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치백-타락을 꿈 꾸는 권리
정상인의 무지와 오만
회사 독서 동호회(강제의무)에서 헌치백을 고른 것은 우연이다. 물론 아쿠타가와 수상작이라는 점도 흥미롭긴 했지만 소설책 중 제일 얇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호회 예산도 맞혀야 해서 가격 만원 내외의 책을 구입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책을 받자마자 잠시 읽다보다 급하게 표지를 덮고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되었다. 주인공인 장애 여성은 19금 인터넷 소설을 쓰는 알바일을 하는데 주인공이 인터넷에서 쓰는 적랄하고 원색적인 표현들 난무하는 장면이 첫장면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목에 기관절개 호스를 꽂고 등뼈는 S자로 심하게 휜 근세관성 근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하고 수시로 호흡기를 달고 산다. 살기위해 파괴되어가는 몸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이 잘못된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성적욕망을 소설을 통해 해소한다. 그리고 일반인이 된다면 창부가 되어보고 싶고 중절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버린 남자간병인이 주인공을 비난하자 그와 거래를 한다. 돈을 줄테니 임신시켜 달라고. (줄거리 생략)
장애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쯤에서 문소리와 설경구 주연의 영화 오아시스가 생각난다. 장애여성과 일반남성의 사랑.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범주.
그 영화를 보면 장애여성과 사회부적응자인 남자.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이익을 편취하는 파렴치한 가족들이 나온다. 도대체 누가 정상인. 장애인이고 누가 비정상. 비장애인 인지 알 수가 없다.
장애 여성도 성적욕망을 풀고 싶고 성적 욕망의 대상도 되고 싶다. 하지만 주인공은 더 나아가 창부와 임신중절을 꿈꾼다. 선뜻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이책부터 다시 독서감상문쓰기를 시작하기로 다짐한 탓도 있다)
다 읽은 책을 덮어 놓고 눈을 지그시 감은 후 집중하여 주인공의 감정에 잠시 몰입해 본다
정상인이 당연시하는 것에 대한 혐오일까.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가치. 윤리에 대해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주인공은 정상인의 윤리와 절제를 오만함으로 느끼는 것인가.
배 속의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중절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정상 아이를 중절하는 것도 자유 아닌가. 라고 주장하는 주인공이다.
정상인도 타락을 꿈꿀수 있다. 무엇이든 되고 무엇이든 꿈꿀 자유가 있다. 일반인도 화려한 창부가 되어보고 싶기도 하다. 주인공 역시 그렇다. 누구나 타락을 꿈꿀 수 있다. 도발적이고 이 발칙한 상상에 놀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주인공은 종이책을 혐오한다. 척추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책은 너무 불편한 존재기 때문이다. 종이의 질감이라든가 냄새라든가 책장을 넘기는 일 따위가 사치라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서점에서 종이책을 고르고 사는 일. 앉아서 책을 읽고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일. 너무나도 당연해서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독서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그 행위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정상인은 생각치도 못한 무지함과 오만함을 깨운다. 신체의 기능을 잘 활용 수 있는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전혀 알수 없었던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