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웅이 아재

by 남새

우리 막내 삼촌 이름은 기영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삼촌을 기웅이라 불렀다. 나도 당연히 기웅이 아재라고 불렀지만 글을 깨치고 삼촌의 책에 쓰인 이름을 보고 기영인 줄 알았다. 기영이보다 입을 오므리고 발음해야 하는 기웅이가 훨씬 더 친근했다. 기웅이 아재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훤칠한 키, 적당한 몸매에 선한 성격을 가진 순하고 착한, 아버지의 막내 동생이었다.


당시 우리 시골에서는 삼촌을 아재라 불렀다. 삼촌도, 삼촌 친구도 동네 아저씨들도 모두 아재라 불렀다. 나는 나랑 아홉 살 차이 나는 기웅이 아재를 제일 좋아했다. 내 기억에 아재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이던 아재는 지금까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선한 사람이다.


어느 겨울, 시골의 아침밥상에서였다. 부모님과 삼촌들이 도시로 나가고 할머니, 여동생과 나, 고등학생이 된 기웅이 아재가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위로 느닷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식사 중에 아재가 학교에 필요한 돈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미리 말하지 않고 아침밥상에서 돈 얘기한다고 짧고 굵은 몇 마디만 하셨지만 밥상 위엔 불안한 먹구름이 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숨을 죽인 채 밥만 먹고 있었다. 아재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밥만 먹었다. 아재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된장국 속으로 떨어졌다. 아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떨어지는 눈물과 섞인 밥과 국을 묵묵히 비워갔다.


밥과 국을 남긴 채 숟가락을 놓는 건 할머니께 대드는 일이었다. 동네에서 할머니는 ‘가당한 백산 댁’이었다, 국문, 한문, 일문에 능하시고 큰 재산을 가진 치마 두른 대장부라 했다. 그 할머니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항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장남인 아버지조차도 할머니께 대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나는 착한 아재가 불쌍해서 목에 메었다. 울지를 말던지 할머니한테 대들든지. 식탐 많은 내가 밥숟갈을 주저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께 돈도 받지 못하고 말도 한마디 못 한 아재는 눈물 밥을 남김없이 다 비운 후 책가방을 자전거 뒤에 꽁꽁 싸매고 검은색 교복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안쓰러운 등을 보이며 대문을 달려 십리 길의 학교를 갔다.


나는 대청마루 끝에 서서 아재가 달려간 길을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 동네에서 저렇게 자전거 잘 타는 사람은 없어. 우리 동네에서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은 없어. 우리 동네에서 저렇게 착한 사람은 없어. 이러든 저러든 내게는 이 세상에서 기웅이 아재가 제일 멋진 남자 같았다.


그 겨울, 고등학생인 아재는 일요일이면 물을 데워 햇볕이 제일 잘 드는 장독대로 갔다. 시골 우리 집 장독대는 매우 컸다. 입구만 틔워 놓고 삥 둘러 담까지 쳐진 넓은 시멘트 바닥에 담을 따라 항아리들이 쭉 놓여있었고 가운데는 제법 큰 공간이 남았다. 그곳에서 아재는 쇠죽솥에 불을 때서 데운 물을 세수 대야에 한가득 넣고 거칠어진 손을 담갔다. 해를 바라보며 앉은 아재의 얼굴이 하얗게 빛이 났다. 손을 담근 물도 반짝거렸다. 아재는 양손이 벌게지고 퉁퉁해지도록 손을 담근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등을 돌로 싹싹 문질러댔다. 문질러진 손이 더욱 벌게져서 아파 보였지만 아재는 늘 싱글거렸다. 가끔은 쇠죽으로 끓인 짚으로 손을 문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는 먹는 음식도 아닌 것이 구수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당연히 나도 손이 부르텄다. 가끔 피도 나고 딱지가 앉았지만 엄마가 없는 시골에서 내 손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재가 장독대에 앉아 나를 부른다. 나는 냉큼 달려간다. 아재가 손을 다 닦았는데 세숫대야 물에서 김이 나면 내 차례다. 몇 번 당해서 이번에는 속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재의 꼬임에 손이 잡힌다. 아재는 얼른 뜨거운 물속에 내 손을 담그고 빼지 못하도록 그 위를 누른다. 나는 피 터지고 더덕진 손이 아프고 따가워서 소리를 지르지만 삼촌은 싱글싱글 웃는다.

“아가씨 손이 이래가 될 끼가?”

나는 샐쭉거렸지만 다정하지도 않고 근엄하기만 한 할머니와 다른 아재의 온기에 왠지 마음이 말랑거렸다. 손을 꺼내 돌로 문지르기 시작하면 나는 자지러진다. 비명을 지르고 손을 빼려 하지만 아재는 끝까지 내 손목을 잡고 피가 나는 손등의 딱지를 적당히 거친 돌로 밀어낸다.

“인자, 아재가 부르면 절대 안 갈 거다!”

앙탈을 부려보지만 그 후로도 몇 번은 더 속았다. 다 밀어내지 못한 딱지들이 일어나서 당장은 더 거칠어 보이기도 하지만 다음날이면 한결 부드러워져 있어 한 동안은 기분 좋게 손을 내밀고 다닐 수 있었다.


열한 살 때쯤, 부산의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셨다. 시골 할머니께 편지를 가져다 드리는 일이었다. 약간의 용돈을 용기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시골로 갔다. 할머니께 편지를 드린 후 나는 다음날 아침에 부산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초겨울 컴컴한 새벽, 할머니가 나를 깨우신다. 빨간 김치를 참기름에 달달 볶아 밥을 넣고 계란을 풀어 만든 국밥을 내놓으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색이다. 빨간색과 하얀색과 노란색이 고소한 향을 피우며 도도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는 영접하듯 두 손으로 받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호호거리며 말끔히 비워 든든하게 속을 채운다.


할머니의 긴 배웅을 하신다. 어린 손녀의 새벽길에 걱정이 흩날린다. 어둠 속에서도 할머니는 어둠에 완전히 감길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셨다. 할머니의 그 마음이 나를 더욱 용감하게 만들었다.

옆 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기웅이 아재와 우리 집 개 도그가 나를 배웅한다. 도그는 할머니를 닮아 까부는 법 없이 묵묵히 우리 뒤를 따른다. 초겨울이라 서리가 허옇게 내린 논둑길을 따라 걸으며 아재가 내 손을 꼭 잡는다. 커다란 아재 손이 따뜻하다. 잡은 손을 약간 흔들어 본다. 아재가 싱긋 웃는다. 우리 회경이 공부 잘하나? 반에서 몇 등 하노? 달리기는 잘하나? 고무줄 뛰기도 잘하고? 친구들은 많나? 등등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질문을 한다. 선한 눈을 더 선하게 만들고, 웃으면 살짝 드러나는 잇몸을 더욱 드러내 놓는다. 나는 이도 저도 모르겠고 아재랑 손잡고 걷는 새벽길이 그저 좋았다.


시골 정류장은 이 마을 저 마을 옮겨 다닌다. 이번에는 옆 마을 입구에 정류장이 있어 한참을 걸어왔다. 첫새벽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안내양 그리고 나 셋뿐이다. 아재가 버스 안까지 올라와 자리를 봐준다. 옷깃도 여며주고 버스를 갈아탈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일러 준다. 창밖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손도 흔들지 않고 큰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음만 보낸다. 도그는 망부석처럼 아재의 옆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차가 출발하고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재와 도그는 그림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그때 조금 울었었다.


기웅이 아재는 동네 처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더불어 소문도 많았다. 한 동네에 사는 큰고모네 막내딸인 현아는 나랑 동갑이다. 골목대장인 현아는 또래 남자애들도 이겨낼 정도로 싸움도 잘했다. 어릴 때부터 동네를 휘젓고 다녀서인지 소문도 잘 들고 왔다.

“건너 마을 옥이 언니랑 기웅이 아재랑 사귄다던데 니 아나?.”

“아재랑 둘이 연애편지한다고 소문이 다 났더라.”

“우리, 사랑채 아재 방에 가서 편지 있는지 볼래?”

나는 낯선 공기가 가져다주는 호기심에 말없이 현아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뒀다. 사실은 용기만 없을 뿐이지 그 소문에는 나도 많이 궁금했다.


우리는 아재가 없는 틈을 타 사랑채 아재 방으로 갔다. 훅하고 달려드는 냄새.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그 이상한 냄새가 싫어 사랑채는 잘 가지 않았는데 역시 그랬다. 저녁마다 아재 친구들이 와서 진을 치는 사랑채에는 눅눅하고 진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기타가 두 대가 있고 악보도 많았다. 아재는 기타도 잘 쳤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재에게 반하지 않을 처녀는 없었을 거다.

나는 아재 책상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현아는 거침이 없었다. 서랍은 물론이고 책꽂이에 꽂힌 공책들까지 다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 부산에 있다가 겨울방학 때 시골에 놀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우리도 사춘기에 살짝 접어든 때라 아재의 행보는 호기심 천국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아재가 그려놓은 그림 위로 아름다운 시들이 날아다닌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란 글과 파란 하늘 뭉게구름 아래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봇짐을 멘 선비의 뒷모습. 색연필로 그린 아재만의 부드러운 그림과 시로 만든 시화첩이 몇 권이다. 나는 아재가 그림조차 잘 그리는 줄 몰랐다. 연두색, 초록색, 분홍색이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 시화첩을 보는 내내 가슴이 설렁설렁거렸다. 이런저런 아재의 습작품은 많았지만 편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시화첩의 주인인지 모를 건너 마을 처녀, 나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그 처녀가 미웠다. 현아는 낄낄거렸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사춘기였던 그때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는 우리 기웅이 아재였다.


우리 기웅이 아재는 옥이 언니가 아닌 도시 여자인 착한 숙모를 만나 잘 살고 계신다. 많은 논과 과수원을 맏형인 아버지가 대부분 팔아버렸고, 남은 유산들도 나머지 삼촌들이 나눠가지는 바람에 결국 막내 삼촌인 기웅이 아재에게는 논 한 마지기 가지 않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대소사에는 빠지는 법이 없으시다. 언제나 자신이 할 일을 찾으시고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미움이 없으시다.

언젠가 막내 숙모가 나를 잡고 하소연하셨다. 둘째 셋째 형님들이 가로챈 유산을 돌려받자 아무리 말해도 아재는 허허 웃으시기만 하신단다. 답답하다 하시면서도 선한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우월해 보였다. 푸념을 들으면서도 나는 깊은 마음으로 웃었다.


우리 아재는 시장 가게에서 오래도록 전자제품 수리를 하며 사신다.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착하고 야무진 숙모와 함께 두 딸들 잘 키우셨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신다. 나는 지금도 아재를 만나는 일이 행복하다. 아재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는다. 아재의 선한 웃음과 얼굴을 보면 어릴 적 나를 향해 웃던 그 모습 그대로다. 나는 삼촌 앞에 서면 코흘리개 배볼똑이 아이가 된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마저도 멋진 아재는 오늘도 큰 눈에 선한 온기를 담고 잇몸이 드러나는 커다란 웃음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고 계실 것이다. 아재를 뵈러 가야겠다.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에는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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