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과의 작동 원리
책상에 작은 물통 어항을 마련한 김 씨. 1L의 물과 베타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어항에 오순도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물이 누렇게 떠서 고민이다. 분명 작은 어항은 여과기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베타가 더러운 물에서도 잘 지낸다지만, 대놓고 더러운 물에 사는 듯 보여서 기분 나쁘다!
김 씨는 물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인터넷을 다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댓글 하나.
'물이 더러워지는 거 같으면 콩돌 하나 넣으면 되쥬~ 간단하죠?'
"정말 콩돌 하나면 내 어항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다음 날, 김 씨는 배송된 콩돌을 어항에 투입했는데, 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 보니 기포기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제품이란다. 속았다는 생각에 기포기도 주문했다. 여과기보다 돈이 더 많이 든 것 같다.
다시 다음 날, 김 씨는 배송된 기포기에 콩돌을 장착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시끄러운데? 김 씨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하는 수 없이 기포기를 반품했다. 그리고 조용하다고 소문난 기포기를 새로 주문했다. 가격은 더 나갔다. 그냥 여과기를 사는 편이 나았을까? 그래도 어항이 깨끗해진다고 하니까.. 김 씨는 꾹 참았다.
또 다음 날, 김 씨는 조용한 기포기에 콩돌을 장착했다. 역시 이번엔 마음에 들었다.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콩돌을 어항에 투입했다. 그렇게 김 씨의 베타는 더러운 물에서 콩돌 기포 고문도 당해야 했다.
작은 어항은 반드시 쉬울까? 관리해야 할 물이 적으니까? 하지만 3주 차까지 정독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물은 많을수록 관리하기 쉽다. 하지만 여과도 그럴까?
여과는 만능이 아니다. 여과기만 있다고 어항이 더러워질 위험을 완전히 피한 것도 아니다. 여과가 다음의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1. 물리적 여과 : 물고기의 대변과 같은 큰 입자의 이물질이 1차로 걸러진다.
2. 생물학적 여과 : 미생물에 의해 암모니아(NH3)-아질산(HNO2)-질산(HNO3)의 순서로 분해된다. 독성도 암모니아-아질산-질산 순으로 천천히 줄어든다. 놀랍게도 이 과정을 주도하는 미생물은 '세균'이다. 니트로박터와 니트로소모나스라는 이름의 세균이 암모니아를 분해해 유독하지 않게 한다. 이 세균들은 스펀지나 구멍 많은 돌멩이(난석)와 같이 자리 잡아서 일할 여과재를 필요로 한다.
이는 여과기를 얼마나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표다. 여과기가 쓸데없이 커봐야 세균 붙을 자리만 공회전하듯 비어 있고, 여과기가 작으면 여과력이 약해서 물이 망가진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적당한 크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딜레마는 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수들은 여과를 대충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장 먼저 어항 내 변화를 눈치채고, 여과기든 물고기든 바르게 교체해서 문제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일 뿐.
3. 탈질화 : 질산이 N2 기체로 변환되어 어항 밖으로 빠져나간다. 또한 슈도모나스라는 균에 의해 주도되는데,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긴 과정이라서 핵심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보다시피 여과기는 콩돌처럼 단순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입구에서 이물질을 막아줄 여과재'와 '생물학적 여과용 여과재'가 놓이는 자리가 필요하다. 둘 중 하나만 부족해도 생물학적 여과가 완료되기 전에 오염물질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럼 유독한 암모니아와 아질산이 축적되어 물고기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반면, 여과기가 완전하더라도 아질산과 질산은 천천히 쌓인다. 암모니아에 비해 당장 타격을 입지는 않지만, 충분히 쌓이면 물고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여과기는 만능이 아니다.
쌓이는 아질산과 질산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환수'다. 환수하지 않으면 어항은 금세 더러워진다. 단, 환수 또한 수온을 맞추고 염소를 충분히 뺀 수돗물이어야 하고, 그렇더라도 물고기에게 생리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삼투압이고, 그 외에 각종 호르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종합해서,
여과는 '온전한 여과기'의 구성을 갖는 여과기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
온전한 여과기라도 아질산과 질산을 처리하기 위해 환수해야 한다.
환수도 물고기에 사소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여과와 환수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여과에 대한 정보가 잘 퍼지고 있으므로, 콩돌과 측면여과기에 대한 혐오 여론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여과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당하고, 배신당할 게 뻔한 입문자들에게 콩돌과 측면여과기를 권하는 무책임한 초보자들에 대해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콩돌과 측면여과기가 여과기라는 말만 해도 기겁을 한다.
먼저 콩돌에 대해 알아보자. 입문자라면 콩돌은 산소공급기로 기억하자. 에어호스와 기포발생기가 별도로 필요하다. 기포기가 있다면 스펀지 여과기를 장착하면 되므로 콩돌로 여과할 생각은 굳이 하지 말자. 콩돌은 용존산소량이 낮아지는 여름이나 고수온 시기의 물고기에게 부족한 산소를 보충해 줄 목적으로 사용한다.
고수가 되어간다면 콩돌을 사용했을 때 물의 순환이 빨라지고, 기존에 사용 중이던 여과기의 성능을 일부 향상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한 이른바 백탁(균이 대량으로 죽는 현상으로, 주로 환수한 물에 적응하지 못한 여과 세균의 대량 폐사를 의미한다.)을 해결하기 위해 수면에 설치하기도 한다. 그 외에 어항 구석의 상승 수류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여과기가 너무 작고 어항이 너무 커서 물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사용한다.
필자는 수류를 선호하지 않는 어종이 사는 어항의 수면 유막을 걷어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유막제거기까지 돌리자니 너무 품이 커진다고 생각했다. 수면에서 기포가 터지며 이동하면서 유막을 어항 구석으로 밀어내면, 나머지는 환수로 처리한다.
측면 여과기는 수류 발생기다. 물론 여과기라서 스펀지도 붙어 있긴 하지만, 너무 소량이다. 여과력을 기대할 수 없다. 측면 여과기는 수류가 있어야 건강한 어종에게 물을 뿌려주는 장치로 사용한다. 그 외에는 사실상 기능이 없다고 봐도 된다. 물론 콩돌처럼 활용할 수는 있지만 본래의 기능이 아니라 활용에 한한다.
"엥? 아닌데요. 우리 고수님은 콩돌만 쓰던데요?"
콩돌을 여과기로 사용해도 될까? 의외로 답은 '가능하다'이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반드시 대량의 환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고기가 조금만 많아도 암모니아가 쌓인다. 암모니아는 아질산이나 질산과 다르게 극소량만 축적되어도 물고기를 죽인다. 때문에 암모니아가 쌓이고 여과 수용량이 넘치기 전에 환수로 깨끗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또는, 어항의 용량에 비해 물고기가 너무 적으면 상관없다. 물이 증발해서 내려온 수위만큼만 채워줘도 그게 환수라는 판정이 된다. 물이 충분히 교체되었으니까. 마치 60년 전통의 국밥 씨육수처럼, 테세우스의 배처럼, 오염원인이 아주 소량씩 교체된다는 뜻이다. 또는 물속에 부유하는 여과 세균만으로도 충분히 여과될 만큼 적거나. 필자는 2자 어항에 구피 한 마리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엥? 아닌데요. 우리 고수님은 환수도 안 하던데요?"
무무항은 일명 '무여과 무환수' 어항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실현시킨 전래동화 같은 것이다. 단순 비하가 아니라, 그건 입문자의 수요 중 극히 일부이면서,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성공시키는 위험한 방식이라는 뜻이다.
앞의 내용을 전부 이해한 상태로 이탄이나 광량을 조절하면서 수초까지 키워봤다면 무무항에 도전해 보셔도 된다. 이미 입문자도 아니고, 내가 말린다고 하지 않을 사람들도 아니고,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무무항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어항보다 극히 적은 물고기의 수
2. 물고기보다 극히 많은 수초의 수
3. 그리고 어항의 물이 증발할 때마다 채워주는 아주 최소한의 환수.
그러니까 무무항이란 상표인 셈이고, 사실은 환수를 하는 셈이다. 여과의 기본 원리를 이해했다면 이 내용이 3번 예외 파트의 '국밥 씨육수'와 비슷한 상황임을 이해할 것이다. 당신은 무무항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음의 지식이 필요하다.
1. 여과 한계를 넘었을 때 물고기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지식
2. 수초의 여과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수초는 어떻게 키우는지, 밥은 얼마나 주는지에 대한 사육 지식
3. 수초가 어느 정도의 여과력을 갖는지에 대한 직감과 관찰력. 그리고 광량 조절
그리고 다음을 감내해야 한다.
1. 절대 초기 세팅된 어항에서 물고기를 추가해선 안 된다. 한 마리라도 더 들였다간 여과 사이클이 망가지고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주 악질인 설계자는 물고기가 성장하면서 여과 한계를 넘겨서 죽도록 세팅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곤 발언하지 않겠고, 입문자가 '재도전'의 개념으로 재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옵션으로 가능하다는 점만 밝히겠다.)
2. 수초가 자라면서 물고기를 가려버린다. 수초는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자라고, 수면까지 닿으면 굽어서 서로 매듭까지 지어버린다. 몇몇 물고기는 수초에 얽혀 죽을 수도 있고, 단지 수초가 잔뜩 자라는 것만으로 보기 싫을 수도 있다. 무무항을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른 성공한 무무항도 '서부 영화의 회전초'처럼 보일 정도로 수초가 빽빽하게 자란다. 당연히 수초를 맘대로 트리밍 했다간 최초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나서 여과 사이클이 고장 날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라면 트리밍(수초를 가위로 잘라 미용하는 일)해주세요'라는 가이드라인을 받길 바란다.
3. 수초가 가린 '죽은 물고기'를 즉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죽은 물고기는 오염 덩어리다. 시체가 해체되면서 어항에 막대한 오염을 남긴다. 당연히 수초는 한 번에 감당할 수 없다. 물론 언젠간 감당할 수 있게 되긴 한다. 남은 다른 모든 물고기가 다 죽은 다음에 말이다. 심지어 수초가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물고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면 수초를 들거나 헤집어서 찾아야 하는데, 매일 그럴 정도면 멀쩡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죽는다.
그러므로 무무항이란 '입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어항의 다양한 종류 중 하나'가 아니라, '구를 만큼 구른 시범 조교가 보여주는 곡예'에 가깝다. 입문자가 정말 선택하고 싶다면 '정말 제대로 된 설계자가 모든 이론적 기준과 입문자의 일탈에 대처하기 위한 방침을 설명해 주는 무무항'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환수나 여과에 관심 없거나, 혹은 아예 모르거나, 편하게 키우려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 무무항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키우면 환수 없이도 키울 수 있습니다. 바쁜 여러분!'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또, 그렇게 선전하는 판매자만이 수요와 공급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경영자가 된다. 당신이 그 회사 사장이라면 전자처럼 설명하는 영업사원을 고용할 것 같나?
때문에 물생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 왔고, 모든 이론적 문제를 전부 해결한 전문가가 사육한다는 기준에서도 '결국 환수하지 않으면 축적되는 오염물질에 의한 고문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는 비난 여론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무무항 관련 전문가는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나는 1주일마다 수질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도 문제가 생겼던 적 없다. 오히려 수질 테스트도 없이 막 사육하는 당신들이 동물 학대 중인 거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1주일마다 수질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이 과연 입문자인가? 입문자는 매주 온갖 유혹을 견디고 수질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낳았다.
여과는 여과기가 필요하다.
여과기는 만능이 아니다.
여과기가 부실하면 환수로 해결한다.
환수는 얼마나?
어종에 따라 다르다. 환수를 지나치게 많이 하면 피해를 입는 민감한 어종부터, 환수를 하지 않으면 여과기가 버티지 못하는 금붕어까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30% 내외의 환수가 바람직하고, 이보다 더 환수할지 말지는 사육 품질을 결정하는 사육자의 능력-경험치에 의존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물 냄새를 맡거나, 수면 유막을 기준으로, 혹은 대변의 분해 정도를 통해서, 여과기의 막힘이나 수류 상태 등을 포괄적으로 점검한 후, 직감적으로 상태가 심각하거든 환수량을 늘린다고 보면 된다.
경력자들은 환수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직감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이 만큼 환수하면 현재 상황을 해결할 수 있더라'는 경험치를 바탕으로 파악하고, 환수하고도 해결되지 않으면 또 환수하겠다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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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차까지의 내용 중 변동이 있는 정보를 언급하며 마치고자 한다.
여과기의 성능과 지속력, 환수량과 히터 등의 세부 능력치에 따라, '사실상 어항 공간이 허락되는 모든 어종'을 웬만한 모든 밀도로 사육할 수 있다. 그러니까 3주 차까지 결정한 어종에서 더 추가하고 싶거든 여과기를 개선하거나 환수량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물고기를 더 키운다고 환수량을 늘리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귀찮고 피곤하고 힘든 일이라서 대부분의 물생활 전문가들은 '환수와 청소 때문에 권태기가 온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생활의 보람이 무엇인가. 내가 키우는 물고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나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되는 어항을 퇴근하자마자 누워서 구경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즐거운 물생활과 목표를 이루기를 바라면서 물결 뒤에 숨은 조용한 손길, 여과 이야기 -여과의 작동 원리를 마친다.
다음 주에는 작은 바다를 기르는 일-어항 관리하기로 찾아뵙도록 하겠다.