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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Aug 19. 2023

05 두 번째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여리고도 씁쓸했던 어린시절 커밍아웃 05


05 두 번째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시트콤 멤버들은 야간 자율학습이 취소되는 날이면 ‘늘 마시던 거 카페’에 모여서 주말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토론을 했다.


- 우리 주말에 뭐 할까. 

- 나 이태원 커피빈 가고 싶어. 

- 어? 나는 주말에 쉴 계획이었는데. 

- 나는 일요일은 안되고, 토요일은 미술학원이 8시에 끝나서 그 이후엔 시간 돼. 

- 야 그럼 그냥 여기서 또 모이기나 하자.


토론의 결과는 늘 아지트인 ‘늘 마시던 거 카페’에 또 모이는 것이었다. 결말은 늘 같았지만 우리는 이런 반복되고 영원할 거 같은 재미에 행복해했다.


그 시기 즈음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째 결혼과 한 번의 장례식이 개봉했다. 한국 퀴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 한 걸 본 게 처음이었다. 꼭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아지트 모임에 기필코 말하리라 다짐했다.


- 두. 결. 한. 장! 이거 우리 넷이서 꼭 봐야 해!


- 엥? 그거 극장에 내려 간지 오래됐어.


영화를 자주 보는 현서가 말했다.


- 에이. 이거 개봉한 지 한 달 반 밖에 안 됐는데?


영화를 본 적이 별로 없는 내가 대답했다.


- 보통 3주면 극장에서 내려가….


옆에 있는 지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현서를 대신해 가르치 듯 말했다. 검색해 보니 두 사람의 말 대로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상영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못 본다는 생각에 괜히 시무룩 해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서연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 이번 주 일요일 K대 소극장에서 상영 일정 잡혔어. 이거라도 보러 갈래?


정보력 빠른 서연이는 극장 일정을 알아와 내게 일러줬다. 그리고 곧바로 전체 톡 방에 공유를 했다. 내 기대와 달리 현서와 지수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나와 서연이만 K대로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다.


두 번째 결혼과 한 번의 장례식 영화는 게이-레즈 의사가 위장결혼을 하는 코믹 소재의 내용이었다. 결말은 엘리트 훈남 의사인 민수가 게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다 죽은 절친 티나의 죽음을 목도하며, 위장결혼을 탈피하고 세상을 향해 커밍아웃하는 것이었다.


감독의 의도는 인터뷰를 찾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위장결혼을 장려하는 건 분명히 아니었을 거 같다. (굳이 교훈을 뽑아내자면, 게이들 차별하지 말라. 게이들이여! 세상에 나와라가 아닐까?) 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 위장결혼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서연이에게 제안했다.


- 우리는 위장결혼을 해야 해!


나는 구체적인 위장결혼의 삶을 즉석 설계하였고 서연이를 설득했다. 


- 우리는 셰어하우스에서 살아야 해. 구성원은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 영화처럼 구성되어야 하지. 하지만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미 주변한테 커밍아웃을 해야 해. 알겠지?


서연이는 내 말을 골똘히 듣더니 물었다.


- 주변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거기에 위장결혼을 하자는 거야? 그럼 그냥 게이 커플. 레즈 커플이 같이 사는 거뿐이잖아. 굳이 위장결혼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 서연아.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봐. 이 영화 제목이 뭐였어?


- 두 번째 결혼….


- 그래! 우리는 위장 결혼을 해서 결혼을 두 번하자는 거야!


내 논리는 이랬다. 성소수자도 사회생활을 하면 축의금을 낸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 돈은 생각보다 크다. 엄마아빠가 낸 부조금까지 합치면 10년에 천만 원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인 나는 대외적인 결혼식을 못할 것이다. 당사자인 나는 주변한테 커밍아웃을 해서 관련되어서 지출을 막으면 됐지만,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 올 돈이라는 생각에 계속 경조사비로 돈을 지출할 것이 아닌가. 마치 물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그러니 두 번의 결혼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게 내 주장이었다. 한 번은 대외적으로 축의금을 걷는 용도이고. 한 번은 커밍아웃을 한 지인들을 모아 진짜 결혼을 하자는 것이다.



- 어딘가 씁쓸하네.


- 그래도 장례식은 공평하게 1번씩이어서 다행이야.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네. 결혼과 다르게.


- 그래서 영화 제목도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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