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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Aug 23. 2023

07 선례가 있다는 것

대학시절 청량함을 머금은 커밍아웃 02


07 선례가 있다는 것


나는 국내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타이틀이 있는 H씨와 (분교지만) 같은 대학에 나왔다. H는 방송에 나와서 대학교에서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회상한 적이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에서 게이라고 공개선언을 한 것이다. 말하고나서 학교 생활이 모두 끝날 것이라고 낙담했던 것과 달리 모두들 그를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는 인생의 끝이 대학이라고 착각하는 시기이다. (비슷한 시기로 말년 병장부터 전역 후 복학하기 전까지는 군대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착각한다.)


이 시기에 나는 내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원하던 교육대학 진학에 실패하여 오랜 꿈이었던 초등교사의 꿈이 좌절되었지만, 학업을 놓치않은 덕에 H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집안에서 4년제 대학에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어깨가 으쓱했다.


- 나는 H대학에 온 나는 멋진 사람이야.


현실감각 제로인 상태로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내가 인생의 끝에서 모든 걸 이룬 사람이라는 착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에티튜드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근거가 없는 자만감은 그 시기 나에게 대담함이 되어주었다. 이를테면, ‘H씨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까, 커밍아웃의 명맥을 이어가야 해.’와 같은 마인드이다.



입학 오리엔테이션 전부터 모든 학생들을 모아두고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는 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은 어수선한 상태에서 무대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 유선 마이크를 쥐고. 저는 게이입니다. 하는 장면이었다. 어쩐지 우스꽝스러웠다. 맥락 없이 사람들을 한 데 모아두고 게이라고 말하면, 이게 하이틴 영화도 아니고 모두가 응원해줄리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연예인만큼 관종은 아니라 무대에 올라갈 용기도 내 육성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크게 송출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루었던 적은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비슷하게 나마 실현시키는게 나의 장점이었다. H씨만큼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할지라도 한 명 한 명에게 말할 수는 있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처음에는 한 두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학과 전체가 내가 게이인 것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대학교에서 처음 커밍아웃한 것은 입학도 하기 전이었다. 나는 수시로 대학을 입학해서 정시 결과가 나기 전에부터 동기 단톡방에 초대되어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은 아직까지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마음만큼은 대학생 새내기와 다름없었다. 


학교에 있는 맛집리스트며 선후배의 위계질서며 기대되는 교양강의며 끊임없이 톡을 주고 받느라 밤낮으로 까톡 음은 계속 울려댔다. 모두가 ‘최고로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태도였고, 대화를 주고 받다가 서로에게 위안이 된 것 마냥, ‘그래도 좋은 동기들을 얻었으니까 학교 생활이 기대된다.’며 짧은 시간만에 수시로 대학교를 붙은 친구들끼리 급속도로 친해졌다.


단톡방 인원은 열 명 남짓 되었는데, 그 중에서 주요 맴버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었다. 각 각 경기도, 부산, 서울,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메신저를 주고 받는 수는 많았지만, 거리 상 실제로 만나기는 어려웠다. 서로가 빨리 입학하여 얼굴을 보고 놀고 싶다는 말만 자주했다.


대신 만날 수 없었기에, 전화를 자주했다. 대부분 고등학교 얘기였다. 처음에는 피상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수능 등급이며, 내신 성적, 왜 이 학과에 오게 되었는지와 같은 길가는 사람 붙잡고 아무에게나 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일반적인 이야기가 쌓이다가 언젠가부터는 어쩌면 약점이 될 수 있는 얘기를 주고 받게 되었다.


- 나는 학교 다닐 때 걸레라고 낙인 찍혔던 적이 있어. 내가 섹스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 우리집은 가난해서 기초수급자 집안이야. 동생 두 명이 있는데, 알바해서 걔네 학원비 내줘야 할 판이야.


- 나는 게이야.


- 아, 정말? 이런걸 전화로 말해도 되는거지?


- 너도 걸레라며. 너는 기초수급자인 거 다 말했는 걸 뭐.


- 그건 또 그렇네. 꺄르륵.


익명에 가까운 우리 사이는 얼굴 한 번 본적 없었기에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더 쉽게 할 수 있었고, 그만큼 속절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어떻게 이 글처럼 순탄할수 있으랴. 막상 학기가 시작하고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전화로 나누었던 친근감은  온데간데 없었고 트러블이 잦았다. 초반에는 서로 잘 어울리는 듯 했으나 곧 사이에는 금이 갔다.


그 와중에 나는 걱정이 생겼다.


- 혹시 내가 게이인 것을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동기들이나 교수님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


기필코 동기들한테는 전부 커밍아웃 할 거라고 다짐했지만, 그걸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입에서 전달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마찰이 생겨도 참고 참았다. 늘 내가 잘못했다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무리는 매일 한 세트처럼 다니곤 했는데, 단 한 번, 다른 무리에 끼어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친구들은 서운한 것을 넘어서 나를 연인 사이에 바람피는 사람 취급을 했다. (완전 어긋난 비유만은 아닌게,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여자였어서 나를 연애 상대로 느낀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절교를 선언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랴. 다른 친구랑 수업들은 게 뭐라고!


그러나 그럴 때에도 나는 군말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 당시에는 ‘너네와 이런 일로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사과할게. 다음부터는 그 친구들과 붙어다니지 않을게.’라고 말했지만, 그 속 사정에는 아웃팅 걱정이 있었다. 혹시 이 세 명이 나를 대상으로 뒷담화하면서 나의 비밀을 온 동네방네 퍼뜨리는 게 아닐런지.


얼마지나지 않아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파닭 집에서 개강 총회로 술을 마시다가 담배 피는 동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토할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내게로 걸어왔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있는 모습이었다. 그 친구한테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 기회에 얼른 해버리고 싶었다.


- 저기 나 사실은.


- 너 커밍아웃 하려고 하지? 억. 나. 억. 알고 있어. 억.


- 아 정말? 누가 말해줬어? 나랑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말해줬어?


-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억. 그 사람한테 실례거든. 윽.


- 그럼 너는 내가 아웃팅 당해서 곤란해하는 것은 상관없는 거야?


- 응. 난 걔네들이 더 중요해. 윽. 그리고 너 아무나한테나 커밍아웃하고 다니잖아. 게이가 대수야? 억.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우리 학교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이런 걸 겪게 될 줄이야. 그런데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친구가 또 다른 친구들한테 소문 내는 것을 막아야만했기 때문이다. 부당한 일이었지만, 나는 또 한층 낮춰서 그 친구에게 말했다.


- 그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 간곡하게 말하는데, 너는 소문내지 않기를 바라. 진심이야.


- 음. 생각해볼게. 윽.


돌아온 대답이 생각해볼게라니. 당연한 것인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입을 막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었다. 그 날의 술자리는 찜찜함을 남기고 끝이났다.




집에 와서 천장을 보고 양을 세 듯 나의 학교 사람들을 떠올렸다. 동기 하나. 동기 둘. 동기 셋. 동기 넷. 선배 하나. 선배 둘. 선배 셋. 선배 넷….  그 중에 커밍아웃 한 사람은 한 열 다섯 명 정도 되고. 남아있는 사람은 나랑 관계가 먼 사람을 빼면 45명 정도 되겠네. 이 중 소문이나 술자리에서 알게 된 사람이 5명이라고 치면 스무명 정도 내가 게이인 걸 알고. 40명 정도한테 커밍아웃을 하면 되겠구나.


속상함은 산수를 하니 조금 가라앉았다. 5명에게 커밍아웃을 해야하는 나의 수고로움을 덜어줘서 어쩐지 고맙기까지했다. 고민이 들고, 정진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나와 동문인 H씨의 행동들을. 나를. 그리고 그 밖의 친구들의 선함을.



여기까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 미래가 어떨 거라고 상상하고 있을까. 게이라고 핍박받으며 끝나는 결말을 상상하고 있을까? 아니면 갑자기 뮤지컬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너 마음대로 살아도 돼’라는 식의 메세지를 담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을 상상하고 있을까? 만약 두 가지의 버전을 상상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다.


현실은 정말 담담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게이라는 것으로 약점 잡지 않았고,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이후에도 꾸준히 커밍아웃을 했고, 학과 전원까지는 아니지만, 최측근한테는 모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소문이 그 공백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내가 게이인 것을 알게 했다. 뭐랄까. 끝판에는 서동요 마냥 흘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처음 커밍아웃을 학교에서 시작할 때, 사실 H의 특수성이 부러웠다. 예술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고 생각했고. 받아들인 모두가 특출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커밍아웃 직후 학교생활이 끝날 거라며 끔찍한 장면을 상상했던게 진짜 현실인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지옥같지는 않았다.


약점거리가 될 수 있지만 약점 잡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었고. 대학교 술자리에서 내가 게이인 것을 안주 삼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본인들의 애정사가 더 중요했다. (이를테면 과방에서 새벽에 섹스한 선배의 얘기)


선례가 있다는 것. 조금이나마 나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 H를 만나게 되면 꼭 두 손 붙잡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 덕에 내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어요. 그 선례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홍석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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