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금 덤덤해진 사회인의 커밍아웃 03
18 취업 성공과 30원 그리고 축의금
## 지겨운 취준 끝, 은행 입사 성공(!)
보수적인 문화가 남아있다는 선배의 말에도 은행에 입사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적성이나 스펙 따위가 아니었다. 커밍아웃 가능성이었다.
나의 20대는 치열한 커밍아웃의 연속이었다. 대학교부터 인턴을 한 회사까지 한 곳도 쉬지 않고 커밍아웃을 해왔다. 그런데 평생을 다닐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못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은행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을 살릴 수 있고, 오픈 마인드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프리랜서로도 활동이 가능한 동영상 편집자였다. 특히 아이돌 노래만으로 26강 강의록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는 해박함이 있기에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기에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세대 아이돌에 국한된 지식부족은 3,4세대 아이돌까지 섭렵하고 있는 요즘 애들하고는 경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있으랴!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중학생 때 아이돌 주제로 커뮤니티에서 누적 조회수 60만을 찍었던 경험을 살려 유튜브에 팬 계정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팬 계정은 관계자 입장에서 마케팅의 수단이니 나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1일 1 영상을 목표로 공장처럼 영상 제작을 했다. 그리고 업로드 직전에는 영상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아이폰을 살 때 들어있던 유선 이어폰을 찾아 내레이션을 했다. 무선 이어폰은 입과 마이크의 거리가 멀어 소리가 매끄럽게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장비 탓인지 내 호흡 탓인지 고르지 않은 파열음이 문장마다 들어가 거슬렸고, 업로드 한 영상마다 조회수는 형편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가 내게 한마디 했다.
- 얘네가 너네 밥 먹여 줄 거 같냐.
그렇다. 걸그룹은 나에게 유희는 줄지언정 밥 값을 벌게 하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나는 몇몇 시행착오 경험들을 겪었고, 키치 한 영상물이 대거 쏟아지는 시대에 내가 그다지 창의적인 사람도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도 아니란 걸 배우게 되었다.
재능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며, 다른 직종을 찾아야 했을 때, 나는 좌절했다. 그러나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커밍아웃보다 생존하는 게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갖춰야만 했다.
너무 단순한 발상이지만,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서점에 가서 경제/경영 코너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챌린지형 인간답게 - 1일 1 영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 한 달 동안 돈 관련된 책을 1일 1권씩 읽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이 책들은 나를 완벽하게 바꾸었다. 오해는 마시라, 전업 백수에서 전업 투자자가 되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니까. 경제와 담쌓은 평범한 인문대 졸업생은 그리 쉽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다만, ‘부자처럼 말하기’는 가능해졌다. 가령, 한국은행에서 금리가 낮아진다는 기사가 나올 때면, 친구들한테 거들먹거리며 ‘곧 주식시장이 좋아지겠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식이다.
나는 이를 단초로 삼아, 은행 취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보수적인 집단이라 커밍아웃하기 어려울 테지만, 돈 만지는 직장에 다녀서 재테크라도 확실히 배우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몇 번의 낙방 후, 은행에서의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 30원 사건
은행에 들어가서 처음 잔업을 하게 된 날을 기억한다. 시재가 30원 안 맞았을 때였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곳이었다. 은행에 입사할 때, 단골 면접 질문으로 ‘6-70대 시니어 세대들이 인터넷 뱅킹에 소외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묻고는 했는데, 입사하고서야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노인들이 주거래 은행 어플도 없고, 있다고 해도 핸드폰으로 계좌 이체하는 방법을 모르는 수가 많았다. 물론, 핸드폰으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오지 않았으므로 요즘 어르신들 대부분이 현대 금융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말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어르신들이 가져오는 주요 일은 공과금 수납이었다. 공과금 업무는 고객이 종이로 된 지로 용지를 가지고 오면, 현금을 받아 계좌이체나 지로 번호를 통해 수납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고 있자면, 요즘 세상에도 자동이체를 하지 않고 매번 은행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해지고는 했다. 슬하에 자식은 없는지. 혹은 자동이체조차 버거 울 정도로 가계가 힘든지. 아니면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찾아오는 게 아닐는지. 처리하는 몇 분 동안 묘한 측은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은행 업무는 4시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어디 선인가 들어보지 않았는가. 4시가 되면 은행은 창구 셔터를 내리고, 하루동안 처리한 전표나 현금 시재를 정리한다. 그때 시재가 맞지 않는 날이면 어르신들한테 느꼈던 측은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원망 섞인 절규만 일어났다. 공과금은 대부분 지폐로 딱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10원 단위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개 처리하는 날이면 능숙하지 않은 탓에 시재가 꼭 틀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무려 30원 시재가 틀렸다. 늘 1-20원 정도 오차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전과 많은 차이가 있었던 거다. 오래 경력이 있거나 융통성 있는 직원들은 금액이 적으면 알아서 채워 넣거나 빼고는 하는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대신 나와 친한 선임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 평소 장난도 서슴지 않게 치는 사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괜찮아.’라고 넘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선임은 정색을 하면서 큰 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 10원, 20원이야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 30원은 네가 봐도 너무하지 않니?
나는 1-20원이나 30원이 뭐가 그렇게 큰 차이인가 싶었지만 화내는 사람 앞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 30원은 용서받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이 정도로 혼날 거면 주머니에 있던 50원짜리를 채워 넣고, 20원을 가져갈걸이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선임은 내 앞에서 30원의 행방을 두고 열과 성을 다해 말하고 있었다.
- 너 30원이면 감사 경위서 써야 해. 은행원이라면 작은 돈 단위 하나하나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30원이나 고객 돈을 함부로 할 수가 있어? 너 당장 경위서 쓰고 있어. 지점장님께 보고할 테니.
은행원이어서 돈을 더 철저히 다루었어야 하는 건 인정하는 바였지만, 한편으로는 전 날 어느 은행 고위 관리자가 60억 원을 횡령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과연 그 관리자도 나만큼 혼났으려나.
경위서를 작성하려고 내 자리로 돌아가 워드를 켰다. 옆에서 선임은 상무님께 전화를 하고 있었다. 선임은 신입직원이 ‘무려’ 30원이나 시재 오류를 냈는데, 감사 지적 대상이라 경위서를 작성하게 시키고 있다는 말을 했다. 새어 나오는 전화 소리에서 상무님의 웃음이 들렸다.
- 너 마음대로 해. 너무 잡지는 말고.
그날, 나는 선임의 말에 따라 쇄절기에 갈린 공과금 용지를 하나하나 끼워 맞춰서 가면서까지 30원의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 다 갈린 종이 뭉탱이를 뒤질 때,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알아보지도 못하는 글자들과 꼬깃해진 종이들을 조합하고 있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다. 경위서에는 30원이 고객과 당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과장하여 상상하며 썼다. 처음 써보는 경위서라 교과서대로 바른말(?)을 하면 될 거라고 믿었다.
- 30원을 두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켰으며, 고객의 귀중한 자산에 손상을 내고, 당행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일을 범하였습니다. … (중략)
## 30원 사건, 그 이후
30원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날 이후에도 몇 번 시재를 틀렸다. 그때마다 마감 후에는 마지막 전표부터 처음 전표로 역산을 했고, 어디서 오류가 났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걸쳐야만 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틀린 정도면 선임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있겠다. 어느 날은 30원이 비었고, 어느 날은 30원이 많았다. 시재가 남는 경우에는 객장 앞에 있는 기부함에 몰래 넣었고, 모자란 경우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둬 정장 안 켠에 숨겨놓은 동전을 꺼내 메꿨다. 다시는 선임한테 곧이곧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적은 액수의 돈의 행방을 찾고, 소명해야 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매우 성가셨다. 그런데 남의 돈을 만지는 데 별 수 있으랴. 아무리 작은 돈도 돈은 돈이었고, 은행원으로서 돈을 더 소중히 다루는 수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에게 돈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1인분을 다 해내는 회사의 구성원 1이 되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가계부 광고가 생각났다.
- 가계부에 지출 내역만 쓰고 계신가요? 그런 방법은 더 이상 노노. 일기를 쓰신다고 접근을 하시는 거예요. 일기 쓰려면 막상 그날 뭐 했는지 생각이 안 나 막막한 경우가 있을 텐데요. 가계부에 일기를 접목하는 거죠. 그날 소비를 통해 내가 느낀 점들을 적어보고, 거기에 덤으로 내 과소비는 반성하는 거예요. ….
광고 물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지만, 가계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한 달에 한 번 모든 영수증과 카드 거래 내역을 긁어모아 내가 어떤 소비를 했는지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계부를 쓰는 일은 내가 창구에서 시재를 마감을 하는 일과 매우 유사했다. 내 월급에서 현재 계좌 잔고 금액이 될 때까지 무엇을 썼는지 영수증으로 증명해 내면 되었다. 그리고 간간히 의미 없이 쓴 소비들이 발견되면, 그것을 따로 체크해 놓고, 다음부터 줄일 방법을 생각하면 됐다.
한 달 간의 영수증을 한 데 모아 놓고 보니 꼬깃해진 모양 때문에 두께감이 느껴졌다. 아마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서 구겨진 모양이었다. 나는 전표를 정리하듯 영수증을 빠르게 시간 순으로 정리를 했고, 헬스장 결제 비용이나 보험료 납입금 같은 고정 비용 성격이 있는 지출은 따로 빼두었다. 그리고 남겨진 영수증을 보니 죄다 점심시간 때 먹은 참치 김밥집과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영수증뿐이었다.
- 어라? 이것밖에 안 썼나?
당장 어제만 해도 회사 동기들과 저녁에 양꼬치 집에서 꿔바로우와 마라샹궈를 시켜 먹고 더치페이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비용은 영수증에 없었다.
- 아, 계좌이체…!
생각해 보니 종이 영수증은 계좌이체를 하거나 인터넷 쇼핑한 것들은 파악할 수 없었고, 가계부를 쓰기에 부족한 내역이었다. 나는 당장 은행 어플에 들어가 내 거래내역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종이 영수증으로 확인을 했기 때문에 이중으로 기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더 세심하게 보았다.
- 이것도 체크했고. 이것도 체크했고. 이건 저번에 모임 회원 생일파티 때 케이크 산 거 18,200원씩 더치페이했던 거고. 이 피톤 비스트로는 내가 취업 턱 낸다고 78,000원 결제했던 거고…. 어? 근데 N한테 100,000원 입금 한 건 뭐지?
## 선임의 결혼과 N의 정체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문화는 결혼식을 더 세속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 시기에 행해진 조촐한 혹은 소소한 결혼식은 가족과 진짜 지인들 몇몇만 식장에 초대하고, 나머지 형식적인 관계의 사람에게는 모바일 청첩장을 돌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청첩장 메인 화면에는 두 사람의 웨딩사진이 보이다가 더 스크롤을 내리면 6명의 계좌 번호가 보였다. 당사자인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의 부모였다.
- 혜련씨, 00 씨한테 곧 결혼한다고 말했어? 다다음 주가 결혼인데 00 씨만 모르면 섭섭해할 거 같은데.
식사를 하다 한 직원이 선임을 향해 말했다. 얼핏 선임이 곧 결혼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음 주일정도로 가까운지는 몰랐다.
- 어차피 결혼식에 초대도 못하는 데 말해서 뭐해요. 모바일 청첩장 주면 부담스럽기만 하죠.
- 부담스럽기는 왜 부담스러워? 결혼식 축의금은 주면 다 돌려받게 되어있는 거야. 00 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걸? 그리고 사회생활하려면 축의금도 주고받고 해야 하는 거지.
- 그, 그런가요?
- 맞아요, 선배님. 저한테도 모바일 청첩장 링크 보내주세요. 직원들끼리 말씀하시는 거 흘러가는 식으로 듣고 있었어서 결혼하는 거 대충 알고 있었어요. 언제 주시나 했는데,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아요. 안 주시면 섭섭할 거 같기도 하고요.
- 그래? 그럼 링크 보내줄게. 남은 실물 청첩장도 있으면 보내주고 싶은데, 딱 맞춰서 제작하는 바람에 여유분이 없다.
- 모바일이면 됐죠, 뭐.
그렇게 나는 떠밀리듯 선임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게 되었었다.
퇴근 후, 링크를 타고 들어가 사진을 보았다. 시선이 자꾸만 내 선임보다 그녀의 남편에게로 갔다. 웨딩 사진 속 신랑들은 포토샵이 잘 된 신부들에 비해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링크 속 사진의 남자는 피부보정이며 눈꼬리와 입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정되어 있었다.
- 웨딩 촬영은 이곳에서 받고 싶네. 그런데 남자 둘도 받아주려나? 후.
오른 검지로 사진들을 내리며 부러움이 섞인 한숨을 푹-쉬었다. 그 한숨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보수적인 곳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을 망설여했던 이유들도 떠올랐다. 이곳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하며 청첩장을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웨딩 사진들을 볼수록 답답함만 쌓이는 것만 같아서 빨리 축의금이나 입금하고 끄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 나는 하단에 선임 이름이 있는 쪽의 계좌 번호 중 하나를 복사하여 10만 원을 입금하였다.
-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예금주 명 : N, 입금하실 계좌번호 : 000-00000-000, 금액 : 100,000원
입금 팝업이 뜨는 데 예금주 이름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송금을 했다.
## 오해와 진실
가계부를 쓰면서 선임한테 계좌이체한 줄 알았던 10만 원이 그녀의 엄마인 N한테 입금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불현듯 30원 사건이 축의금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음 날 선임한테 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 선배, 저 축의금 말인데요.
- 축의금은 왜?
- 제가 선배한테 입금한 줄 알았는데, N님한테 입금을 했더라고요. 혹시 오해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말씀드려요.
- 어머, 정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진짜 오해하고 있었네. 그래도 그건 귀여운 실수다 정말. 처음이어서 그랬나 봐. 원래 청첩장에 신랑 신부 말고 부모님들 계좌도 써놓거든. 이번에 새로운 거 배웠겠네?
- 귀여운 실수요…? 네…. 새로운 거 배웠네요, 정말.
선임에게 30원은 감사 경위서를 쓸 정도로 큰 일이지만, 10만 원은 귀여운 실수였다. 일과 사생활은 다른 걸까. 아니면....
##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안 한다는 것의 의미
가계부 속 N으로 잘못 보낸 선임의 축의 금액 옆에 ‘잃어버린 돈’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축의금을 낼 때마다 내가 한 마디씩 얹었던 게 생각났다. 아들은 게이어서 결혼을 하는 것은 물론 축의금 회수도 못하니까 안내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는 ‘잃은 돈 셈 치는 거다.’라고 말하며 내가 커밍아웃하기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금액을 축의금으로 내었다. 그 행동을 보며 학생 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며 내가 직장인이 된다면 기필코 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내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돌아올 돈이라는 상사의 말에 떠밀려 축의를 했고, 그마저도 잘못 송금하는 바람에 선임은 내가 입금한 지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30원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우연이었을까?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입사하기 전에 막연히 떠오르는 장면은 나의 남자친구와 다정히 찍은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로 하지 못하고, 둘이 마음이 맞아 (법적 혼인신고는 못하더라도) 결혼식을 했을 때 청첩장을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더 사소하고 미묘한 불편함 같았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 축하하는 마음 대신에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만약 축의를 하지 않았을 때 오는 불이익이 상상되는 것 같은 거 말이다.
- 잃은 셈 해야지 뭐.
직장을 다니면서 얼마나 더 많은 잃은 셈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