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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ug 11. 2023

술을 좋아하세요?

술에 대한 여러 단상



술에 대한 최초의 기억

아버지가 술을 아주 좋아하신다. 집에는 온갖 종류의 술이 있고,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외식이면 어김없이 술이 나온다. 숨겨왔던 주머니 속 술을 꺼내 드시고는,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지곤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회식을 하고 나면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오셨다. 지독한 술냄새와 함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쳐서 오셨다. 아버지의 삶의 무게는 미처 가늠하지 못한 채 인상부터 찌푸리곤 했다. 엄마의 스트레스는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난 그런 아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어김없이 회식은 돌아왔고, 양복을 입고 큰 소리로 집안을 시끄럽게 하는 아빠를 마주해야 했다. 난 커서, 절대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주량에 대하여

학부 시절, 동아리 사발식을 하는 날이 있었다. 맥주와 소주를 한 사발 때려 붓고 홀라당 마신다. 국그릇이 아니다. 큰 물회 그릇 정도의 크기다. 다 마신 그릇을 머리 위로 탈탈 턴 뒤, 각오를 다지고, 소감을 이야기한다. 지금 같으면 난리 날 문화겠지만 당시에는 매년 해왔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따랐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주변에 어울려 살아온 나 역시 그랬다.


술을 마시면 나는 얼굴이 하얘진다. 원래가 하얀데, 더 새하얘진다. 그리고는 주변의 소리가 사사삭 사라지면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헤롱헤롱한 상태인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난 전혀 듣고 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가내 술 유전자가 내게도 있는 건지, 결코 약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주량은 모른다. 국수 한 사발은 넘는 거 같다. 필름이 끊기도록 마셔본 일은 없으며, 그저 새하얗게 질려 어디선가 구석에 숨어 엎드려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주종

한때 와인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맛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즐기지도 못하는 상태로 어영부영 취미를 접었다. 아예 관심이 없지는 않아서 옆에서 알려주면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탐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스스로 찾아 할 만큼은 아니었다. <신의 물방울>은 무척 재밌게 본 만화이며, 한때 거기 나오는 와인을 모두 맛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냥 생각만 하고 끝냈다. 지금도 와인은 여전히 잘 모르지만 대강 드라이하고 묵직한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다. 술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회가 있을 때 빼지는 않는다. 최근 하이볼도 괜찮았지만 주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듯.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맛보고 경험해 보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다.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

어린 시절 기억과 비정상적인 술 문화로, 나는 과음을 싫어한다. 과음을 좋아하지 않는 겁나는 또 다른 이유들을 써 볼까. 여러 병 중에서도 답이 없는 것들이 좀 있는데, 그중 술이 원인인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베르니케 뇌병증은 술만 엄청 먹고 생기는 비타민 결핍증의 일종이다. 스스로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균형 실조), 물체가 막 두 개로 보이면서(복시), 눈이 튀는 현상(안구 진탕)이 나타난다. 아울러 코르사코프 증후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화증을 보이기도 한다. 정상적으로 외래로 오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은 응급실에서 만나게 된다. 대용량의 티아민 보충이 치료다. 5일 간 비타민을 말 그대로 때려 붓는다. 하지만 운동 실조나 균형 장애가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망가지고 나면 이후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알콜성 다발성 신경병증이다. 손끝 발끝부터 서서히 감각을 잃어간다. 이 정도가 되려면 꽤 많은 다른 장기의 문제들도 동반하는데, 이미 망가진 간이 이제 더 이상은 재생과 회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술을 복용하고 간경화가 생기고 이로 인하여 간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 간이식 이후로도 술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안타깝다. 피를 토하기도 하고, 볼록한 복수와 함께 손발의 감각은 떨어지는, 힘겨운 삶을 영위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신경 손상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세 번째는, 바로 알콜성 치매다. 특별한 가족력도 없고 혈관성 위험인자도 없이 술만 많이 퍼마신 사람이다? MRI 찍었더니 나이에 맞지 않게 뇌가 엄청 쪼그라들어있고 잘 잊는다? 알콜성 치매 가능성이 있다. 한번 망가진 뇌는 회복이 어렵다. 술은, 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와 신체 균형에 중요한 소뇌에 치명적인 물질이다.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기능을 상실한다. 이것이 술을 항시 조심해야 하고 영양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얼마나 마시라고

표준 음주량은 본인과 타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음주를 이야기한다. 남성은 1일 소주 4잔 이하, 1주일 13잔 이하이며, 여성은 1일 소주 3잔 이하, 1주일 6잔 이하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분해 효소의 차이가 남성이 여성의 2배가량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주 문화를 지향한다. 어쩔 수 없는 병도 많다지만 술과 관련해서는 절주만 해도 예방이 가능하니, 지키는 것이 좋겠다.


추신. 방황 끝에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뭔가 많이 바뀌어 있는 브런치스토리네요. 뒤늦게 합류해 봅니다만 여전히 어리둥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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