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여자친구

by 남새


“양꼬치 먹으러 갈 거니 준비해요”

밤 열시가 다 된 시각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이 있어 늦겠다하여 나는 대충 저녁을 먹은 상태인데 말이다. 어쩌랴, 엊그제 회사에 힘든 일이 있어 속상해 하던 것이 걸려 아무 말 않고 알았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지만 열시가 넘은 이 시각에 먹겠다니, 나도 남편도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이라 어디로 갈지 막막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막상 가보면 블로그의 글과 다른 곳이 많아 어쩌나 하다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은 금요일 밤인 지금 아마 서현역에 있을 것이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맛집을 바로 문자로 보내왔다. 고민하지 말고 진작 물을걸. 양꼬치 집은 빨간 색이 눈에 확 띄는 짬뽕집 2층에 있었다.


작년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온, 독립한 딸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떨던 중 양꼬치 얘기가 나왔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에 놀란 딸이 당장 가보자 하여 난생 처음 양꼬치집에 가 본 적이 있다. 꼬치에 얌전히 꽂힌 고기를 은근한 숯불 위에 줄 맞춰 끼워놓으니 스스로 살살 뒤집어 구워졌다. 재밌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본래 다른 고기의 꼬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향신료를 다양하게 섞어놓은 소스에 찍어먹다 보니 맛이 괜찮았다.


남편과 나는 2인분을 시키고 ‘양꼬치엔 칭다오지’ 하며 맥주까지 시켜 맛있게 먹었다. 각자의 취향대로 고기를 익히고 꼬치에서 쏙쏙 빼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 먹어갈 즈음 남편이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라 한다. 분명 아들도 가까이 있을 테니 친구들까지 불러서 한 잔 하잔다. 나는 오랜만에 아들과 술자리를 상상하니 반가웠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금요일 밤인데 설마 했는데 아들도 흔쾌히 그러겠다며 하던 자리를 정리하고 30분쯤 후에 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알맞게 먹었지만 할 수 없이 1인분을 더 시키고 맥주도 한 병 더 시키며 기다렸다.


30여분이 지났을 무렵 아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어 아들친구 둘이 들어오고 맨 마지막에 아가씨가 같이 들어왔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미모를 가진 갸름한 아가씨였다. 먼저 들어오는 친구들은 아들과 중학교 동창이라 가끔 늦은 밤 아들 방에서 몰래 자고 나간 적은 있지만 제대로는 처음 보는 얼굴이라 반가웠다. 아가씨는 아들 친구와 함께 서 있어서 여친이냐고 물었다. 아들 친구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한다. 그냥 친구란다. 그러더니 아들과 아가씨가 같이 앉고 다른 친구 두 명이 같이 앉는다. 건너편에 우리가 미리 예약해 둔 자리에 앉은 아들이 아가씨의 의견을 물어 주문을 한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그냥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 아들의 핸드폰에서 얼핏 본 그 얼굴이다. 그녀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분명했다.


나는 조금 흥분이 되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우리 자리를 파하고 그들과 합석을 했다. 내가 아가씨의 옆자리에 앉았다. 내게 반색을 한다. 술을 따라주고 안주도 집어다 주고. 이미 약간의 취기가 있어 보이는 그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화사한 웃음을 보이며 이런저런 말을 쏟아낸다. 가녀린 몸매에 비해 목소리는 걸걸하다. 짧은 바지를 입었지만 가지런하게 둔 두 다리가 정갈해 보였다. 가족들 얘기며 아들과 친하게 된 계기며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같은, 묻지 않은 얘기들을 쉴 새 없이 쏟아놓는다. 나는 어쩐지 말이 많은 것 같아 살짝 맘이 비켰지만, 칭찬을 사이사이 끼워 넣었다.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성격이 좋다. 집안이 화목해 보인다. 예쁘다 등등.


혹시라도 내 며느리가 된다면 오늘이 관계의 시작이 될 것이다. 어떤 관계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모든 가능성은 있다. 긍정적으로 보고 좋은 점을 찾아야 한다. 아가씨가 활달하고 명랑하고 당당하다. 눌려있는 곳이 없이 팽팽하여 좋다. 약간의 거침없는 성격 또한 우유부단한 아들을 이끄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둘이 나누는 눈빛에 애정이 가득하다. 그만하면 내 아들의 짝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이 결혼 전, 처음으로 자기 집에 초대를 했다. 부모님들의 상견례도 없이 처음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날이었다. 저녁 무렵이라 밥상이 먼저 나를 반겼다. 원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집안인 듯 붉은 색 꽃이 화려한 희고 둥그런 양철 밥상 위에는 부추 부침개가 특별한 반찬이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시동생은 나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되는대로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나는 이 첫 방문을 위해 수많은 경우를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저녁밥을 먹기 위해 방문한 사람처럼 양철밥상 앞에 앉혀졌다. 내 옆에는 밥상이 비좁아 올라가지 못한 상추바구니가 방바닥에 물기를 떨어뜨리며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남편의 가족들과, 좁은 상 때문에 몸을 비틀고 옆의 상추 때문에 밥상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초라하고 성의 없던 밥상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것이 시집 가족들과 나의 문화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의 증명이었건만 남편에 대한 사랑이 이성적인 생각을 막아버렸다. 이후의 결혼생활은 시골에서 할머니께 예의와 법도를 배운 나와 도시에서 격식 없이 편하게만 살아온 시집식구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만약, 아들의 여자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한다면 나는 정성을 다해 그녀를 맞을 것이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일 깨끗한 수건을 내 놓을 것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풍성한 식단을 만들고 평소에 비싸서 잘 먹지 않는 고급 과일도 준비할 것이다. 제일 아끼는 그릇을 꺼내고, 며칠 동안 고민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밥상을 만들 것이다. 예쁘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그녀를 맞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우리 집에 방문한 기억을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게 만들 것이다. 설령 그녀가 내 며느리가 되지 않더라도 아들을 사랑했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추억의 한 자락쯤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파티준비가 끝났는데 누가 언제쯤 그 부름에 응할 것인지.

아들의 여자 친구는 언제쯤 우리 집에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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