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퇴근하기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by 소글남

"아빠 왔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퇴근하실 때 모습을 회상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퇴근하셨다는 것.

아버지의 퇴근에 힘듦이라곤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모습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퇴근 후 웃는 모습은 당연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은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스물셋,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약 1년 반 동안 공무원 시험을 도전했고, 또 나머지 1년 반 동안 대학 편입 시험을 도전했습니다.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감사하게도 편입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학교를 졸업한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 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고, 스물아홉 여름에 드디어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졸업을 했으니 최대한 빨리 일을 하고 싶었고, 제가 예전부터 원했던 학원 강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강사로서의 저의 생활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평일 매일 아침 9시 반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일의 3일은 새벽 수업이 있어 4시 반에는 일어나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퇴근 시간은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9시 30분. 매일 늦은 밤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니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커피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강사에게 주말은 사치었습니다. 토요일도 오전 수업을 위해 출근을 했고, 토요일 오후 1시가 저의 공식적인 한 주의 마무리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들도 많았지만, 힘들었던 일도 얼마나 많았던지요. 수업이 없는 시간에도, 다음 수업 준비를 계속해야 했고, 방학 특강을 위해 교재도 꾸준히 만들고 수정해야 했습니다. 쉬는 시간은 사치였고, 쉰다는 것은 강사로서의 나태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업이 없는 오후 시간에는 잠시동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원 원장님의 배려로 수업이 없는 잠깐동안의 시간 동안 빈 강의실에서 접이식 침대(속칭 라꾸라꾸 침대)를 펴서 쪽잠을 잘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강사 선생님들은 집이 가까운 경우가 많아 수업이 없는 오후 시간대에 잠시 집을 다녀오시기도 했으나, 그 당시 저는 출퇴근 시간이 편도 한 시간 반이나 되었기에, 집을 다녀온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았습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새벽 출근길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하늘에는 달빛과 별빛이 수놓은 듯이 가득했습니다.


문득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힘드셨을까?'




저희 아버지께서는 소방 공무원이셨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며 일하셨을 것이고, 한 편으로는 가족을 위해 힘써 일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퇴근 후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그늘이라곤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가장이라고 해봤자 지금 저의 나이 셨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감을 위해, 혼자서 버텨내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면 안 되었고, 본인 스스로도 힘들지 않다 몇 번이고 되뇌시지 않으셨을까.


퇴근 후,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그 짧으면서 긴 시간 동안 아버지께서는 본인의 힘듦을 그렇게 혼자 숨죽이며 마음속에 꼬깃꼬깃 구겨 넣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마음속 깊이, 힘듦이라는 감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석진 자리에 넣고, 애써 웃는 얼굴로 저희에게 인사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빠 왔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늦은 나이에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당신의 아들은 배우고 성장해 갑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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