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백두산 자동차 자유여행

by 뮤즈


여름휴가로 백두산에 다녀왔다. 중국에 있는 동안 한 번은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있는 기간이 길어

'머리가 하얀 산'이라는 뜻의 백두산을 중국인들은 장백산(长白山,창바이산)으로 부르는데 그 뜻은 같다.


1962년 중국과 북한 정부가 영토의 경계를 나누어 백두산의 60%는 중국 땅, 40%는 북한 땅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중국을 통해서만 천지로 올라갈 수 있다. 베이징 출발, 백두산 천지를 보고 '북방의 홍콩'으로 불리는 대련을 들러 돌아오는 5박 6일 자동차 여행. 여행 전에 세웠던 대략적인 계획이었다.


여행 첫날, 자주 이용하는 김밥집이 여름휴무기간이라 새벽 3시에 일어나 삼각김밥을 쌌다. 여행 첫날부터 하루를 너무나 일찍 시작했다. 첫째 날은 이동하는 날이라 차에서 자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차에서 잠을 거의 못 잤다. 새벽 5시 베이징 왕징에서 장백산 완다 리조트 하얏트 리젠시로 출발, 네비에 뜬 도착 예정시간은 저녁 6시였다. 경합 고속도로(京哈高速)를 타고 갔는데 청명절 친황다오, 노동절 집안에 갈 때까지

그해에 세 번째 지나간 길이다.

그런데 여름에 갈 때 가장 차가 안 막혔다. 중국에서는 ○○절, 특히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인

노동절, 국경절, 춘절에는 차가 엄청 막힌다고 봐야 한다. 중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출발한 지 약 3시간 뒤 산하이관을 지나고, 허베이성(河北省), 랴오닝성(辽宁省)을 지나 오후 3시경 백두산이 있는 길림성(吉林省)에 들어갔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붉은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푸른 하늘에 이쁜 구름과 함께 유럽의 한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듯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휴게소도 여러 번 들리고, 저녁 6시 50분경 완다 장백산 국제 리조트(万达长白山国际度假区)에 도착했다. 장백산 서파에서 멀지 않은 완다 리조트 단지에는 국제적인 체인리조트 8개가 입점해있고 아시아 최대의 스키장이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그중에 시설과 위치가 좋다고 하는 하얏트 리젠시(长白山凯悦酒店)에 3박 예약을 했다. (Trip.com에서 예약했다) 체크인하면서 완다 리조트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액티버티들 설명을 듣고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백두산 천지 보러 서파로 갔다.



이제 이 계단만 오르면 하늘을 영접할 수 있다 한다.

6월부터 8월까지가 하늘과 닿은 호수를 보기에 가장 좋은 때라 하늘을 영접하려는 사람들이 교주를 만나려는 열 성신도들처럼 우글우글했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첫 계단에 발을 올려보았다.

중국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날부터 중국에 가면 반드시 찾아가 내 눈으로 영접하리라 다짐했던 백두산 천지를 보러 왔다.

장백산(长白山,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르는 명칭) 서파 산문에서 셔틀버스를 40여분 타고 해발 1,570m까지 올라왔다. 마치 지평선에서 처음 오르듯이 첫발을 내디뎌본다.

몇 걸음 올라가니 계단에 숫자 5가 붙여져 있다.

몇 걸음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숫자 10 이 붙여져 있다.

그다음에는 15, 20, 25... 100, 105,... 200, 205...

1,442까지 계단 5개마다 5의 배수로 숫자가 붙여져 있다.

자세히 보니 숫자 하나하나가 작고 붉은 구슬들을 실을 꿰듯 알알이 연결해 붙인 것이다. 그리고 구슬들은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듯 바래져 있었다.

언젠가 붉은 구슬 하나하나를 연결해 이 많은 숫자들을 붙이고 있었을 어느 누군가의 손길을 떠올리니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에 닿아보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과 희망이 담긴 땀,

하루에도 기상현상이 수십 번 변한다는 이곳의 비와 눈, 바람과 쨍한 햇빛,

1,570m에 피어있는 싱그러운 야생화에 맺힌 이슬,

이 모든 것이 저 구슬들 하나하나에 알알이 맺혀있는 듯하다.

셔틀버스를 두 번 타고 들어와 편하게 1,570m에서 시작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천지를 보려면 자신의 다리로 1,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가 보다라며 묵묵히 올라가는데 건너편에 계단을 내려오는 가마꾼이 보인다.

가마의 뒤편에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가마에 타려는 이의 체중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올라갈 때 1~460 계단 -> 천지 400元

460 계단 -> 천지 300元

내려올 때 천지 -> 주차장 300元

600계단 이하 -> 주차장 150元

체중 175斤(87.5kg) 아래일 때 가격이 이렇다 하니 지구중심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중력이 작은 것이 여러모로 살아가는데 경제적인듯하다.

460의 구슬이 엮인 숫자가 붙여진 지점에 오르니 쉼터가 있고 주전부리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작정하고 앉아 우유처럼 마시는 요구르트, 빵, 소시지, 견과류 등을 먹으며 쉬고 있다. 숨이 차올랐지만 지금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듯해 계속 올랐다.




계단의 숫자가 1,000 이 넘어가니 심장박동수는 높아지고, 올라갈수록 서늘하다고 해서 위아래로 긴팔로 무장한 옷들이 덥게 느껴져 생각이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이곳에 오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북경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여름이 되면 가려하는 필수코스가 백두산과 내몽고 사막이라 이 두 곳은 중국 내 여행사 패키지 상품의 효자종목이다. 교통편이 편하지 않고 이동거리가 길어 자유여행으로는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곳을 우리는 북경에서 자동차를 운전해서 간다고 했다. 여행 블로그를 아무리 뒤져도 북경에서 백두산 자동차 자유여행 후기는 거의 없어 계획에 공이 많이 들었다. 동선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고 장백산 현지 여행사에 전화를 여러 번 해서 묻고 또 물었다. 장백산 위챗 계정에 들어가서 서파와 북파로 올라가는 입장권을 연달아 이틀 예약했고, 기상이 안 좋아 천지를 못 볼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도 생각해두었다.

준비했던 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하늘이 살짝 흐려지는듯했다.

천지 주변의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할 수도 있다 해서 조금 더 힘을 내어 계단을 올랐다.

앞에 철탑이 보인다. 철탑이 보이면 거의 다 오른 것이라고 했다. 해발 2470m의 이정표가 나왔다. 1570m 에서 시작했으니 900m 더 높이 올라왔나 보다.


1442번째의 계단을 올랐다. 더 이상 오를 계단이 없다.

계단 대신 37호 국경 경계비가 나타났다.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 경계비, 북한을 통하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을 바다 건너 엄청 돌아왔다.

그리고 하늘을 영접하려는 열 성신도들이 모여있는 곳 옆에 나도 서보았다.

이곳이 하늘과 닿아있는 호수, 백두산 천지구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도 저것이 실제의 모습인가 의심이 들었다. 어렸을 때 집에 걸려있는 큰 달력에 백두산 천지 사진이 자주 나왔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그 달력사진 속 백두산 천지였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3차원의 실물을 2차원의 평평한 사진의 모습으로 보였을까. 저 아래로 내려가 호수의 물을 페트병에 담으며 '앗, 차가워' 해야 진짜로 천지에 왔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맑은 하늘 아래 빛나는 호수, 천지를 내 눈으로 보고 있음이.

전날 12시간 차를 타고 달려왔고 , 새벽부터 움직여 1442개의 계단을 오른 피로는 이 믿어지지 않는 모습 앞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곳을 보게 해 준 나는 기억에도 없는 윗대 어른들께 감사했고, 같이 온 지인 가족의 윗대 어른들께도 감사했다. 어쩌면 저 가족의 공덕으로 우리도 이렇게 아름다운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아무리 찍어도 사진과 동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어 자연이 만든 그림 같은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1570m 에서 첫 계단을 올라 천지를 보는 데까지 40분이 걸렸다. 그 40분의 기억을 통째로 떼어내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2년 6개월 전의 1,442개의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를 때의 설렘과 희망이 봄을 품은 꽃봉오리같이 싱그럽다. 지금 이 순간 조형물 같은 장엄한 천지가 눈앞에 그득하니 꽉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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