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도 씁쓸했던 어린시절 커밍아웃 번외 편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 주인공은 이성애자이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 커플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본다면 이질감이 들어서 당장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릴 수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이성애자 커플이 나와도 아무렇지 않다. 왜냐, 평생을 이성애물(?)을 시청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라면 가끔(혹은 대부분) 이성애물 대신 게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평상시에는 남녀 사랑이 아무렇지 않다가도 괜히 남남 커플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지 않는가.
그럴 때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가령 가족들과 컴퓨터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검색 후 인터넷 기록을 삭제해야 하고. 또 OTT서비스를 공동 구독하고 있다면, 내 프로필에는 패스워드를 설정해야 한다.
주의 사항을 철저히 했다면. 이제부터 진짜 난관이 시작된다. 바로 검색어이다. 지금 당장 넷플릭스에 ‘게이’라고 검색해 보아라.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게이샤의 추억> 영화이고. 그 밖에 끝에 게임이 붙는 것들만 나올 것이다. 예를 들면 오징어게임, 이미테이션 게임, 스파이 게임 등.
영상물 말고 저작물에서는 이 상황이 더 심해진다. 서점 주소에 게이를 검색하면, 일본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만 왕창 등장한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검색할 때마다 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때문에, 그의 소설을 몇 개 입문하게 되었고. 가끔가다가 구매해서 보고는 한다. 최애 소설은 가면산장 살인사건.)
검색하고 있으면, ‘이 정도면 국가적으로 게이물 검색을 불법으로 한 게 아니야?’싶을 정도로 원하는 것들을 서칭 하기가 힘들다. 한 가지 팁이라면. 게이물이 보고 싶다면, 게이라고 검색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신 BL 혹은 퀴어라고 검색해야 한다.
BL이나 퀴어라고 검색하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게이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검색어로 찾은 영화는 99% 확률로 남자 둘이 키스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이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더 세분화해서 취향저격 검색 팁을 이야기해 보겠다.
BL을 검색하면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 남남 둘은 세상에 자기들밖에 없다. 남의 시선은 개나 줘 버렸달까? 지지부진한 고민 따위는 없고 디즈니 프린세스처럼 대부분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무엇보다 성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빠져있다. 있다고 할지라도 내레이션으로 ‘00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 하나로 가볍게 끝난다. Boys Love의 줄임말답게,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퀴어(Queer)는 이상한 사람을 뜻한다. 퀴어물은 보통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 때문에 남들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현사회를 잘 반영하고 나와 같은 고민을 나누는 인물들이 등장하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사회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한다거나, 자의식과잉 인물이 등장하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뭐랄까. 나는 주인공들이 속해있는 사회가 현실과 닮아 있다면 퀴어물로,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을 한다면 BL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막연한 현실도피가 필요한 상황에는 BL을 검색해서 청년 둘의 꽁냥꽁냥 거림을 보고, 같이 고민할 상대가 필요하다면 퀴어를 검색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현실의 이면들을 바라보며 같이 고민해본다.
장르 구분이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늘의 검색 팁!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