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속의 자연을 찾아가다

중국화폐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여행

by 뮤즈

지폐에 나오는 곳 가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5,000원권, 50,000원권 화폐에 나오는 인물이 살았던 강릉의 오죽헌에 가서 아이들과 지폐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미국의 달러에 나오는 곳은 대부분이 워싱턴 D.C 라 백악관 근처에서 지폐를 연달아 꺼내며 사진을 찍었고, 캐나다의 100달러에 나오는 토론토대학에 가서 빳빳한 신권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화폐 기념사진을 다시 보면 여행을 이렇게 다녔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살았던 중국의 화폐에도 가보고 싶은 멋진 곳들이 있다. 미국의 달러처럼 한 도시에 몰려있으면 가성비는 좋겠지만 넓은 중국 대륙 방방곡곡에 흩어져있다. 그리고 대부분 자연 속 절경을 볼 수 있는 곳들이라 나 같은 경우에는 지갑 속에서 현금을 꺼낼 때마다 여행을 가고 싶었다.


중국의 가장 큰 화폐인 100위안권의 뒷면에는 인민 대회당이 새겨져 있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서쪽에 위치한 인민 대회당은 중국의 정치 중심지로 국빈이 방문했을 때 연회장으로 쓰이며 전국인민대표회의를 개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민대회당 주변으로 천안문, 그 뒤 자금성, 국가박물관, 중국의 오페라하우스인 국가대극원이 있는 베이징의 가장 중심지이다. 아이들과 국가박물관에 갔을 때 인민대회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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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위안권의 뒷면에 새겨진 포탈라궁은 티베트 자치구의 라싸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3,7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궁전이다. 라싸는 티베트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으며 라싸의 포탈라궁은 5대의 달라이 라마부터 14대 달라이 라마까지 머물며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금빛의 찬란하고 웅장한 포탈라궁은 정치-종교 합일의 상징으로 중국의 두 번째 큰 화폐인 50원권에 새겨졌다고 한다. 티베트, 멀기도 하고 정말 이국적이라 여기서도 외국인은 자유여행이 힘들어 쉬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50위안을 꺼내어 쓸 때마다 바라보고 동경하기만 했던 티베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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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안권의 뒷면에는 계림의 이강이 새겨져 있다. 중국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계림 산수 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계림의 산수가 천하제일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바로 이강(漓江)을 뜻한다. 이강 강변에는 천태만상의 산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고 강물은 산을 돌아 굽이굽이 흐르는데 경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강은 계림 풍경의 정수로 '백 리 이 강, 백리 화랑'이라는 말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이강의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도 계림, 중국어로 구이린은 중국에 오기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와서 보니 20위안 지폐 뒤에 계림의 이강이 새겨져 있고 중국어를 배우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얘기를 하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3시간 이상을 가야 나오고, 거리로도 나의 고향보다 훨씬 더 먼 곳이다.

나의 추억 창고 속에는 계화꽃 향기로 남아있는 계림이다. 이강을 사이에 둔 우아하고, 청량하고, 오묘한 봉우리들을 직접 보고와 20위안 지폐를 사용할 때 아쉬움은 없다. 다만 계절에 따라 천변만화의 모습이라 해서 가을에 가봐야 한다는 계림의 가을과, 비 내리는 우경 속 안개비가 내리면 이강 사이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 아련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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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안권의 뒷면에는 장강삼협(长江三峡)의 풍경이 새겨져 있다. 장강삼협은 중국 충칭시와 후베이성 경내의 장강 주류에 있는 구당협, 무협, 서릉협 등 세 협곡의 총칭이다. 이 세 협곡은 '삼국지'의 배경이기도 한데 이곳을 분기점으로 위, 촉, 오나라가 경계를 이루었다.

삼국지 투어라 불리는 장감 삼협 크루즈 여행, 중국에 있을 때 꼭 한번 보고 싶던 곳이라 작년 여름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가 셧다운 되면서 베이징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삼국지 투어는 못했으나 성도 무후사에 제갈공명이 계신 곳의 출사표를 보고 온 것으로 아쉬움을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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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안권의 뒷면에는 태산(泰山)의 풍경이 새겨져 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태산은 중국의 다섯 명산을 지칭하는 오악 가운데 하나로 오악의 으뜸이라고 불린다.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1,545m로 중국의 많은 명산에 비하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악의 지존'으로 꼽힐까. 태산은 예로부터 도교의 주요 성지였고, 문화적 성지로서 여러 상징이 부여되었다.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완수했음을 하늘에 보고하는 봉선 의식을 이곳에서 진행했고, 진시황 이후로도 한무제, 강희제, 건륭제 등 자신이 중국사에서 한 획 좀 그었다고 자부하는 황제들은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진행하였다. 태산은 1987년 유네스코 세게 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의 단오절 연휴에 태산에 갔다. 더운 날씨였고 기상조건이 괜찮아 케이블카가 운영은 해서 편하게 올라갔다. 케이블카로 남천 문에 하차하니 그곳부터 천가, 하늘길이라 하여 오른쪽에는 아스라한 절벽이, 왼쪽에는 식당과 숙소가 있는 하늘 세계가 펼쳐졌다. 저쪽 편에는 하늘로 닿는 사다리 '계단 길'을 올라오는 이들도 있었다. 태산에 왔으니 화폐 인증숏 찍어야지. 5위안 화폐의 뒷면에 새겨진 것은 태산의 당마애이다. 당마애, 높이 13.3m, 너비. 5.7m 되는 거대한 석벽에 붉은색 글씨가 빼곡하다. 봉선 의식을 거행하러 왔던 당나라 헌종이 남긴 것이다. 봉선 의식의 과정, 조상과 자신의 공덕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1,008자의 글로 남겼다한다. 그때는 케이블카도 없었고 이렇게 높은 곳까지 황제는 어떻게 올라왔을까, 직접 걸어 올라오지는 않았을 텐데 올라와 봉선 의식도 지내고 바위에 글을 새겨 자신의 자취를 남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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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안권의 뒷면에는 항저우 '서호 10경'중의 삼담 인월(三潭印月)이 새겨져 있다. 저장성 항저우시의 서쪽에 위치한 서호(西湖, 중국어로 시후)는 항저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남북 3.3km 동서 2.8km의 서호는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풍경을 '서호 10경'이라 부른다. 호수 가운데 섬 소영 주의 남쪽에 3개의 작은 석등을 지어 삼담(三潭)이라고 하였고 보름달이 뜨는 추석날 밤 석등에 불을 밝히면 그 불빛이 호수에 반사되어 세 개의 달이 뜬다고 하여 삼담 인월(三潭印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2022 아시안게임이 열릴 예정이었던 항저우에 2019년에 아이들과 고속열차여행으로 다녀왔다. 가장 큰 이유는 1위안의 뒷면에 있는 서호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직접 보니 정말 호수 아니고 바다 같았다. 너무 넓어 서호를 제대로 보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하여 유람선을 탔다. 소영 주에 도착해 삼담 인월 쪽으로 가는 길에 물에 비친 아름다운 정경은 베이징에서 보기 힘든 가을색이었다. 저 멀리 삼담 인월의 세 개의 석등이 일몰 아래 비쳐 반짝이는 황금색으로 보였다. 해는 점점 호수 뒤편으로 사라지고 황금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해가지고 노을 지는 서호를 바라보며 우리는 소행성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처럼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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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의 서호를 보고 쑤저우로 가서 여행 후 고속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주로 자동차 여행을 다녀서 아이들과 다녀온 첫 중국 고속열차 여행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중국의 우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차를 탈 일도 기차역에 갈 일도 없었다. 지금은 중국 대륙을 떠나왔지만 고속열차를 타고 넓은 대륙을 다시 질주하는 꿈도 꾸어본다. 지금도 지갑 속에 현금을 보면 화폐여행의 추억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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