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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블루스 May 07. 2022

동물이 좋아? 식물이 좋아?

나는 왜 식물을 좋아하나.

내가 사람보다 동물보다, 식물을 더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찰을 시작해 본다.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식물을 더 좋아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물어 오면 내 한 몸 씻는 것도 귀찮은데 다른 생명을 돌보는 일이란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동물과의 교감이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과의 교감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배웠거나 알고 있었던 이론들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인가.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전부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단순히 귀찮음이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취향이지만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동물은 움직인다. 식물은 그 자리 가만히 존재한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나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불안을 느낀다. 좀 더 심각하게 얘기하면 두려워한다.

서너 살 즈음의 나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면 아무도 없는 마당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울곤 했다.

중년이 된 나는 뒷마당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던 서너 살 마음에서 한치도 자라지 못했다.

여전히 누군가 예고 없이 찾아오면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공간을 좁혀 오면 그때부터 어딘지 불안한 마음이 자리 잡힌다.  

내가 만들어둔 경계가 좁혀진다는 느낌이 들면 가족이 다가와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던 동물이던 예고 없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건 다반사이다. 그래서 나는 그 존재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것인가. 어떤 이유라도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식물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만가만 나에게 말을 건다.

다가오지 않는다. 

나에게 마음을 내게 하고 내가 움직이게 한다.

요구하는 것도 없이 나에게 많은 것을 주기만 한다.

초록이 주는 위안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 대해 경외감이 있지만 식물이 좋아? 동물이 좋아?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단연코 식물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왜?라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는 말밖엔 할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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