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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Oct 13. 2024

믹스커피, 잊혀진 소확행

쓰작_온라인 함께 글쓰기 모임 / 주졔: 소확행

아침마다 남편이 커피를 내린다. 남편에게 커피는 아침을 깨우는 중요한 의식이다. 그렇다고 커피 맛에 유난을 떠는 건 아니고, 원두를 갈아 싸구려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는 정도다. 남편은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시기 때문에 항상 향과 맛이 진한 다크 로스트 원두를 구입한다. 또한 커피 내릴 때 원두를 듬뿍 사용한다. 커피인지 탕약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커피가 진하다. 한 번에 만드는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마시는 분량은 머그잔의 삼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거기에 물을 가득 부어 마신다. 나머지는 남편이 다 마시는데, 혼자서 하루에 서너 잔은 마시는 듯하다. 남편이 커피를 물처럼 마셔서 걱정하는 마음에 잔소리해 보지만 소용없다. 남편에게는 커피 마시기가 소확행인 걸 알기에 이것마저 포기하라고 말하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최근에 커피메이커가 고장 나 프렌치 프레스를 구입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커피 두 잔 정도 추출되는 작은 크기의 프렌치 프레스였다. 남편의 커피 마시는 양이 줄어들겠다 싶어 좋아했는데 도착한 프렌치 프레스가 엄청 커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문제 하나가 더 추가됐다. 커피 찌꺼기가 완전히 걸러지지 않았다. 커피 필터를 사용해 한 번 더 찌꺼기를 거르자고 권해 봤지만 남편이 콧방귀를 꼈다. 커피는 콩이니까 그냥 먹어도 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냥 콩이 아니라 탄 콩이니까 몸에 해롭다고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나 혼자 머그잔에 커피 필터를 얹어 찌꺼기를 걸러 마신다. 남편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머그잔에 남은 찌꺼기를 볼 때마다 걱정에 혈압이 올라간다. 남편의 소확행 커피가 나에게 불행을 주고 있는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할 것인가!


오늘 아침에는 볼일 보러 일찍 나서느라 남편이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 텅 빈 주방에 프렌치프레스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커피를 내릴지 잠시 고민하다가 믹스커피가 생각났다. 몇 달 전 한국 친구가 방문했을 때 주고 간 커피였다. 그 커피를 한 봉지도 타 먹지 않고 그냥 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노란 믹스커피 한 봉지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커피를 탔다. 긴장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커피 향을 타고 달콤한 과거로 이동했다.


한국에 살 때 믹스커피는 늘 가까이 있는 소비재였다. 우리 집 주방 서랍에도 커피가 있었고, 누구 집에 가도 노란 봉지가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거나 혹은 무심하게 식탁 구석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믹스커피를 한국의 소울푸드로 봐도 될 것 같다.


내게는 언니와 여동생이 있다. 세 자매가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됐다. 아이들이 돌이 지났을 무렵부터 한 달에 한두 번은 온 가족이 모여서 놀았다. 다섯 아이가 모두 순해서 사고 치는 법이 없었다. 장난감도 없이 놀이를 척척 기획하고 몇 시간씩 놀았다. 그동안 어른들은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 힘든 육아와 직장 생활을 잠시 잊었다.


간밤 마신 술은 언제나 떡국과 김치로 해장했다. 대식구 먹이기에 간편한 떡국이 최고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믹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누가 타 주는 커피가 언제나 맛있다며, 정한 것도 아닌데 번갈아 커피를 탔다. 커피 타는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일에 우쭐해지고, 커피 대접받는 사람은 왕라도 된 기분이 좋았다. 커피 향이 은은한 거실에 앉아서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시면 무척 행복했다. 거실을 떠나 집으로 가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괜찮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은 그저 행복했다. 시간이 정지했다.


동네 이웃집에서 마셨던 믹스커피는 또 어떤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중에서 난이 집이 가장 그립다. 나보다 대여섯 살 어렸던 난이를 참 좋아했다. 언니라고 나를 어려워하면서 존칭을 쓰는 대신 난이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하면서 친근하게 굴었다. 난이 집 거실에서 작은 탁자를 펴놓고 난이가 내놓은 커피를 마셨다. 어떤 날은 거실에 드러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이 집이 내 집처럼 편했다.


요즘은 주위에 널린 게 커피숍이고 손님 초대하는 게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지인과 밖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커피숍에서 마시는 고급 커피라고 할지라도 누구 집에서 누가 타 주는 믹스커피에 비하면 대적할 게 못 된다. 믹스커피 한 잔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다. 내가 사는 모습을 너에게 솔직하게 보여주겠어, 그만큼 나는 너를 신뢰해, 좋아해. 믹스커피를 접대하는 행위는 내가 사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이고 나의 심리적 공간까지 내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믹스커피 앞에서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진실해진다. 난이가 타 준 커피는 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믹스 커피는, 믹스 커피를 앞에 두고 떨던 수다는, 내게 값진 소확행이었다. 불안정한 내 삶을 토닥거려주던 다정한 손길이자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혼자서 믹스커피를 마시는 지금, 이제야 그게 눈에 보인다. 내게 믹스커피를 타 주던 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그곳으로 당장 가고 싶다. 햇살 들던 우리 집 거실 소파에서, 부엌 식탁에서 내가 타 준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그대들 또한 잠시 행복했으리라,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한인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살 수 있었지만 일부러 사지 않았다. 이참에 건강에 해로운 믹스커피를 끊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몇 달 후 향수병이 슬금슬금 올라오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한인 마트에 믹스커피를 사러 갔다. 무슨 욕심이었는지, 남편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일 중인 업소용 대용량 패키지를 손에 들고 집에 왔다. 부푼 마음에 한 봉지를 뜯어서 커피를 탔는데, 맛이 없었다. 그 맛이 그 맛이 아니었다. 내 입맛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믹스커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일 년 넘게 방치한 믹스커피를 결국 다 내다 버리고 말았다.


그 맛이 그 맛이 아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내가 산 믹스커피를 나눠 마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산 믹스커피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깔깔 웃을 일도, 속상해서 눈물 찔끔 짤 일도, 심각한 결정을 앞두고 하는 고민하는 일도, 옛 추억을 회상하는 일도 없이 그저 덩그러니 혼자인 믹스커피가 무슨 맛이 날까.


오늘 내가 마시는 믹스커피에는 나를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 혼자 마시는 커피라서 그 맛이 역시 그 맛이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다행히 커피가 달다. 지퍼락에 믹스커피 스무 봉지를 차곡차곡 담을 때 친구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헤아려진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던 소확행이 되살아났다.


두 시간 후면 남편이 집에 도착한다. 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 봐야겠다. 원두 양을 줄이고 커피를 내린 후 필터로 찌꺼기를 걸러야지! 자기 방식대로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고, 즉, 자신의 소확행을 방해했다면서 남편이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내가 내린 커피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일말의 희망을 걸고 실험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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