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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Oct 31. 2023

16 3년을 사귀면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기로 했잖아

이제는 조금 덤덤해진 사회인의 커밍아웃 01


16 3년을 사귀면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기로 했잖아.


대학교 컨퍼런스홀에서 프레임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모호한 개념이라며 가르치는 강사마저 애매하게 설명하였고, 나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 편견. 사고의 틀. 상대방을 이기려면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메모장에 뭐라고 끄적이기는 했지만, 성적에 미치는 중요한 수업은 아니었기에 수업이 끝나고 고이 접어 쓰레기 통에 버렸다.


중요한 순간에 내 커밍아웃이 망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득 대학 시절에는 채 이해하지 못했던 프레임의 전환이 적용되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받기 십상인 대상. 그리고 거절받으면 상처가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로 큰 대상. 그러나 언젠가는 말해야만 하는 대상. 이를테면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할 때. 내 서문은 ‘남자를 좋아해’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이별했어.’였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의 평범함을 높이 샀다. 슬퍼하는 자식에 대한 일반적인 첫 반응은 위로이지, 상대방의 성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일반적인 위로를 해줄 거라 믿었다. 다만 다른 집과 차이가 있다면 남자와 이별한 점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날을 회상해 보자면, 나는 여느 이별을 한 자식처럼 그와의 연애 시절에 대해 말했다. 나의 커밍아웃은 이별 고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슈와 함께 연애 고민에도  몰두해주었다.


물론, 프레임이란 기술적인 면 때문에 커밍아웃의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듣는 사람이 편견 없었고, 부모님이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엄마아빠에게 성공적으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찢어지게 마음이 아파 10kg 넘게 빠졌던 심각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첫 남자친구와는 3년 넘게 연애를 했다. 우리는 잘 맞았고, 내가 헤어짐을 고할 때마저도 ‘이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은 앞으로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해서 이별하는 거라는 말이 우회적인 표현인 줄 알았는데, 진짜 사랑하면 서로를 위해 멀어질 필요가 있다는 걸 그때 느꼈다.


그와 헤어진 표면적인 이유는 장거리 연애 때문이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취업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소원해졌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서 바빠졌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사소한 것에 불안감을 느꼈던 사람인데, 그는 내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알려주었다. 그런 그와의 만남을 끝내며, 남/남 커플이 아니라 남/녀 커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비겁한 상상 해보기도 했다.


- 우리도 가능만 했다면 관계의 2막이 이별이 아니라, 결혼이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사귈 당시에 내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었다.


- 우리 3년 사귀면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고, 5년 사귀면 결혼식 열자.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 5년 차 때, 상견례자리에서 커밍아웃하기엔 부모님이 당황하실 수 있잖아! 그니까 3년 차에 커밍아웃해 놓자는 거야. 기반을 다져 놓는 거랄까?


- 응, 그래. 커밍아웃. 그때쯤 하지 뭐.


4살 연상의 남자친구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는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한 기색이 영력 했지만, 마지못해 나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다.


연애 초에는 사랑이 불타 올라서 빨리 3년 차가 오고 5년 차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학생 CC였던 우리는 순수하게 어디에 집을 사야 할지, 서로의 직업은 무엇이 될지. 미래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2년 차가 넘어가고 3년 차가 가까워질수록 내가 했던 말은 나조차도 ‘연애 초에 불타 올라서했던 객기’쯤으로 여기며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3년 좀 넘은 시점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헤어지는 마당에도 그가 밉거나 싫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필요했다. 사귀자는 말 한마디로 둘은 몸과 마음.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남남이 되는 이 연애 체계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와의 사랑을 정리하는 시간에서 그가 남긴 것들을 살폈다. 유니클로에서 산 카키색 커플티는 버리기로 했지만, 군대에서 받은 50여 편의 편지는 남겨두기로 했다. 커플링 대신에 사귀는 내내 같이 HELLO라는 상태메시지를 했었는데, 지우고 머플러 모양 이모티콘으로 바꾸었다. 대신 인스타그램의 커플 사진은 지우지 않기로 했다. 헤어지기 몇 달 전 내게 사준 아이패드는 돈이 아까워서 그냥 쓰기로 했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습관들이 있었다. 그는 잠자리를 마치고 나서 목욕을 할 때면, 꼭 비누거품을 내어서 거울에 칠했다. 그러면 김이 서리지 않았다. 그 유용성 때문일까 나는 씻을 때면 자연스럽게 거울에 거품을 칠했고, 가끔 김이 서리지 않아 또렷이 보이는 내 모습에 적잖이 슬퍼했다.


잠에서 깨면 그와 좋았던 기억이 나를 덮쳤다. 이미 헤어진 마당에 도움 안 되는 기억이었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됐다. 그의 생각이 들어올 때면 형광색 러닝화를 신고 밤하늘을 무작정 뛰었다. 헤어진 달 나이키 러닝 앱 달력에는 체크 표시가 많았고, 한 달 동안 무려 200km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혹여 그에 대한 나쁜 생각이 들어올 때면, 정말 치열하게 그의 행복을 빌었다. 그가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의 그런 모습을 자책했고 - 곧바로 그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하는 상상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친 듯이 그와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헤어진 것이 후회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처음 겪을 때는 미친 듯이 답답했다. 더욱이 마음 아팠던 것은 그와의 시간이 고작 평범한 몇 문장으로 남겨질 때였다.


- 장거리로 인한 소홀함.

- 권태기를 이겨내지 못한 평범한 이별.


내 사랑이 일반 연애와 별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게 어이없었다. 우리는 특별하다고. 남들과는 다른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별하고 보니 너무나 보통의 연애를 평범하게 종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출하게 정리되는 이별에 아팠지만, 그 평범함은 특별함으로 남아있었다. 남녀 커플처럼 서로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게이 커플에게는 특별함이었다. 늘 부정과 부연설명으로 가득해야만 했던 두 사이에 평범한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 몇 문장으로 정리되고, 끝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와의 만남을 내 인생에 각인시킬 만한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그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읽어보면서,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다시 살폈다. 대게 편지는 내 쪽에서 더 사랑해 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한 줄 한 줄 읽다가 눈에 띄는 말이 있었다.


- 우리 3년 차 때는 꼭 부모님한테 서로를 소개해주고 결혼까지 하자.


그때서야 연애 초반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 아 맞아.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었지. 그것도 일반 이성애자들처럼.


보통 게이들이 하는 연애의 끝은 결혼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 아닐까 싶다. 당연하게도 결혼은 동성애자들의 선택지에 없으니, 연애하는 두 남자의 결론은 유지 아니면 헤어짐이었다. 지금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당시에는 결혼을 꿈꾸고 있었다. 꽤나 구체적으로 말이다.


평범해서 평범하지 않은 연애를 마치고, 다시 평범하지 않아서 평범한 연애를 할 생각에 진절머리가 났다.


게이들의 연애는 남녀 커플과 달리 대부분 데이팅 앱에서 시작했다. 매치가 되기를 기다리며 울리지 않는 알람에 신경 써야 했고, 매치가 되어서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매치가 되기를 기다리며 울리지 않는 데이팅 앱에 들어가 주변의 게이들을 탐색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미연시 게임 마냥 새로운 사람과 즉석만남을 반복하며 나의 신상을 읊어야 하고. 또 설령 마음에 들었다 해도 차분한 연애 감정으로 가져가기까지는 많은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나만 이렇게 애를 쓰면 뭐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주변 친구들에게 조차 남자 좋아하는 자신을 숨기고, 가벼운 만남만을 선호하는데. 그런 걸 다시 시작하려니 약간 겁이 났다.


그래도 어쩐지 묘한 자신도 공존했다. 사랑도 해 본 사람이 해본다고. 그와의 만남으로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얻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되어있었다. 또 아무리 일회성 만남이 난무하는 데이팅 어플의 생태계 속에서도 진짜 사랑을 선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 사랑에 대한 감각


그가 진짜 남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문득 지금도 3년을 사귀고 나서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하자던 그와의 약속이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나마 생긴 결심에 움츠려든 몸을 펴고, 엄마 아빠를 불러 모았다.




- 엄마 아빠, 나 할 말 있어. 중요한 얘기야.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 아빠는 생전 중요한 얘기라며 포문을 연 아들에게 적지 않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는 프로그램을 끄는 것이 아쉬웠는지 이야기는 하라면서 여전히 텔레비전에 시선이 머물고 있었다.


- 아빠, 티비 끄고 여기와 봐. 할 말 있다니까?


그제야 아빠는 티비를 끄고 뭉그적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엄마는 이 대화가 심상치 않을 거라는 걸 간파한 나머지 특유의 떨떠름한 입술과 매서운 눈 모양을 하고 있었다.


- 나 얼마 전에 사귀던 사람이랑 헤어졌어.


- 너 연애를 하기는 했었니?


엄마 아빠는 아들의 연애사를 처음 듣는다며 약간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 응, 나 연애했고. 헤어진 지 며칠 안되었어. 사랑했고, 매우 슬퍼.


- 근데 뭐 그런 거를 다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불러 모으는 거니? 여태까지 말한 적 없었잖아.


- 그렇지. 근데 오늘은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 하고 약속한 게 있거든.


‘그’라고 말하자마자 나 스스로 이 상황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이제 뒤돌아 갈 수 없는 선을 넘은 느낌이었다. 엄마 아빠도 흠칫했다. 그리고 나는 찬찬히 말을 이어나갔다.


- 그때 군대에 인터넷 편지 주고받을 때, 도와주던 형 있잖아. 그 형 기억해?


- 기억하지. 도움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형이 너랑 같은 학교 다니는 선배랬지 아마?, 그죠 여보?


- 맞아. 너 선배라 해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지. 참 착했던 친구였는데.


- 그 형이 나랑 사귀던 사람이고. 지금 헤어진 사람이야.


엄마 아빠는 놀라 했다. 하지만, 뭐랄까. 생각보다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나는 누가 봐도 마초스러운 이미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 모두 마음 기저에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게이인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아니 아니. 헤어졌다며. 헤어졌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별했잖아. 이제 남자를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 안 그래요 여보?


- 어릴 때 가끔 남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더라. 그런 거 아닐까? 아빠는 네가 남자 좋아하는 걸 인정할 수 없어.


나는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단단히 차렸다. 엄마 아빠가 이해하면 좋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내뱉은 말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말하려 했다.


- 엄마 아빠, 나는 남자를 좋아해요. 어릴 때 잠시 남자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나는 남자를 좋아했었고,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할 예정이에요.


- 그런 거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 단정 지어서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 나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 꿈 꾸지도 말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아들이 이별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데, 남자 좋아한다는 거로 꾸짖는 게 맞는 거예요?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문득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교양시간에 배운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게 하려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게 아니라, 북극에 있는 백곰을 연상시키는 게 더 효과가 있다. 억지스러운 전환일지라도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엄마 아빠한테 꽤 잘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남자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목 되는 것을 나의 이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했다.


-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위로. 그래, 위로가 필요하긴 하지.


- 그러게요. 여보. 아들이 위로가 필요하긴 하네.


엄마 아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위로했다. 말로 위로했다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보낸 연민의 화살에 가까웠다. 또 그 화살은 진짜 감정이 담겨 있다기보다는 의례적으로 하는 묵례와 같았다. 아들이 필요하다니까, 하는 그런 위로였다. 나는 그 위로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진짜 위로는 아니어도, 위로하려는 행색 안에 아들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 이후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대화의 패턴은 감정의 굴곡에 따라 온도가 왔다 갔다 했다. 어르고 달래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쯤이면 - 아빠는 소리를 지르며 이해를 못 한다고 했고, 또 엄마는 어디서 들어온 기독교와 에이즈 감염자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의 대화를 복기해 보면 이런 느낌이었다.


- 기독교에서 게이 같은 거는 안된다고 하더라. 성자들이 하는 말은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괜히 그런 말이 있겠니?


- 근데 엄마. 내 친구 아버지가 목사여서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던데?


- 그건 그렇다 쳐도 그럼 에이즈는 어떻게 할 건데. 에이즈 걸릴 위험은 생각 안 하니?


- 근데 엄마, 에이즈는 섹스해야 옮는 거잖아.


- 그치.


- 나 올해 섹스 두 번 밖에 안 했는데, 그런 내가 옮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 그건 아니네.


- 그리고 콘돔도 끼고 해서 걱정 안 해도 돼.


- 그런 거까지는 말 안 해도 돼.


엄마의 말문은 이런 부창부수식으로, 하지만 방패가 공격력이 더 강한 식으로 막아버렸다. 아빠는 옆에서 듣다가 어이없어했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일단락될 때쯤에는 중간중간 내 지인들의 성공적인 사회 생활하는 모습을 들려주었다. 가령 대기업에 다니는 A 씨와 학생회장을 하고 있는 B 씨와 같은 사람들을 언급했다. 게이임에도 자신감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엄마아빠는 ‘게이가 생각보다 걱정할만한 건 아니네.’라는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화의 온도는 하한선과 상한선을 계속 오고 갔다. 화내고 가라앉고 울음이 나고. 그러다가 또다시 화내고. 차분해지고. 울적해지고. 하지만 그 진폭이 분명 작아짐을 느꼈다. 부모님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서 인지. 혹은 체력이 줄어들어서 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이쯤이면 됐다 싶었다.


- 엄마, 아빠. 이제 대화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여튼 나는 최근에 이별해서 매우 슬픈 상태고, 당분간은 우울해하거나 극도로 기분 좋은 거나 할 수도 있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주세요.


- 우리는 그래도 네가 게이인 걸…. 헤어진 김에 여자를….


-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어요. 이제 솔로여서 살찌면 안 되어요. 생각은 멈추고 이제  달리고 싶어요.


- 잠깐.


아빠가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다며 나를 붙잡았다.



-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게. 네가 헤어진 것도 알겠고. 게이인 것도 알겠는데.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말하는 거니? 아빠는 마음 깊숙이는 네가 게이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늘 그렇게 생각해 왔을 수도 있어. 그래서 놀랍지만 또 놀랍지 않아. 이 말이 너를 인정하겠다는 건 아니야. 그런데 이게 궁금하구나. 아까도 질문했었지만, 네가 말을 돌려서 대답을 듣지는 못했구나. 우리한테 그 말을 해서 얻고 싶은 게 뭐야.


뜻밖의 질문에 주춤했다. 러닝화 신발 끈을 묶는 척 생각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 3년 사귀고 나면 서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자고 약속했거든요. 그리고. 다음 연애 때는 남자친구 소개해 줄 건데, 마음의 준비하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라고 말해버렸다. 엄마 아빠는 끝까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 지금부터 뛰어도 1시간이면 12시예요. 빨리 뛰고 올게요. 저는 살찌면 인기 없어지는 타입이거든요. 그럼 이만.


엄마 아빠는 못 말리겠다며 얼른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 날 뛰면서, 처음 겪는 마음에 형용할 수 없이 아팠다. 하지만 슬픔과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가족들과 더 돈독해질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앞으로는 엄마 아빠한테 말할 수 있다는 설렘.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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