅇㅇ선생님)였다. 눈매와 인상이 일단 무서웠고, 실제로도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이번에는 창문이 아닌, 담을 넘어갔고, 하필이면 그날 독서실 점검이 있었다. 빈자리가 듬성한 것을 눈치챈 화이가 단박에 우리들의 일탈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고작, 노래방을 갔을 뿐인데. (우리는 그날의 사감 선생님이 누군지 알고도 나갔던 걸까?) 교무실 복도 한 구석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벌을 섰다. 노래방을 갔던 기억이나,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나갔을 때의 내 기분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장면은, 바로 벌을 섰던 장면이다. 내 한쪽 옆에는 베프가 무릎을 꿇고 있었고, 또 한쪽 옆에는 굽이 9센티는 되어 보이는 통굽을 신은 친구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리에 쥐가 났고, 코에 침을 묻혀 가면서 서로 낄낄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우리 집 가훈(성실, 정직, 노력)대로 생활하는 학생이었다.
탕아의 여러 스토리는 훗날 술자리에서도 회자된다. L군은 한밤 중 기숙사 정수기 앞에서 컵라면에 물을 받다가 사감 선생님께 적발되었다. 벌점을 부과하려는 선생님에게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항변한다.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부은 것이지, 컵라면을 먹지는 않았다. 벌점 규정은 기숙사 내에서 음식물을 먹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사감 선생님의 뜨악한 표정이 상상되지 않는가.
우리들은 하루 종일 기숙사와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일탈을 꿈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소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일탈이 아니겠는가.
삼 년뿐이었지만, 아니 카이스트 가는 수료생 덕분에, 거의 이 년뿐이었지만, 매 순간이 빼곡했던 고교 시절이었다. 지금의 한 달이 당시의 하루와도 같은 정도의 체감이랄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시간의 흐름은 빨라지겠지. 그건 조금 슬픈 일이다. 다이내믹하고 하루가 일 년 같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지금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99년 11월 개봉했던 <러브레터>는 오겡끼데쓰까로 뭇 남녀 학생들의 마음을 녹였다.
겨울 주말, 나는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